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안탈리아, 콘얄티의 코발트 블루

터키 남부 첫째 날

by 모니카

워낙 새벽 비행기로 출발한 탓에, 호텔에 도착하고도 방이 준비되기까지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남편이 "점심을 먼저 먹는 게 어떨까?" 묻자, 나와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이제 아이가 이제 등장한다. 일곱 살 남자 아이다. 우린 흡사 신난 망아지처럼 "밥보다 바다!"를 외치며 춤에 가까운 몸짓을 보여댔다. 아이에게는 놀이에 대한 본능이었겠지만, 내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래 봬도 J와 P가 번갈아 나온단 말이다.)


아무리 터키 남부, 지중해라 해도 10월이다. 지금이 정오이니 바다 수영의 황금 시간대, 길어야 서너 시간이면 물이 서늘해질 것이다. 점심은 나중에 먹어도 된다. 지금은 햇빛과 바다를 먼저 느껴야 한다. "올인클루시브 호텔이잖아, 분명 비치에도 먹을 게 있을 거야." 남편의 표정은 다소 미묘했지만, 나와 아이는 순식간에 러기지에서 수영복을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이럴 땐 정말 손발이 잘 맞는 모자다.


우린 그렇게 지중해로 달려갔다.


지중해다, 지중해!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후 근 10년 만에 다시 보는 지중해였다.

코발트 블루 빛은 여전했고, 정오의 햇빛이 바다에 부딪혀 눈이 부시게 흰 반짝임을 만들어냈다.



나와 아들은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뒤이어 남편도 풍덩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워 우린 비명을 질렀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정오의 햇살은 금방 몸을 데워주었고, 충분히 해수욕을 즐길 만했다. 터키 남부에 이런 휴양지가 있다니. 두바이에 살지 않았다면 떠올리지도 못했을 여행지였다.


문득, 일곱 살 난 아이와 함께, 터키 남부의 지중해에서 해수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실은 아이를 갖는 것에 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었고, 그 아이가 홍콩에서 태어나 영어를 더 잘하게 되어 요컨대 'Wow! It's so nice!'와 같은 감탄을 하게 될 거라 상상하지도 않았다. 내가 두바이에 살게 될 거라고, 그리고 여행지로 터키 남부를 택해 아들과 남편과 지중해에서 수영하게 될 거라고도 - '그러고 보니' 그랬다.


왜 내 삶은 한 번도 내가 계획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해본 적도 있었다. 그 사실이 때로는 나를 무력하게 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늘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가니, 내게 '의지'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중독적이 되었다. 솔직히 이쯤 되니 스릴 있고 재미있어졌다. 생각지도 않은 파도와 설렘이 계속해서 찾아오니까. 거의 모든 면에서,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스펙터클 하니 -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그래서 파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삶이 내게 선물한 이야기들을 만끽하기로 했다.



준비된 방은 넓었고, 무엇보다 발코니가 아주 컸다. 나는 늘 창문을 여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뻥 뚫린 개방감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바깥쪽 벽이 너무 낮아, 이렇게까지 오픈 되어도 괜찮은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홍콩이나 한국의 호텔들, 특히 '사고가 잦은' 마카오에서는 상상도 못 할 구조였다.


그런데 이후 머물렀던 다른 숙소들도 하나같이 이런 식이었다. 알고 보니 터키는 굉장한 애연가의 나라였다. 체감상 프랑스와 비슷했다. 흡연을 완전히 금지하는 건 어려우니, 차라리 이렇게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서 마음껏 피우라는 의미일지도.


발코니에 서서 맞은편 건물을 바라보니, 작은 발코니마다 사람들이 햇빛을 쬐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한가롭고, 나른해 보였다. 나는 담배 냄새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도 터키 곳곳에서 가을 햇살 아래, 차이티 한 잔을 옆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 그 여유로움에, 그 나른함에 눈이 갔다. 한국에서처럼 전투적이거나 생존적인 흡연의 모습도 아니고 (말하자면 자판기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대를, 마치 수혈하듯 끝내는 것), 파리지앵의 쉬크하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의 흡연도 아니었다.


터키의 흡연가들은 하나같이, 마치 한낮의 심심한 고양이 같았다.

한가롭고 느릿했고,

무료하지만 어딘가 재미있는 일을 찾는 듯했다.


맞은편 건물의 발코니를 보는 일은 이상하게도 좋았다. 유닛마다 각자의 햇살과 사람이 있었다. 둘이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기도 했고, 혼자 햇빛에 몸을 말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식사 준비를 했다. 그들이 나를 보는 동안, 나도 그들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일상과 시선이 얽히는 그 풍경이 어쩐지 썩 재미있었다.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올인클루시브 호텔이라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음식의 종류는 많았지만, 단연 바베큐 섹션이 최고였다. 생선구이를 그득그득, 불 위에서 바로바로 구워 올려주었다.


