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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하늘로 간 아이들을 기리며

다태아 유산

by 엄마쌤강민주 Mar 15. 2025

의학의 발달은 여성의 유산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사회적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자신의 아픈 경험을 세상에 드러내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점점 더 깊어졌다. 나 또한 반복된 유산을 겪은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나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깊은 부끄러움과 수치심,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구나.”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건, 결국 내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치유하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2008년, 어머니의 항암치료가 무사히 끝난 어느 날, 아버지가 나와 올케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꿈을 꿨는데, 태몽 같아. 그런데 누구 태몽인지 모르겠어. 꿈에 둘 다 보였고, 곰도 두 마리가 보였어. 두 마리가 서로 어울리며 재롱을 부리더라”     


얼마 후, 나와 올케는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출혈이 있었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은 나는 의사로부터 “임신하면 임신 호르몬 수치가 올라야 하는데, 환자분은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고 있어요. 유산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지며 숨이 가빠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배에 손을 얹고, “정말요?”라고 물었다.     


의사가 오진한 것이길 바라며 다른 병원으로 갔다. 그곳의 의사가 말했다.

“이번 임신은 왼쪽 난소에서 배란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암에 걸리기 전, 왼쪽 나팔관은 자궁 외 임신으로 이미 터졌다. 왼쪽 나팔관이 없으면 왼쪽에서 배란된 난자가 자궁으로 이동할 수 없어서 임신이 어렵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학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응급실을 통해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당시, 출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호르몬 수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틀 후부터, 호르몬 수치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의사가 물었다.

“시험관 아기인가요? 여러 개가 수정되었어요.”

“아니요, 자연임신이에요.”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연임신으로 이렇게 많이 수정되기는 어려운데….”     


며칠 동안 초음파와 혈액 검사를 반복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어쩌면이라는 기대가 함께 하는 날들이었다. 의사는 자궁 안에 두 개의 작은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기집이 두 개입니다. 쌍둥이입니다.”

그 순간, 나는 꿈속에서 네 마리 작은 새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중 두 마리는 새장 밖으로 날아갔다. 꿈이 현실이 되어, 쌍둥이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과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기야, 쌍둥이래!” 남편에게 그 말을 전하는 내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러나 쭉쭉 오르던 호르몬 수치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의사는 굳은 얼굴로 “아기집 하나가 성장을 멈췄어요. 그래도 다른 하나는 잘 자라고 있으니 지켜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개의 수정란이 착상하는 경우, 일부는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고 자연 유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덧붙였다.     


떨어지던 호르몬 수치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의사는 내게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었다. 생애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기가 살아 있어, 건강해.’

그 순간, 그동안의 두려움과 불안은 모두 사라지고, 내 마음은 큰 안도감으로 채워졌다.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을 내 아이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꿈에서 작은 고양이가 미로를 헤매다 지쳐 죽는 장면을 보았다. 의사가 “태아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며칠 지켜봅시다. ”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 깊이 ‘그래도 다시 심장이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며칠 후, 의사는 “임신 6주라 자연유산이 되어야 하는데, 아기집이 여전히 자궁에 그대로 있습니다.”라며 수술을 권했다. “혹시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말에,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 순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자책과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기를 지키지 못한 것인가?’     


이번 유산은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시간, 이 사건을 내 마음속에서 곱씹으며 그 의미를 찾았다. 그 후 내게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구슬처럼 꿰여 하나의 목걸이로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이 사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내 업이 녹아 원래 일어나야 했던 일보다 작게 다른 방식으로 일어났다는 걸. 나는 이때도 신들의 보호 속에 있었다는 걸... 그리하여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는 걸...

#다태아유산 #다태유산 #계류유산 #자연유산 #기도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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