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을 위해 시작된 작은 실천들.
북극곰의 현실을 마주하고 온 뒤 무거운 마음의 여운은 꽤 오래갔다. 출근 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내가 북극곰을 진짜로 도울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난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이후로 기회가 될 때마다 건축주들에게 자연소재의 건축자재나 패시브한 설계를 제안했었다. 말단 직원이었지만 북극곰을 살리겠다는 포부로 건축주들을 설득해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 건축주들에겐 의미만 좋게 받아들여졌고, 최종적으로는 미와 경제성이 우선시 된 설계로 결정되었다. 약 5년 동안 진전이 없는 설득을 해오다 보니 지구온도를 낮출 가망이 보이질 않았다. 건축설계로 탄소감축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마음먹고 노력해 왔는데 아무런 진전이 느껴지지 않아 건축적 노력만으로는 북극곰을 살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껴졌다.
냉정하게 정신을 차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다시 찾아보았다. 처음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찾아봤던 때는 건축 전공수업이다 보니 건축분야의 탄소발생에만 집중하여 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10년가량 지난 후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이전보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 온실가스배출량 비중표에는 크게 에너지, 산업공정, 농업, 폐기물로 분류되어 있었다. 큰 분류로만 바라봤을 땐 나와 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세부항목을 들여다보니 온실가스는 나와 그리 먼 곳에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공전기 및 열 생산, 제조업 및 건설업, 도로수송, 하 폐수 처리, 벼 재배, 농경지토양, 폐기물매립 등 온실가스 배출은 내 생활배경의 전반에서 발생되고 있었다.
도시에서만 살아본 나로서는 자원과 서비스를 늘 편리하게 공급받고, 소비해 왔기에 현재의 생활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물은 수도꼭지만 틀어도 나오고, 조명은 스위치만 눌러도 켜졌다. 더러운 물과 쓰레기들이 도시밖으로 처리되는 것은 기본값이었다. 또한 기술혁신이 당연시되는 시대를 살아오니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드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듯 결국 내가 누렸던 편리함 들은 결국 과다한 온실가스배출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해마다 출시되는 고성능의 스마트폰은 이미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투입되고 있었고, 택배와 배달음식은 나 대신 도로에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활 전반에서 편리함이 증가된 만큼 그만큼 온실가스배출량도 막대하게 증가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반대로 생각해 보니 작은 희망이 보였다. 내 생활 속 편리함을 경계하면 온실가스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
어떻게 현대생활의 편리함과 어떻게 멀어질지를 고민하던 그때, 텀블러 사용이 유행이 한창이었다. 나는 다른 현대인들처럼 점심식사 이후 커피를 테이크아웃 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만약 내가 텀블러를 사용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일회용 컵 사용량을 하루에 최소 하나씩 줄일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당장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며 텀블러 하나를 구입했다. 가방 속에 챙겨 다니면서도 부피를 꽤 차지해 불편했지만 내 작은 노력으로 북극곰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부지런히 챙겨 다녔다. 신기하게도 일회용 컵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텀블러를 산 것인데 생각보다 텀블러를 사용하며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집을 나설 때 음료를 텀블러에 챙겨 나가면 불필요하게 밖에서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디서든 정수기가 보이면 물을 텀블러에 담아 마실 수 있었다. 게다가 예전엔 음료를 다 마시고 일회용 컵을 버리기 전까지 쓰레기를 들고 다니며 기분이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텀블러로 바꾸고 나니 쓰레기가 발생되지 않아 상쾌하고 뿌듯했다. 현대의 편리함과 멀어지기 위해 택한 불편함이었는데 결국엔 내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내가 택한 편리함은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았다. 처음엔 조금 불편함을 택해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편리함을 주었다. 이에 반해 현대문명의 편리함은 처음은 편리해 보였지만 뒤에는 불편함이 늘 숨어 있었다. 해가 갈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스마트폰을 쓰며 내 신체와 두 되는 멍청해지고 있었고, 손쉬운 인터넷 쇼핑으로 인해 과소비에 시달렸다. 과도한 냉난방은 냉방병과 난방병을 일으키며 건강을 해쳤고, 배달음식은 쓰레기지옥을 마주하게 했다. 텀블러 사용 전까지는 아침 도토리 네 개의 유혹에 빠져 이후의 불편함을 망각한 채 반복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텀블러 사용 이후로는 저녁 도토리 네 개의 달콤함에 눈을 뜨게 되었다. 조금씩 내 생활 속에서 저녁 도토리 네 개를 찾아 나갔다. 외식 후 남은 음식을 포장하기 위한 밀폐용기를 챙겨 다니며 반찬을 벌었고, 가까운 곳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건강을 챙겼다. 식단을 계획하여 장을 보니 배달음식과 멀어졌고, 외기와의 온도차를 줄이는 삶을 사니 면역력이 올라갔다. 이런 생활의 작은 변화들은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이요 내 건강과 재정상황까지 좋아지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건축으로서 태산을 움직여 온실가스 감축을 꿈꿨다면 이젠 내 일상생활을 티끌 같은 아주 작은 실천들을 모아 온실가스감축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