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으로 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해안 강민주
지난 주말,
고2 아들이
데이트를 신청했다.
“엄마, 영화 보러 갈래?”
개봉 한 달 만에
천만 관객을 찍은
〈왕과 사는 남자〉였다.
브런치 작가들이
개봉 초기부터 남긴 후기들을 읽으며
나도 자연스레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예매한 날부터
몸이 아팠다.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장염이었다.
몸이 조금 가벼워졌을 때
우리는 다시
영화를 예매했다.
스크린 앞에 앉은 나는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몸이 텅 빈 느낌.
속에서 자꾸
허기가 올라왔다.
그런데
영화 내내
밥상이 등장했다.
마을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싶어
자신의 마을이 유배지가 되기를 바랐던
엄흥도 촌장.
그리고
왕위를 빼앗기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배고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어린 왕 단종.
그들이 함께 앉은자리에는
늘 밥상이 놓였다.
권력을 잃은 왕과
권력은 없지만 사람들을 먹이려는 촌장이
같은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조금씩
서로의 사람이 된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영화는
권력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밥의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잘 먹이고 싶은 마음.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 아닐까.
요즘 시대
내가 권력에게 바라는 것도
사실 거창하지 않다.
그저
나와 아이가
안정적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면
충분하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배고픔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들과 함께
며칠 만에
뜨끈한 김치찌개를 먹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앞에서
우리는 단종과 세조 이야기를 했다.
왕위를 빼앗긴 어린 왕과
권력을 쥔 삼촌의 이야기.
아들과 나의 결론은
단종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자라는 동안
지켜 줄 부모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내 그릇에 한가득 떠 주며 말했다.
“엄마, 건강 잘 챙겨서 오래 살아.”
나는 그날
영화 한 편을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배고픔을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권력도
정치도 아닌
배고픔으로 남았다.
사람은 결국
밥을 먹을 형편이 되고
그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람답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