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지구안에서는 사라지지 않은 미세플라스틱.
우리 집 분리 수거함에 쌓여가는 쓰레기 양을 줄이는 일은 나의 노력에 따라 조절 가능했다. 최대한 포장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거나, 앞마당 상자텃밭에서 최소한의 생산활동을 통해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무분별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를 발견하거나,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발견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 집 아이들이라도 밖에서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교육을 확실히 시키려 노력했지만, 지역사회 모든 사람을 교육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답답했다. 아니 이건 교육보다는 개인 양심에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이라 느껴졌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종종 아이들과 함께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려 했던 이유는 담배꽁초를 줍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쓰레기를 버린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도로와 시설물을 깨끗이 청소하는 건 환경미화원의 역할이라 생각했기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우면 스스로 환경미화원을 돕는 뿌듯한 행위라 여겼다. 때문에 쓰레기 줍기는 도시 안에서 내 역할이 아니라 생각하여 마음이 내킬 때만 종종 실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은 바로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고통받는 바다거북이의 사진이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대부분의 해양쓰레기는 바닷가에서만 발생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보니 이 해양쓰레기의 절반이상은 육지에서 강과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나온 것이었다. 내가 귀찮아서 줍지 않았던 길가의 쓰레기는 빗물에 쓸려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강을 타고 바다를 향했다. 결국 쓰레기 줍기는 그 누구의 정해진 역할이 아닌 모두가 책임이 있는 일이었다.
해양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 있을 시기에 둘째의 첫돌 기념 제주 한달살이를 떠났었다. 마침 우리 숙소 주변이었던 김녕 해변에서 해변 플로깅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SNS 통해 알게 되었다. 보자마자 나는 참석에 의지를 불태웠다. 남편은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첫째와 나는 집게와 장갑을 챙겨 김녕 해변을 향했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커다란 마대자루를 나눠주며 가장 많이 주워 오는 사람에게는 상품이 있다고 안내했다. 마대를 처음보고 너무 큰가 싶다 가도 버려진 부표나 그물 같이 커다란 쓰레기를 상상하면 금방 채울 것 같았다. 갑자기 상품에 욕심이 나면서 전의가 불타올랐다. 가족들을 이끌고 어디서부터 쓰레기를 주울까 고민하다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주우면 되겠다 싶어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해변은 깨끗했다. 이미 기동력 좋은 청년들이 한번 쫙 훑고 간 건지 생각보다 쓰레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변가를 한참 걷다 주을만 한 쓰레기는 보이지 않고 우리 가족은 조금씩 지쳐갔다. 이동 속도를 줄여 천천히 모래사장을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뭔가 알록달록한 조개껍데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 다시 한번 살펴보니 이건 조개껍데기가 아닌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파도로 인한 마찰과 강한 자외선의 노출로 닳아버려 플라스틱조각은 조개껍데기처럼 위장하고 있었다. 이 플라스틱 조개를 알아챈 뒤 잠깐의 충격이 나를 멈칫하게 했지만, 우선 우리 마대에 넣을 쓰레기가 필요했기에 남편과 첫째와 함께 작은 플라스틱조개를 한참 주웠다. 역시나 마대가 채워지는 속도는 내 예상을 완벽히 벗어났다. 아무리 플라스틱 조개를 주워 넣어도 마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잠시나마 기대했던 상품을 포기한 뒤 가족들과 해변에 돗자리를 피고 휴식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가을볕에 지친 첫째는 파도와 잡기놀이를 시작하고, 둘째는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아기띠로 한참 둘째를 안고 다니느라 지친 남편과 상품을 포기해 상심한 나는 돗자리에 앉아 플라스틱 조개의 충격을 나누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모래놀이를 하던 둘째가 모래를 한웅 큼 쥐더니 먹으려 하는 것이다. 곧바로 달려가 둘째 손에 담긴 모래를 털어 주었다. 그러다 내 손에 묻은 모래 알갱이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유난히 색이 이상한 모래알들이 자연스레 섞여 있었다. 한번 더 살펴보니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뉴스에서 보기만 했던 미세 플라스틱이었다. 우리 부부는 플라스틱 조개에 이어 2 연타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아닌 먼바다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제주도에서 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플라스틱 조개까지는 손으로 주울 수 있었는데, 이 미세플라스틱 모래알은 채로 걸러야 할지, 조리질을 해야 할지, 정전기로 나눠야 할지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그렇게 마대의 1/4도 못 채운 채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변 플로깅은 씁쓸하게 마무리되었다.
한 달 살이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미세플라스틱 모래알로 인한 여운은 꽤 오래갔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미세플라스틱을 마주해 보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리가 쉽게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쓰레기가 지구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모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모습을 보니 더 무서웠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어류나 채소, 과일에서의 미세플라스틱 검출소식은 예전과 다르게 와닿았다. 확실히 미래가 두려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 속에서, 사무실에서 플라스틱 프리를 지키기 위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보따리상처럼 다회용기를 군말 없이 짊어지고 다녔고, 생활 속에서는 플라스틱소재로 된 수납용품과 가구, 잡화, 문구 등을 배제하려 했다. 사무실에서는 모형재료를 우드락이나 폼보드가 아닌 골판지와 목재, 점토로 변경해 가며 내 주변의 모든 플라스틱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 모든 의지들은 작심삼일의 반복이었다. 뉴스의 기후재난 보도를 보면 3시간, 도시의 무질서한 쓰레기더미를 발견하면 하루, 바닷가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발견하면 3주. 이조차도 여러 번 같은 충격이 반복되면 내성이 생겨 어느 순간에는 경각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꾸준히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미세플라스틱을 직접 눈으로 발견한 것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며 산다면 작심삼일이 하루하루 연장될 것 같았다. 자연 속에서 관찰의 대상은 미세플라스틱이 될 수도 있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동물과 작물의 변화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더 이상 뉴스를 통한 지구온난화의 소식이 아닌 내 두 눈으로 직접 지구의 상태를 관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지구에 무해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