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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둘째 낳으면 죽는대

신과 대화를 하다

by 엄마쌤강민주

꿈에서 처음으로 신과 대화를 나눈 건 2009년에 낳은 아들이 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푸른 하늘 아래, 웅장한 궁궐이 있었다. 궁궐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긴장감이 흘렀다. 궁궐의 큰 마당에는 길게 이어진 길이 한가운데 펼쳐져 있으며, 그 길을 중심으로 나는 오른쪽에, 남편과 시어머니는 왼쪽에 서 있었다. 우리 뒤로 많은 신하들이 양쪽으로 나누어 줄을 서 있었다. 우리 모두 엄숙하고 정중한 자세로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궁궐 중앙에는 왕이 앉을 높은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자리는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신성한 느낌을 주었다. 주변에는 붉은 깃발과 기치들이 펄럭이며, 금빛 장식이 돋보이는 장엄한 의자와 연단이 배치되어 있다.


흡사 사극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하늘의 끝자락에서 빛나는 무리들이 이곳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신성한 기운이 흘렀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 중 하나가 왕의 자리에 앉았고 나머지는 그의 주위에 서서 그를 옹립했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때 왕좌의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너에게 진정으로 훌륭한 아들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너의 목숨을 내놓거나, 나를 받들어야 한다.”

나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남편과 시어머니가 갑작스러운 고통에 몸을 움켜잡으며 비틀거렸다. 그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땀이 송골송골 맺혀 이마를 타고 흘렀다. 그들의 입술은 떨렸고, 숨은 거칠어졌다. 그들의 눈빛은 공포와 고통이 뒤섞여 흔들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기이한 꿈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손끝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의 의미를 짚어 보려 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나에게 다가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어머니의 이름을 보고는 불안하던 마음이 더욱 심해졌다. 어머니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한다는 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너 절대 둘째 낳지 마라. 너 둘째 낳으면 죽는대.”

어머니의 말에 눈앞이 흐릿하게 가려진 것 같았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

나는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내 목소리에도 불안감이 묻어 나왔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기분 나쁜 예감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모가 그랬어. 기도 중에 들었다고. 네가… 둘째를 낳으면 살아날 수 없다고 했어.” 어머니의 말에는 공포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손을 이마에 대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너무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어머니의 말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둘째 이모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기도 중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모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이모가 하는 말들이 대부분 맞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꿈속의 일이 있어서 나는 종일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날 밤,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그의 눈은 반쯤 흐려져 있었고,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아주 용한 분을 뵙고 왔는데, 나보고 부인과 아이 중 누가 더 소중하냐고 묻더라. 너, 둘째 낳으면 죽을 수 있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뒤엉켰다. 남편의 진지한 표정에 종일 나를 괴롭히던 불안이 확실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얼굴에 가득한 걱정과 두려움을 감추려 애썼지만, 눈빛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둘째를 낳으면 죽을 거라는 말을 세 군데서 들은 나는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어깨는 움츠러들었고 주변의 소음은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의 생각은 나를 옥죄는 말들의 울림에 갇혀버렸다. 며칠 후, 꿈에 신이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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