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해안 강민주
결혼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결혼 후
3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그리고
3년,
10년,
30년.
그때마다 혼인은 자동으로 종료된다.
계속 함께 살고 싶다면
다시 신고를 해야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혼 3일.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신혼 1개월.
설거지통 앞에서
왜 나만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문득 억울해진다.
신혼 3개월.
나는
양가에 자식 노릇을 하느라
조금씩
나를 잃어 가는데,
그는
내 보살핌 속에서
총각 때의 꼬질함을 벗고
부티를 두른 채
세상으로 나간다.
1년이 지나면
사랑을 확인하는 대신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긁어 쓴 카드값을
조용히 계산하게 된다.
3년이 지나면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목숨 걸고 아이를 낳고,
독박 육아 속에서
숨조차 고르게 쉴 수 없는 날들이
길게 이어진다.
10년쯤 지나면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해준다.
남편은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내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라고.
그 말을 듣고
싱크대 물을 틀어 놓은 채
한참 동안
가슴을 부여잡고 서 있었던 날이 있다.
어쩌면
이쯤에서
한 번쯤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같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변의 많은 결혼이
사랑이 아니라
관성으로 유지된다.
마음은 이미 멀어졌는데
집 때문에,
아이 때문에,
체면 때문에
같은 지붕 아래
시간만 흘려보내는 부부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몇 년마다
결혼을 다시 선택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조심해서
서로를 대할 것이라고.
종신 계약이 아니라
갱신형 결혼이라면
나는
커리어를 포기한 채
집 안에 갇혀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갱신형 결혼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결혼이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계약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어쩌면
조금 더 진심으로
서로를 붙잡으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을 본다.
엄마가 이혼하면
자신이 불행해질 거라고
믿고 있는 아이.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교회장이 되면
고등학교 졸업 전에는
이혼 안 할게.”
그 말을 듣고
아이는
선거에 나갔다.
당선 확률 90%.
이혼이
또 멀어진다.
부모의 결혼이
몇 년마다 갱신되는 세상이라면
아이들은
늘 같은 질문 속에서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이번에도
유지될까.
가정의 안정은
어른에게는 제도이지만
아이에게는
세상의 바닥 같은 것이니까.
그래서인지
이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도
나는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은
결혼을 하더라도
몇 년마다
다시 서로를 선택하는
갱신형 결혼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혼자서도
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부인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아이의 엄마는
이번 생에 이어
다음 생에서도
계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