공간으로 확장된 만드는 즐거움.
나에겐 만들기 병이라는 고질병이 있다. 필요한 물건을 손으로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 늘 내 취미생활은 만들기로 채워졌다. 여가시간이 생기면 각가지 공방을 다니거나, 혼자서 공예서적을 읽어가며 만들기 기술을 하나 둘 습득해 나갔다. 그렇게 맞춤가구, 라탄, 직조, 바느질, 빗자루, 한지공예, 볏짚공예, 도예, 천연염색 등을 배우며 생활 속 필요한 물건들을 채워 나갔다. 갖가지 공예를 배우다 보니 평소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사겠다는 생각보다는 만들어야겠다 는 욕구가 나를 강하게 이끈다.
만들기 병은 평소 물건을 잘 안 사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시작되었다. 9살 때 한 번은 친구집에서 본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가 우리 집에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다. 역시나 여느 때처럼 부모님께서는 사주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트리가 너무 가지고 싶은 마음에 분리수거장에서 박스를 여러 장 주워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가위질을 시작했고, 풀과 테이프로 자른 박스를 붙이고 붙인 뒤, 사인펜으로 오너먼트를 그려 넣었다. 금세 내 키 만한 트리가 완성되었다. 내 열정을 보신 엄마는 조용히 트리를 장식할 줄조명을 사 주셨고, 결국 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박스 트리를 만들어냈다. 스스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또한 혼자 스스로 고민해 가며 손끝에 집중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물론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 중에 직접 만들기 어려운 물건들도 있긴 했지만 나중에 커서 만들기 기술을 배워야겠다 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한창 만들기를 좋아하던 11살 때였다. 그 당시 캐나다에서 일 년간 우리 가족은 타운하우스에서 거주했다. 처음 그 집을 마주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 내가 한국에서 살아봤던 주거형태는 빨간 벽돌 다가구주택과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3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집에 들어서니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집 밖에는 앞마당과 뒷마당, 1층에는 차고와 게스트룸이 있었고, 2층엔 주방과 거실, 3층엔 세 개의 침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이 났던 공간은 바로 1층부터 3층을 연결하는 중앙 계단이었다. 단층집의 경험밖에 없던 나로서는 집안에 세 개의 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부잣집으로 이사 온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가 거주했던 타운하우스는 캐나다에서 국민주택규모의 집이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간에서 산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설렘은 하늘을 찔렀다.
그 집은 마치 놀이터 같았다. 아파트에서 평면적으로만 살아보다가 입체적으로 살게 되니 앙숙 같던 오빠들과 매일매일 역동적으로 뛰어놀았다. 숨바꼭질을 한번 하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안 한 적이 없을 만큼 숨을 곳이 많았고 잡기 놀이를 하면 세 개 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에너지가 금방 다 소진되었다. 중력을 가지고 놀기도 좋았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던 계단실에 오빠들은 나를 놀린다고 내 폴라를 3층에서 1층으로 떨어뜨리며 중력을 시험하곤 했다. 그때마다 폴라의 단단한 코가 ‘딱’하고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면 오빠들과 전쟁을 시작하긴 했지만 이런 입체적인 놀이의 경험은 나에게 꽤 많은 공간적 상상력을 키워줬다.
캐나다에서는 일 년만 지낼 예정이라 한국에서 아무 가구도 가져오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정말로 필요한 가구만 사고 나머지 공간은 텅텅 비운 채 살았다. 밥 먹을 식탁과 의자, 공부할 책상과 의자 말고는 집안에 가구가 없었다. 거실엔 소파도 없고, 티브이와 오디오는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었다. 방에선 침대 없이 바닥에 요를 깔고 잤다. 바닥난방도 없던 입식인 집에서 좌식생활을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한겨울에 종종 썰렁한 2층 거실 중앙에 있는 벽난로 앞에 둘러 않아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몸도 마음도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마감재로 지어진 집도 아니고, 단열이 좋았던 집도 아니고, 방음이 잘 됐던 집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경험했던 입체적 공간과 벽난로에서 느꼈던 온기는 나에게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열어주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나의 만들기 영역은 확대되었다. 이전까지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젠 필요한 ‘공간’이 만들고 싶어 진 것이다. 더군다나 필요성은 상당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대부분의 주거형태는 평면적이었고, 그 형태조차도 천편일률적이었다. 캐나다에서 경험했던 마당과 입체적인 형태를 가진 집을 아파트천국인 한국에서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내 집을 지어야겠다 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내 집을 짓겠다는 꿈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남에게 의뢰하여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공간을 계획하고 공사하여 손수 만들고 싶었다. 학창 시절동안 이러한 내 꿈은 명확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장래희망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첫 등교 날 급하게 대학 지망 3순위를 작성하다 구체적인 장래희망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나눠 주신 쪽지에는 희망하는 대학교와 전공을 적어야 했다. 전공을 어떤 것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내가 원하는 집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건축학과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건축가가 되어 내 집도 설계하고 한국의 주거유형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급하게 장래희망을 정한 것 같았지만 따지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만들기 작업의 연장선이었다. 이 이후로 내 꿈은 ‘내 집짓기’에서 ‘건축가’로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