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제품 뒷면만 보는 남편

우리만의 가치소비 기준을 만들어가다.

by 폴라모모

가치소비란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내 쇼핑인생에 새로운 서막이 열렸다. 예전엔 상품의 가성비를 따지거나 패키지 디자인과 문구를 보고 느낌이 오는 제품을 선택했다면 이젠 제조한 회사의 가치와 인증마크를 확인하여 제품을 선택했다. 새로이 생긴 기준으로 쇼핑을 하니 내가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의 범주는 확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환경적 가치를 고민하는 상업적인 기업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택폭이 그리 크지 않은 쇼핑을 하다 보니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신생 브랜드를 발견하면 신상백이 출시된 것 마냥 신이 났다. 가치소비를 실천하며 제품의 선택폭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오히려 쇼핑은 신속 간결 해졌다.

하지만 신혼여행 이후로 함께 가치소비에 동의했더라도 남편과 나의 실행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나의 대형마트 장보기 시간은 10분 이내로 짧아진 것에 반해, 남편은 여전히 2시간이 넘도록 장을 보는 것이다. 워낙 남편이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성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나 한품목당 최소 20~30분씩 제품 뒷면의 성분표를 보는 남편을 기다리며 점점 지쳐갔다. 결국 나는 남편의 쇼핑을 기다리다 다리가 아파와 카트에 몸을 기댄 채 휴대폰을 보며 남편의 쇼핑이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토케첩 진열대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중 여느 날처럼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성분표를 보며 온갖 인상을 쓰는 남편에게 왜 이리 제품선택이 오래 걸리는지 물어봤다. 남편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인위적인 성분이 들어간 제품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제품의 성분표를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치소비를 시작한 이후로는 단순히 친환경 마크를 보는 것이 아닌 친환경마크의 진위여부와 유기농 원재료의 실제 비율 그리고 포장재의 재활용 가능성까지 확인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간 코앞에 있던 ‘organic’ 문구가 쓰여 있는 케첩을 냉큼 고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창피해졌다.

남편은 신소재 공학을 전공했지만 신기하게도 신소재를 싫어하여 본인의 전공지식을 인위적인 소재를 배제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성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보니 제품의 원료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유해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내가 유기농 제품을 찾았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나왔다. 소란을 피워도 조용히 제품 성분표를 확인하며 쉽게 인증마크와 문구에 휘둘리는 나에게 팩트 체크를 해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힘들게 찾은 대부분의 친환경 제품들을 보고 남편은 탐탁지 않아 했다. 단순히 기업의 가치를 친환경적인 이미지로만 홍보하고 실제로 출시하는 제품들은 크게 기존의 생산과 폐기물 문제를 그대로 야기시키고 있거나 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줄이지 않으면서 나무 심기 등의 상쇄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나에게 경고하였다. 특히나 생분해성 플라스틱(PLA)은 자연에서 분해된다고 홍보해 놓고 실제 자연에서는 분해되기 어렵다는 것을 남편이 지적하며 생각보다 많은 친환경 제품들이 그린워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면 알수록 가치소비는 생각보다 가벼운 쇼핑이 아니었다. 남편의 탁월한 능력 덕분에 그린워싱을 인지하기 시작하며 소비라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졌고, 더 이상 무엇을 소비해야 할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마트 진열대를 가득 채운 그 수많은 제품들 속에 우리의 쇼핑 카트를 채울 수 있는 물건은 기껏해야 유기농 신선 채소였다. 가치소비라는 대안책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소비 없이는 도시를 살아가기 힘들었기에 현실적인 가치소비의 기준이 필요했다. 단순하게 지구를 생각하는 기업을 소비하는 것이 일차원 적인 접근이었다면 이젠 범 지구적인 관점에서 어떤 행위가 북극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지 원론적으로 접근하여 차근차근 우리만의 가치소비의 기준을 만들어 나갔다.

첫째, 제품 사용 후 진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품인가.

둘째, 진짜 재활용이 가능한가.

셋째, 제조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지는 않았는가. 윤리적인가.

넷째, 가능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제품인가.

위와 같이 우리만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나니 가치소비를 실천하기가 한결 수월 해졌다. 내가 찾은 제품이 비록 완벽하게 우리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더라도 저 기준에 근접한 제품을 소비했다. 이 기준들을 토대로 생활용품, 식재료, 의류 등 생활전반으로 확대시켰고, 내 본업인 건축설계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는 그리 많지 않아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맞는 제품들을 흔히 만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숍이나 유기농 매장, 로컬매장, 빈티지 숍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쇼핑시간을 확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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