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북극곰의 멸종소식

사랑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by 폴라모모

대학생 때 나의 북극곰 사랑은 정점을 찍었다. 컴퓨터 바탕화면은 늘 북극곰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언제라도 자기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북극곰 이야기를 빼먹은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대학교 2학년 건축설계 수업 중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설정하고 집을 설계하는 과제가 있었다. 난 과제를 받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북극곰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클라이언트로 정하였다. 누가 봐도 그 가상의 클라이언트는 나였다. 허무맹랑한 설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설계 반 친구들의 가상 클라이언트 또한 슈퍼 히어로, 슈퍼 스타, 갑부 등 일반적이지 않은 설정을 했기에 내가 설정한 클라이언트가 크게 유별난 건 아니라 생각되어 들뜬 마음으로 과제를 시작하였다.

설계를 진행하기 앞서 클라이언트의 상세한 요구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거실에서는 커다란 유리벽을 사이로 북극곰과 서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화장실 창문에서는 잠수하여 헤엄치는 북극곰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입꼬리는 이미 귀밑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어서 사람이 사는 공간과 북극곰이 사는 공간을 안전하게 분리하되 서로 관찰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고, 그렇게 한참을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갑자기 북극곰의 서식조건을 찾아보니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북극곰은 지구에서 제일 추운 북극에 살고, 주식으로 빙하 위에서 물범을 사냥하는 동물이었다. 그런 서식환경이 북극곰에겐 최상의 공간이었다. 내가 결코 인공적으로 조성할 수는 없는 요건이었다. 점점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동물의 서식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동물을 가둬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기심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곧바로 클라이언트를 변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잠시 그런 상상을 했다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과제를 기점으로 북극곰의 귀여운 외모만이 아닌 북극곰의 서식지까지도 내 관심은 확대되었다.

2008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과제를 시작하려 인터넷창을 연 뒤 나도 모르게 인터넷 뉴스를 클릭하며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레이더망에 들어온 기사 제목 하나. < 온난화의 저주... 북극곰 멸종위기 지정> 그 제목을 보자 마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의 내용에는 지난 30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권의 얼음이 급속도로 녹아내려 북극곰의 터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한다면 2050년에는 북극곰의 2/3가 사라질 것이고 2100년에는 멸종된다고 예측하였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11살 때부터 나에게 무조건적이었던 사랑의 대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과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후대엔 북극곰을 책으로만 만나 볼 수 있는 것일까? 혹시 내가 북극곰의 멸종에 일조한 건 아닐까? 북극만 차갑게 만드는 방법은 없나? 북극곰의 서식지가 사라진다면 곧 인간의 서식지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등 북극곰이 사라질 미래에 대한 아쉬움부터 인간도 멸종할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어떻게 해야 북극곰의 서식지를 회복할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기사에서는 북극곰 멸종위기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꼽았다. 지구온난화는 내가 살아오면서 항상 언론에서 지속되었던 이슈라 경각심이 무디어진 상태였다. 당장의 생활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북극곰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니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지구온난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읽은 기점으로 나에게 북극곰은 사랑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북극곰을 멸종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다짐을 한 뒤 내 모든 관심사는 지구온난화로 향했다.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선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아주 뻔한 해답을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은 막막했다. 이건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을 때 갑자기 대학교 2학년 때 찾았던 통계가 떠올랐다. 전 세계 탄소배출의 약 40%를 건설업계에서 배출하고 있다는 통계였다. 그 당시에는 건축가가 가져야 할 환경적 책임감 정도를 느꼈지만 이번엔 북극곰을 살릴 수 있는 열쇠를 찾은 기분이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건축설계로 지구 온도를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뭔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계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외적으로 멋진 건물보다는 지구온도를 낮출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자 했다. 이런 관심사는 결국 목조건축, 토속건축(Vernacular architecture), 패시브 건축, 생태 건축 등으로 이어졌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지구온도를 1도라도 낮춰 북극곰을 살리는 빠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지구온도는 30년 동안 올랐기 때문에 그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바심을 가지지 않고 느리고 긴 레이스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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