혼자 열 마리는 족히 먹었을 sea bass(도미)와 sea bream(농어)


두바이에서 와서 가장 좋았던 음식이 바로 이 '생선구이'였다. 이렇게 생선을 통째로 굽는 건 한국에서도 전문집이 아니면 보기 어렵고 - 대개는 고등어구이, 홍콩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콩에서 보통 생선 통째로 요리하는 건 찜 종류다. 그런데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는 이런 식의 바베큐 구이가 일상적인 듯했다. 그러고 보면 두바이도 그렇고, 중동 쪽이 이런 '구이'를 기가 막히게 한다. 더구나 터키는 케밥의 나라이니 오죽할까. 약간의 불향과 그을음은 남기면서도, 탄 맛은 전혀 없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말 그대로 겉바속촉. 남편은 양고기를, 나는 생선을 열심히 가져왔다. 혼자 열 마리는 족히 먹은 듯하다. 물가 비싼 두바이에선 이런 생선 한 접시면 3-4만 원은 할 텐데, 여기선 그득그득 쌓아준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특히 함께 곁들이는 양파절임과 고추장 소스가 '킥'이었다. 양파절임은 한국식 양파절임과 비슷하면서도 향신료와 생 파슬리의 풍미와 레몬즙 같은 산뜻한 산미가 좋았다. 양파절임에 붉은 가루가 있어서 고춧가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터키에서 자주 사용하는 Sumac(수맥)이라는 붉은 향신료였다. 겉보기엔 고춧가루 같은데 레몬처럼 상큼하면서도 특유의 흙향을 냈다. 아, 그리고 레몬도 쓱쓱 뿌려먹고. 터키 남부 곳곳에는 레몬과 라임 같은 시트러스 나무가 발에 차이듯이 자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레몬과 라임을 정말 많이 뿌려먹는 듯했다. 고추와 칠리페이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고추와 고추장 같은 칠리페이스트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종종 요리에서 토마토소스와 섞여 한국의 고추장 베이스 소스 같은 맛들이 나기도 한다. 터키의 고추장 소스는 한국의 고추장처럼 발효된 맛과 단 맛은 없지만, 고추 고유의 매콤하고 신선한 맛이 살아있었다. 거기에 투보그 맥주까지 곁들이니, 무한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이더글라스(by the glass) 화이트 와인도 있어 마셔봤지만, 알코올 향이 너무 도드라졌다. 게다가 잔마다 맛이 달라, 아마 여러 종류를 섞어 쓰는 듯했다. 다음 식사 때는 맛있는 화이트 와인과 곁들이고 싶어, 밖에서 화이트 와인을 사 와도 되는지 물어봤지만, 안 된다고 했다. 뭐, 아쉬울 것도 없다. 투보그 맥주로 달래면 그만이었다.


생선 종류는 sea bream(도미)과 sea bass(농어)였다. 두바이에서도 자주 보던 녀석들이라 반가웠다. 한국에선 농어가 비싼데, 두바이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데다 살이 아주 두툼하고 싱싱해, 우리 집에서도 종종 사다 요리해 먹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구이는 집에서 못 해 먹지. 양고기도 맛있었다. 양고기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터키에서 먹은 양고기는 항상 달고 부드러웠다. 냄새도 거의 없었다. 아마 아주 신선한 고기일 테지.


아이는 무한 주스 리필에 완전히 들떴다. 휴가니까 봐준다. 체리 주스를 많이 마셔 입 주변이 온통 빨개졌다.

만찬 후,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서둘러 나갔다. 오후 네시가 가까운 시간 - 정오보다 바람이 더 불고, 공기엔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비치 바에서 와플과 돈두르마 아이스크림을 시켜 디저트로 먹었다.


해변과 리조트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아시아의 비슷한 리조트라면 아이가 있는 가족이나 젊은 커플들로 북적였을 텐데, 여긴 대부분 휴양하러 온 노부부들이었다. 러시아인과 프랑스인, 유럽 사람들. 그 느긋함이 전염이라도 된 듯, 우리도 어느새 속도를 늦췄다.


바다에서 나온 우리 셋은 몸을 떨며 호텔로 돌아왔다. 뜨끈한 목욕을 마치고, 지중해의 석양을 바라보며 첫날의 끝을 느긋하게 맞았다. 수영장 한편에서는 한 고양이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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