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맛보는 시간, 터키의 아침

by 모니카

예상치 못했던 재료와 음식, 식탁의 풍경들은 여행을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번 터키 여행에서도 그랬다. 특별히 여행지에서의 아침 식사는 그들의 식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 빵


터키는 워낙 빵이 유명하다. 빵이 곧 주식이다. 한국으로 치면 백반집에 해당하는 곳에서도 반찬류가 있고, 그 옆에 흰 빵이 한가득 놓여 있다. 사람들은 그 빵을 자유롭게 가져가 반찬과 함께 먹는다. 매콤한 육개장을 닮은 얼큰한 베이란(Beyran) 수프에도 빵을 곁들여 먹는다. 고등어나 생선 튀김도 밥이 아닌 빵에 끼워 먹는다. ‘밥’은 오히려 고기 덮밥처럼 서브 메뉴로 가끔 등장할 뿐이다. 피자처럼 생긴 피데(Pide) 또한 터키의 일상식이다.



리조트의 조식 테이블에는 따끈따끈하게 갓 구운 터키식 베이커리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종류만도 열 가지가 넘었다. 가장 유명한 시미트(Simit) 외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었지만, 가능한 한 많은 종류를 맛보기로 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빵들만 꼽아본다.


시미트(Simit) – 터키를 대표하는 빵이다. 모양은 베이글과 비슷하지만, 더 고소하고 바삭하다. 조식에서는 보통 1/2이나 1/3로 잘라 서브한다. 무엇보다 참깨가 핵심이다. 신선한 참깨가 듬뿍 뿌려져 있을수록 향이 고소하고 맛이 풍부하다. 잘하는 집의 시미트는 속이 쫀쫀하고 탄력이 있다. 내가 머물렀던 거의 모든 호텔 조식 테이블에는 흰 식빵과 함께 늘 시미트가 놓여 있었다.


보레크(Börek) – 초록빛 시금치나 파슬리가 들어 있어 처음엔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의외로 꽤 맛있었다. 얇은 유프카(yufka) 반죽을 겹겹이 쌓아 바삭하게 구운 페이스트리로, 안에는 페타 치즈나 으깬 감자, 시금치가 필링으로 들어 있다. 기름기가 많은 편이지만, 아침 식사로는 든든하고 만족스러웠다.


시가 보레이(Sigara Böreği) – 유프카 반죽에 페타 치즈를 넣고 말아 튀긴 음식이다. 길쭉한 모양이 시가 담배와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치즈의 짭조름함과 튀김의 바삭함이 어우러져 맛있지만, 역시 꽤 기름진 편이다.


포가차(Poğaça) – 겉모양은 단팥빵처럼 생겼지만, 안에는 달콤한 필링 대신 검은 올리브나 치즈가 들어 있다. 특히 올리브(Zeytinli) 포가차를 먹었을 땐, 예상치 못한 짭조름함에 놀랐다. 지중해 지방답게 올리브를 반찬처럼 즐기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터키식 생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포가차는 가장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2. 차이티


차이티는 여행 중에 가장 자주 마신 음료였다. 어느새 나도 약간 중독된 것처럼 느껴졌다. 차이티는 늘 같은 모양의 유리잔과 작은 받침대에 담겨 나오는데, 그 정형화된 세트가 참 인상적이었다. 현지에서는 식사 후 차이티를 마시는 게 거의 '국룰'처럼 보였다. 점심이나 저녁에는 디저트처럼 마셨고, 아침에는 조식과 함께 따뜻하게 곁들였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차이티를 무료로 제공하고, 원하면 몇 잔이고 리필해주기도 했다. 보통 각설탕 두 개를 함께 내주는 곳이 많았다. 설탕 없이 마시는걸 선호했지만, 한 개쯤 넣는 것도 맛이 부드럽고 질감도 좋아져 식후 마시기엔 설탕을 넣는게 나은 듯 했다.


차이는 기본적으로 홍차이지만, 우리가 익숙한 ‘향긋한’ 홍차와는 다르다. 한 번 우린 뒤 주전자에 계속 두고 따뜻하게 유지하고 오랫동안 데워두기 때문에 향이 날아가고, 대신 구수하고 약간 떫은 맛이 남는다. 약간 보리차 같은 느낌이 난다. 나는 이 문화가 참 좋았다. 중화권, 그러니까 홍콩에서도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문화’가 기본적인 환대의 표현이다. 얌차(Yum cha, 아침이나 점심에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식문화)를 할 땐 서로 차를 따라주며 정을 나눈다. 터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차를 계속 따라주고 함께 마시는 그 행위 자체에 어떤 따뜻함과 교감이 오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루에 여러 잔씩 마셨던 차이티(왼), 호텔에 있던 차이티 기계(우) - 기계라기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 위에 증기로 미리 끓여진 차이티 주전자가 데워지는 형태였다.


