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치소비를 해도 줄어들지 않는 포장쓰레기.
가치소비를 실천하며 우리 부부가 만들어 가는 기준들은 꽤 만족스러웠다. 특히나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이 대두되며 쏟아져 나온 저탄소, 친환경 제품들 속에서 우리만의 기준으로 ‘친환경’이 아닌 ‘찐 환경’을 찾아내기가 용이했다. 마치 형사가 되어 범인을 검거하듯 그린 워싱 제품들을 찾아낸 뒤 그 제품은 피하여 소비하였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치소비를 실천하다 보니 마치 나를 위한 일보다는 지구를 위한 일을 한다고 스스로 취해버렸다. 가끔은 지구를 지구온난화로부터 지켜 북극곰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 같다고 느껴졌다. 적어도 분리 수거함 쓰레기 더미를 인지하기 전까진 말이다.
아무리 우리 부부가 온라인 중고장터, 빈티지 옷과 가구, 친환경 식자재 매장, 로컬매장 등에서 소비를 해도 소비와 동시에 발생하는 포장쓰레기는 분리 수거함에 쌓여갔다. 종이류의 포장까지는 보관하기 괜찮았지만 플라스틱계열의 포장들은 금세 부피에 부피를 더해갔다. 게다가 내용물은 좋은 생각과 과정으로 만들었을지라도 제품의 유통과 판매, 관리의 용이를 위해 포장의 디테일은 강화되어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포장재를 뜯어야 내용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포장재를 뜯고 또 뜯고 나면 내가 내용물을 산 것인지 플라스틱을 산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점점 줄어들 생각이 없는 분리수거함의 플라스틱 포장 쓰레기를 보면서 최대한 포장쓰레기를 받지 않는 가치소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친환경 매장에서는 개별포장이 대부분이라 선택권이 크게 없었다. 오히려 에코백 다섯 개와 밀폐용기 서너 개를 지참하여 근처 재래시장에 가면 포장쓰레기 없는 쇼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유기농이나 친환경제품을 찾기가 어려워 어떤 가치를 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곤 했다.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이 우리 지역에 있으면 좋았겠 지만 아쉽게도 없어서 딱히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종종 부모님을 뵈러 서울로 올라갈 때면 밀폐용기와 에코백을 한가득 챙겨 농부시장 마르쉐를 들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처한 현재의 상황 속에서 포장쓰레기와의 작별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여 대부분의 포장쓰레기를 잘 재활용시킬 수 있으면 죄책감이 덜할 듯했다. 음식물이나 이물질이 묻어 있는 비닐을 깨끗이 씻어 말리고, 페트병은 속을 세척한 뒤에 라벨과 뚜껑을 분리하여 배출하였다. 또한 종이팩은 접합선을 따라 종이팩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펼쳐 씻어 말렸고, 박스에 붙은 테이프와 스티커를 모두 제거하여 차곡차곡 쌓아 버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싱크대 위에는 젖은 비닐이 집게로 집혀 늘 걸려 있었고, 식기건조대에는 깨끗이 씻겨진 플라스틱포장재와 우유팩들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라도 실천해야 가치소비를 하며 발생시킨 포장쓰레기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스틱 쓰레기 세척 건조장 같은 우리 집 부엌을 보다 내가 분리수거한 쓰레기들이 제대로 재활용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곧바로 아일랜드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우리나라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검색해 봤다. 처음에 기사로 나오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62%(2017년 정부 발표 기준)인 것을 보고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세부내역을 확인하니 소각하여 에너지를 얻는 것을 제외하고 실제 물질로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22.7%(2019, 플라스틱 대한민국 그린피스 보고서)였다. 심지어 사업장이 아닌 생활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13%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매립되었다. 여태껏 쓰레기를 열심히 씻고 말리고 분리하여 배출한 것이 순간 억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가치소비를 하면서 포장쓰레기를 배출시키면, 내 건강은 좋아지고, 지구의 건강은 안 좋아지겠구나 싶었다. 아니, 길게 본다면 건강하지 않은 지구에 사는 내 건강도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후로는 마트에 가서 진열대 사이를 걸으면 마치 쓰레기장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물건을 살 때 내용물과 함께 쓰레기를 산다고 인지하니 가치소비의 한계가 느껴졌다. 결국 가치소비도 소비인지라 기본적인 시장경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시기에 첫째 아이가 앞마당 작은 텃밭에서 방울토마토 하나를 따다 줬다. 약을 치지도 않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은 토마토이기에 옷으로 쓱쓱 닦아 입에 쏙 넣었다. 입안에서 팡 터지는 싱싱한 토마토를 먹으니 내 머릿속에도 생각이 팡 터졌다. 이 방울토마토는 포장이 필요 없었다. 직접 생산하고 소비했더니 포장이 필요 없던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도시 안에서는 소비생활만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상자텃밭에서 우리 가족은 생산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된다면 쓰레기 없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도시 안에서 무조건적인 소비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생산에 대해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