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던 순간에서 마주한 북극곰의 현실
여느 날처럼 인터넷에서 북극곰 기사를 보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사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동차에 기대선 북극곰과 창밖에 얼굴을 내민 사람이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야생 북극곰을 저렇게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전체 원고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는 중에 촬영장소를 발견하였다. 촬영장소는 캐나다 매니토바 주 처칠! 단순히 북극곰은 북극에만 산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도에서 처칠을 찾아보니 북극보다는 살짝 아래쪽에 있는 지역이었다. 처칠은 북극해로 이어지는 허드슨만의 서쪽에 위치한 인구가 9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북극으로 이어지는 얼음이 제일 먼저 얼기 시작하기 때문에 북극곰들이 모여들어 그때 북극곰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11살 때 ‘폴라’를 선물 받은 이래로 야생 북극곰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상 해왔다. 하지만 이 기사를 통해 북극곰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게 되니 내 꿈이 손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처칠을 꼭 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 기사사진은 내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박제되었다.
4년가량 내 휴대폰 바탕화면에 있던 기사 사진을 내 사진으로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신혼여행을 기회로 남편과 처칠 마을에 가기로 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흔쾌히 휴양지가 아닌 북극으로 신혼여행 가는 것을 동의해 줬다. 나의 북극곰 사랑을 제일 잘 이해해주기도 했고, 내가 멸종위기에 있는 북극곰을 실제로 만날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부부는 기사로만 접했던 지구온난화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 편안한 신혼여행지보다는 조금 험난한 신혼여행지를 택하였다.
결혼식은 8월 말에 했지만 허드슨만의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시기는 10월이라 시간차를 두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북극곰을 보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비행기를 3번 갈아탄 뒤 에야 처칠 마을에 도착을 했고, 다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허드슨만 해안가에 위치한 북극곰 탐사 전초기지 같은 툰드라 로지(tundra loggy). 처칠 마을에서부터 툰드라 버기(tundra buggy)라는 거대한 차를 타고 또 다른 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북극곰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사람키를 훌쩍 넘기는 바퀴를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 승차감에는 정신을 잃었다. 가는 길은 온통 진흙탕 오프로드였다. 사람들은 모두 의자를 잡고 있지 않으면 의자에서 떨어질 수 있을 만큼 심하게 흔들렸다. 가는 내내 머리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엉덩이는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마치 디스코팡팡이 연상되었다. 실제로 툰드라버기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였지만 체감은 여섯 시간 이상이었다. 멀미까지 와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어느 순간 수목한계선이 지나고, 저 멀리 무언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흡사 설국열차와 같은 모습을 한 툰드라 로지였다. 드디어 도착한 최종목적지! 그렇게 난 약 4일에 걸쳐 진짜 북극곰들이 사는 서식지에 도착을 했다.
꿈같던 장소에 실제로 오니 마음도 들뜨고, 몸도 들떠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툰드라 로지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첫날엔 해 질 녘에 도착하였지만 북극곰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어둑어둑한 주변을 계속 예의주시했다. 식당칸에서 밥을 먹을 때도 창밖을 바라보고, 숙소칸 2층침대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도 잠들기 전까지 북극곰을 찾았다. 비록 북극곰을 첫날 마주하진 못했다. 하지만 고된 일정으로 하품은 멈추질 않아 다음날 아침 창문 앞에 북극곰이 나타날 상상을 하며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드디어 시작된 탐사. 북극곰을 만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 차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툰드라 로지에 도킹된 툰드라 버기로 옮겨 탄 뒤, 차 뒤편에 가득 실린 코카콜라를 마시며 북극곰 탐사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 풀밭에 엎드려 있는 북극곰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마주한 야생 북극곰을 보고는 흥분되어 입을 막고, 두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 북극곰은 여기저기 온사방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북극곰을 마주할수록 기쁘지 않았다. 점점 내 표정은 심오 해져만 갔다. 내가 상상했던 북극곰의 모습은 새하얀 털을 가진 북극곰들이 눈 위에서 뒹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북극곰들은 하나같이 풀밭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힘없이 얼음이 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음이 얼어야 북극곰들은 본격적인 사냥을 할 수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허드슨만은 얼기 시작하지도 않은 것이다. 게다가 눈이 올 시기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 눈밭이 아닌 풀밭을 뒹구는 누런 북극곰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리는 복잡 해져만 갔다. 그다음 날에도 탐사는 계속되었고 난 모든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착잡한 심정으로 북극곰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북극곰을 보기 위해 멀리 날아온 만큼 나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가 허드슨 강의 결빙을 지연시키고 북극곰을 굶주리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 신혼여행은 북극곰과 마주 보는 사진을 찍겠다는 설렘 가득 여행에서 죄책감 가득 여행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