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치소비의 시작

제로웨이스트라이프를 지속할 힘을 찾다.

by 폴라모모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일 차원적인 실천들이 생활 속에서 하나 둘 확대되며 스스로도 뿌듯한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먼저 준비하는 불편함’을 습관화시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텀블러 챙기기를 실천하던 초반이었다. 아직 텀블러 챙기는 것이 익숙지 않아 자주 까먹고 외출하곤 했다. 그리고 카페 직원 얼굴을 맞닥뜨리면 “ 아 맞다! 텀블러!”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같은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집 현관문을 나설 때 카페 직원 얼굴이 머리에 떠올라 자연스레 텀블러를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변수는 다양해졌다. 원하는 음료가 텀블러 크기에 맞지 않아 테이크 아웃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고, 가방크기에 따라 텀블러가 들어가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여러 상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스음료용, 자동차 컵 홀더용, 종이컵대체용, 운동용, 대용량 텀블러 등 용도별 크기와 모양의 텀블러를 구비하게 되었다. 심지어 텀블러를 가방에 못 챙겼을 경우, 차량에 보관해 놓을 플랜 B 텀블러까지 준비하는 노련함이 생겼다.

이런저런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이젠 내가 하는 실수만이 아닌 타인의 실수까지 예방하게 되었다. 카페 직원에게 텀블러로 음료를 주문했는데도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주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한 뒤로는 주문할 때 한번 더 텀블러에 담아주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매장에서 음료를 마실 때에도 어떤 컵으로 제공하는지 확인한 뒤 혹여나 일회용 컵을 제공하면 다회용 컵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을 때의 쾌감은 너무 짜릿했다. 신기하게도 이 짜릿함을 알려준 북극곰은 그 누구보다 즉흥적인 나를 계획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물론 다회용품 챙기기에 한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프로 제로웨이스터로 성장하였다.

생활전반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열정적으로 실천하며 지내다 보니 딜레마가 생겼다. ‘먼저 준비하는 불편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회용품을 내 가방에 넣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텀블러 하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밀폐용기, 스텐빨대, 에코백, 손수건, 수저까지 챙기게 되며 보따리상으로 거듭났다. 제로웨이스트를 열정적으로 실천하던 초반에는 이 모든 것을 챙기는 것이 스스로 뿌듯하고 에너지가 있었지만 매번 이 모든 것을 챙길 지구력은 점점 떨어져 갔다. 더 이상 큰 가방이 아닌 작고 예쁜 가방이 메고 싶어지기도 했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몇 개의 다회용품을 빼고 다니기도 했었다. 무서운 건 한번 고삐를 풀고 다회용품 챙기기에 소홀해지면 손쉽게 주변에 도사리는 편리함에 손을 뻗는 것이다. 만사가 다 귀찮을 때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고, 음료를 일회용 잔에 받기도 했다. 다 먹고 마신 뒤 일회용 쓰레기를 배출할 때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 사실을 외면하기도 했다. 결국 나 역시 망각의 동물인 인간인지라 제로웨이스터로서 꾸준하게 실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도시라는 환경자체가 온사방이 편리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살아가며 제로웨이스트를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은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런 도시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대안책이 필요했다. 최소한 내가 귀찮아질 때 소비하는 대상이 나 대신 온실가스 배출을 신경 쓴 제품이나 서비스였으면 했다. 그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이 ‘모 아니면 도’가 아닌 ‘도개걸윷모’의 선택지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단순히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제공하는 카페가 아닌 생분해성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카페를 찾아가거나, 택배포장을 비닐이 아닌 종이로 해주는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생활전반에서 소비하는 제품을 하나하나 대안책을 찾기 위해 많은 노고가 들긴 했지만, 뭔가 차선책들이 생기니 숨통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틈날 때마다 지구환경을 고민하는 기업을 찾다 보니 텀블러만 들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단순히 제로웨이스트의 가치를 넘어 버려진 소재를 재활용하거나, 생분해성 소재로 제품을 만든다 거나,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제품 등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손상된 숲을 복원하기 위한 나무 심기 활동이나 파괴되는 자연을 막기 위한 환경운동을 지원하는 기업들 또한 찾을 수 있었다. 혼자서 북극곰의 멸종을 막기 위한 실천들을 외롭게 이어가다 이런 기업들을 발견하니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나 말고도 지구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나와 가치를 함께하는 기업의 제품으로 내 생활을 채우고 싶었지만 그 당시엔 주로 한국보다는 해외기업이 많아 쉽게 구매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엄청난 쇼핑 능력치가 있었다. 예전엔 월급만 받으면 나만의 개성을 외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국에 없는 브랜드의 옷을 전 세계 쇼핑몰을 뒤져서 사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나가면 디자인 편집샵을 메뚜기처럼 돌아다니기도 했다. 또한 머릿속에 사고 싶은 디자인이 떠오르면 그 디자인과 비슷한 제품을 찾을 때까지 며칠밤을 새며 쇼핑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목적만 변했을 뿐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는 이 집요함은 나와 가치를 함께 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생활 속에서 가치소비라는 대안을 찾아내니 나의 제로웨이스트라이프는 평온해졌다. 더 이상 빈틈없이 머리를 굴리고 챙기고 짊어지고 다니다 지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가치소비를 위해 중소기업과 해외기업들을 찾다 보니 제로웨이스트뿐만에 아닌 북극곰을 도울 수 있는 가치들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소비생활은 외적개성 표현수단에서 북극곰을 살릴 수 있는 가치수단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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