아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터키를 여행하며 차이(Çay)에 대해 쓴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1980년대 초반의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터키와 놀라울 만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묘사한 장면들이 내가 느꼈던 지점들과 너무 닮아 있어 읽는 내내 깔깔 웃고 말았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하네에 들어가게 된다.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튀르키예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차이를 마시고 싶어진다. 몸이 차이를 원하게 된다. 어쩌면 기후 탓일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조금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기호가 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에스프레소가 생각나던 것보다, 그리스를 여행할 때 그리스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우리는 차이에 끌렸다. 차이의 마력이랄까. 어쨌거나 우리는 뭔가 있을 때마다 "그럼, 잠깐 저기서 차이라도 한 잔 마실까"하는 튀르키예식 습관에 금방 물들어버렸다. 어딘가 마을에 도착하면 우선 차이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이를 마신다. 산책하는 도중에도 차이를 마신다. 운전을 교대할 때도 차이를 마신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차이를 마신다.

차이는 작은 유리잔에 나온다. 잔 아래에는 접시가 놓여 있다. 스푼도 딸려 나온다. 잔은 처음에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조금 식힌 뒤에 마신다. 처음에는 유리잔에 뜨거운 홍차를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잔 속에 담긴 뜨거운 홍차가 얼마나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닥에 찻잎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 나는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향긋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아이스티는 전혀 보지 못했다. 튀르키예에서는 아무리 덥고 땀을 흘렸을 때라도 따끈따끈 차이가 신기하게도 맛있다. 차가운 것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늘에 들어가 후우 불어가면서 따뜻한 차이를 마신다.

차이는 원래 평범한 홍차에 불과하지만 신기하게도 차이는 차이일 뿐 홍차가 아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차이는 차이 맛이 나고 홍차는 홍차 맛이 난다.

- 무라카미 하루키,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튀르키예까지


cf) 커피

터키는 커피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터키쉬 커피(Turkish coffee)! 커피의 기원이 에디오피아에서 예맨, 아라비아 반도로 간 후, 오스만 제국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느 골목에서든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날 줄 알았지만, 막상 와보니 카페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현대적인 카페였고, 내가 마신 터키식 커피는 여행자를 위한 브런치 카페에서 단 한 잔뿐이었다. 터키쉬 딜라이트와 함께.


흥미롭게도 실제로 오스만 제국 시절엔 커피가 터키의 상징이었지만, 1923년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국산 작물인 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건국 영웅인 아타튀르크가 “커피는 수입하지만 차는 우리 땅에서 자란다”고 말하며 차 재배를 장려했고, 지금의 차이 문화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터키의 차이 문화는 100년 남짓된 젊은 전통인 셈이다.


오스만 제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도 커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 시대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꾼이 공연을 펼치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커피숍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이런 값싼 종이 위에 그려져 있다거나 한 마리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여러분과 함께 예의 바르게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것이 유감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커피와 커피숍을 죽도록 좋아합니다. 아니, 이건 또 뭡니까? 커피숍 주인이 내게 커피를 따라주는군요! 그림이 어떻게 커피를 마시냐고 물을 생각이시라면 제발 좀 참아 주세요! 보세요, 이렇게 홀짝홀짝 마시고 있지 않습니까? 아아, 최고군요! 커피를 한 잔 마셨더니 몸도 따뜻해지고 눈도 예리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군요.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터키식 커피는 그야말로 독특했다. ‘제즈베(Cezve)’라 불리는 작은 구리 주전자에 곱게 간 커피 가루와 물, 설탕을 넣고 직화에서 천천히 끓인다. 거품이 일면 불을 끄고, 커피 가루를 걸러내지 않은 채 그대로 잔에 따른다. 그래서 맛은 진하고, 쓰며, 질감은 꾸덕꾸덕했다. 다 마시고 나면 잔 바닥엔 젖은 커피 가루가 잔뜩 남았다. 솔직히 말해, ‘맛있다’기보단 ‘인상적이다’에 가까운 맛이었다. 보통 터키시 딜라이트와 물 한 잔을 곁들여 내는데, 그 조합 덕분에 한층 더 이국적인 경험이 된다.


터키쉬 커피는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는데, 커피 관련해서는 오스트리아 커피 하우스 문화 (Vienna Coffee House Culture, 2011), 아라빅 커피(Arabic Coffee, 사우디와 UAE, 2015),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문화(Italian Espresso Culture, 2022)가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3. 보통의 아침식사


터키의 일반적인 아침 식사

터키의 보통 아침 식사. 첫 번째 사진은 조금 더 풍성한 버전, 두 번째는 간단한 버전이다. 기본 구성은 시미트와 식빵, 생 올리브, 호두, 생 토마토와 오이, 삶은 계란, 치즈, 감자튀김, 그리고 카이막(Kaymak)과 꿀, 과일잼(Reçel), 초콜릿 스프레드였다. 전통적인 아침 식사는 대체로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터키의 아침 식탁은 특히 흥미로웠다.


