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양육과 일 모두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신이 아니다.
무사히 만삭이 되었다. 나는 만삭 사진을 찍어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배 안에서 아기가 움직일 때마다 천천히 손을 배에 얹고, 세상을 다 가진 여왕의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무릎을 꿇고 만삭의 배에 경건하게 입맞춤하는 순간, 나의 눈에 비친 것은 아이와 나를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할 남편과 함께 하는 빛나는 미래였다.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담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무럭 아,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구나.”
2009년, 나는 제왕절개로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 결혼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분만을 끝내고 난 뒤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술실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숨을 쉬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수혈을 받았다.
다른 사람의 피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하복부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끈적함은 피부를 자극하고, 몸의 온기와 맞물려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몸의 모든 감각이 이 불쾌한 상태에 집중되었으며, 무엇보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의사에게 부탁했다.
“선생님, 저 이대로 죽으면 어떡해요? 내 아이도 못 안아보고. 죽더라도 아이 한번 안아보고 싶어요.”
의료진이 신생아실에서 무럭이를 데려와 수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품에 안겨주었다. 그 작은 생명을 내 품에 안았을 때,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찡해졌다. 아기의 부드러운 피부와 작은 손끝은 나의 전신에 따뜻한 감정을 퍼뜨렸다. 비록 몸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출혈이 멈추지 않지만,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고통도 상쇄되는 듯했다. 눈물이 흐르며, 마음속으로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솟구쳤다.
아이를 신생아실로 돌려보낸 후, 나는 끈적하고 불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남편에게 피를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남편은 피곤한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어차피 또 흐를 텐데”라며 거절했다. 그의 태도에 나는 서글픈 감정을 느꼈지만, 남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흘러내리는 피로 인한 불쾌감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순간, 누워만 있으라는 의사의 주의사항을 잊었다.
“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자고 있던 남편에게 벌컥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 스스로 피를 닦았다. 그 때문인지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으며, 혈압이 무려 190까지 올라 다른 산모보다 2배 더 긴 시간을 입원했다.
몇 번의 유산과 그로 인한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품에 안은 이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배 속에서 무사히 자라나 세상에 나온 아기는, 모든 고난과 아픔을 이겨낸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남편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애 옷이 이렇게 구질구질해?, 무럭이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몰라? 명품사서 입혀.”
남편의 말은 내가 아이를 사랑하지도 않고 제대로 키우지도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들렸다.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돈이 어디 있어?”
남편은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돈을 벌어야지. 그동안 네가 일 안 해서 손해 본 게 얼마야? 어휴... 이제 일 시작해. 장모님도 편찮으신데, 장모님 용돈도 드려야 하잖아?”
나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의 말속에 담긴 현실적인 이유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남편에게는 단지 ‘일하지 않는 시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존재와 가치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삶의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없어서 그래. 아이만 낳으면 다 잘될 거야.”
나는 이미 인생의 모든 고통을 해결해 준다는 귀한 아들을 낳았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양육하는 것,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일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아이는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면 되지.”
이 말은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 아이를 갖기 위해, 부동산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내게, 남편이 무심하게 말했다.
“아기는 밖에서 낳아 올 테니, 너는 계속 돈을 벌어.”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심했었는데, 어머니의 항암치료와 다태아 유산과 출산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잊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이혼할 수 있을까? 이혼하면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하는 것이 정말로 옳은 일일까? 너무나 작은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평온하고 따뜻한 가정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깊은 피로감과 상실감 속에서 점차 무기력해졌다.
문득 시부모님이 내가 돈을 벌려는 욕심으로 그동안 아이를 갖지 않는 거라고, 오해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홀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인천에서 문경까지 갔다. 긴 여정 동안,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손주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시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귀한 손주, 내가 낳은 아이니까 나에게도 잘해줘’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아이만 키우고 싶은데… 남편은 계속 일을 하라고만 하네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그동안 힘들었던 감정이 뒤섞여 올라오면서 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시부모님은 말없이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더 진지한 표정으로 시부모님을 바라봤다.
“저도 아이도 잘 키우고 돈도 잘 벌고 싶어요. 하지만 만에 하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가 아이가 잘못되면요?”
인천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끊임없이 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이고, 씻기느라 한순간도 손을 놓을 틈이 없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아이와 함께였다. 소파에 앉아 잠시 쉬려 해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금세 다시 일어났다. 몸은 지쳐가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 순간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지, 잊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남편은 매일 회사 일, 만남 등을 이유로 늦게 돌아왔다. 나는 시댁까지 남편 없이 아이만 데리고 자주 내려갔다.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되새기며, 매일의 반복 속에서 나를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시작했지만, 그저 일시적인 피로일 거라고 생각하며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고, 때때로 전혀 나오지 않기도 했다.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목소리가 계속 안 나오신다는 것은 몸에서 보내는 신호예요. 스트레스나 과로가 원인일 수도 있고요. 최근에 스트레스가 많으셨나요?”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간신히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전혀 문제없어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행복하고, 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의사는 나의 미소 속에 묻어나는 피로와 고단함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본다.
“마음은 아이 키우기가 행복하다고 하시지만, 몸은 힘들다고 하네요.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그 말이 맞다고 느꼈지만, 여전히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가 아이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했고, 내가 부족한 엄마라고 느껴졌다.
“저는 괜찮아요. 그냥 좀 쉬면 나을 거예요.”
그렇게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했던 나는, 막상 시어머니가 둘째를 낳으라는 말에 펄쩍 뛰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아이를 낳는 것이 행복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자와 이혼하지 않고 평생 살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혼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학창 시절부터 양성평등을 제대로 가르쳐, 부부란 어느 한쪽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평등한 관계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성이 평등할 때 공동육아가 활성화되고,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에 대한 존중이 가능하다. 이 기본 위에 경제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아이를 많이 낳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