올리브 — 생올리브를 정말 좋아하지만, 평소엔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터키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3위권의 올리브 생산국이라고 한다. 지중해 동부의 터키, 그리스, 레바논, 시리아는 모두 올리브의 고향이다. 한국이나 홍콩에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산 올리브유만 접했는데, 두바이에 와보니 지중해 동부산 올리브유가 훨씬 많고, 훨씬 저렴했다. 그래서인지 터키 사람들은 아침 식사에 늘 올리브를 곁들인다. 소금에 절이지 않은 생올리브 그대로. 짭조름한 바다의 향이 밴, 터키의 맛이었다.


호두 —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견과류다! 터키는 세계 4위권의 호두 생산국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석류나무가 발에 차일 만큼 흔한데, 호두와 석류를 함께 넣은 샐러드도 터키에선 흔한 메뉴라고 한다.


토마토와 오이 — 역시 지중해답게 그리스식 구성과 비슷했다. 하지만 터키식은 그리스처럼 페타치즈를 넣지 않고, 소금 간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레몬즙을 짜서 버무리거나 생 파슬리를 듬뿍 얹는다고 들었다. 이렇게 아무 양념 없이 생으로 먹기도 하고. 터키는 생 파슬리를 정말 자주 쓰는 듯 하다. 파슬리를 샐러드처럼 한 움큼 넣어 피데와 함께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길을 걷다 보면 레몬나무와 라임나무가 지천이라, 그만큼 레몬과 라임즙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듯 했다.


치즈 — 터키도 치즈 종류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너무 많고 이름이 낯설어서 배우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치즈가 전반적으로 하나같이 정말 짰다. 페타치즈보다 더 짠게 다반사였다. 보통 소금물에 절여 숙성시키는 치즈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생치즈 같은 것도 간이 꽤 되어 있었다. 조식에 나오는 치즈들은 하나같이 짜서 결국 생치즈 종류만 찾아 먹었다. 밍밍한 빵이나 샐러드와 곁들이면 괜찮긴 했지만, 그래도 짰다.


카이막(Kaymak)과 꿀 — 무적의 조합이었다. 터키 여행 내내 아침마다 카이막과 꿀, 그리고 시미트를 함께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카이막은 터키 전통 유제품으로, 우유를 천천히 끓인 뒤 윗부분에 생기는 진한 지방층을 모아 만든 크림이라고 한다. 약간 버터 같기도 하고, 영국의 clotted cream과 비슷하다. 두바이에서도 ‘kaymak’이라는 제품을 먹어봤지만, 터키에서 맛본 그 신선하고 산뜻한 풍미는 아니었다. 보통 꿀과 함께 먹는데, 카이막을 시미트 위에 올리고 꿀을 찍어 먹으면 참깨의 고소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조식당에서는 꿀을 아이스크림 콘 같은 그릇에 담아 두기도 했는데, 그게 또 귀엽고 재밌었다. 남은 꿀을 콘째로 먹는 걸 보니, 아마 그렇게 다 먹는 모양이었다.


조식당에서도 꿀이 정말 한 사발씩 나와 있는 걸 보고, 터키는 꿀도 많이 나는 나라구나 싶었다. 찾아보니 세계 2위의 꿀 생산국이라고 한다. 자연이 워낙 좋으니, 다양한 꽃꿀과 수목꿀이 나온다고 했다.


여행 내내 마주한 광활한 자연과 풍요로운 땅을 보니, 이토록 잠재력이 큰 나라가 왜 지금은 이렇게 숨을 죽이고 있는지 문득 안타까웠다. 농업이 이렇게 탄탄한데, 그 힘이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한 느낌이었다.


참고로, 터키의 수박과 노란색 멜론은 정말 맛있다. 길을 걷다 보면 발에 차일 만큼 흔하고, 두바이에서도 나는 터키산 수박과 멜론만 찾는다. 정말 달고 향긋하다.


과일 잼, 레첼(Reçel) — 버터와 함께 과일잼이 나와 처음엔 그냥 평범한 잼인가 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과육이 전혀 으깨지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었다. 질감도 우리가 익숙한 젤리형 잼과 달리, 끈적하고 거의 액체에 가까웠다. 리조트 조식당에서도 잼이 종류별로 한 사발씩 놓여 있었는데, 그 풍성함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무화과 잼(터키는 무화과도 많다, 부럽다), 살구 잼, 블랙베리 잼, 타르트 체리 잼을 맛봤다. 종류가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진하고 향이 깊었다. 보통은 플레인 요거트에 듬뿍 넣거나, 빵에 넉넉히 발라 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아했던 메뉴들 —


감자튀김.

아침식사에 갑자기 감자튀김이 나와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터키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탄수화물 반찬인 듯했다. 하나같이 식고 눅눅해서 맛은 없었지만, 확실히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식사로 먹는 음식’같았다.


초콜릿 스프레드.

버터, 카이막, 레첼(과일잼), 꿀과 함께 ‘조식 4총사’처럼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약간 누텔라 같은 맛인데, 정말 터키 사람들의 아침상은 이 네 가지가 빠지지 않는 듯했다. 역시나 아들이 제일 좋아했다.

이전 02화10월의 안탈리아, 콘얄티의 코발트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