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을 만나다
2010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시댁에서 잠깐 잠이 들었을 때였다. 꿈속에서 하늘까지 높이 솟은 산이 보였고, 산을 따라 이어지는 좁고 고요한 길이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 하나, 둘씩 선녀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선녀가 되어 그 길을 오르기 시작한 듯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그 모습은 현실을 벗어난 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의 옷은 바람에 따라 흩날리며, 부드럽고 고요한 흐름을 이루었다. 치맛자락과 소매 끝이 바람을 타고 살며시 흔들릴 때마다, 핑크빛으로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 빛은 마치 그들이 걸을 때마다 세상에 조금씩 빛을 내려놓는 듯했다. 길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듯,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따라가려 해도 쉽게 닿을 수 없는, 그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들만이 갈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잊은 채, 그들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데 산길을 오르던 선녀들 사이로 한 선녀가 가던 길을 뒤돌아 내려오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고요하지만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 순간,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맞닿자 얼음처럼 냉랭한 눈빛이 나를 압도했고 나의 몸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찔하며 굳어졌다. 선녀는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당신은 평생 정신암(精神癌)에 시달릴 거예요.”
말이 끝나자, 그 순간 공기 중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스쳤다. 숨이 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치 얼음이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 듯, 몸은 무겁고 불편한 상태로 가라앉았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겨운 가운데, 차갑고도 어두운 공허함이 내 마음을 파고들며 모든 감각을 빼앗아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공간에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녀는 그 말을 마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요하게 고개를 돌려 무리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은 점점 흐릿해지며, 산의 깊은 곳으로 사라져 갔다. 주위의 풍경도 점점 흐려지고,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말이 내게 남긴 공허한 여운에 잠겨 있었다.
눈을 뜨자, 나를 감싸던 공기의 차가움과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을 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불안이 나를 덮쳤다. 내 눈빛은 허공을 떠돌며 안정되지 않았고, 마음은 여전히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웠다. 두려움이 나를 삼키려는 듯, 내 심장은 요동쳤다.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모아 염불을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숨 가득한 염원이 내 입술을 스쳤다.
‘부처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그 순간, 내 시선이 방 안에 있던 오래된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여러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이 조용히 나를 부르는 듯했다. 고승 법문곡과 생활 속의 반야심경, 그리고 무상계. 나는 그중에서 고승 법문곡을 손에 들고, 무겁고 깊은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펼쳤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책의 차가운 표면이 마음속의 혼란을 조금씩 진정시키는 듯했다.
그렇게 한 장씩 넘기던 중,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참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답을 주는 듯한, 묵직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동안 쌓인 모든 죄와 후회가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나는 책상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며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했다. “잘못했습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 단어는, 그동안 묶여 있던 내 모든 고통을 풀어주는 듯했다. 내가 흐느끼는 소리 속에서, 마치 마음의 짐이 하나씩 내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해답이었던 걸까?
그 불서들은 시아버지가 문상 갔다가 받아오셨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는 후손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바라며, 법공양한 것이었다. 나는 그 책들을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밤이 되고 아이의 숨소리가 마치 세상 모든 소리들을 잠재운 듯, 고요하게 방안을 가득 채우면, 나는 상 위에 시댁에서 가져온 ‘생활 속의 반야심경’을 조용히 펼쳤다. 낯선 한자들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속에 소용돌이처럼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한 자, 한 자를 신중히 읽어 내려가며, 뜻을 헤아리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한자들이 나를 비웃듯 다가왔고, 나는 그때마다 국어사전과 옥편을 꺼내 들었다. 모르는 한자를 종이에 하나하나 써 가며, 서서히 그 의미를 짚어 나갔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생기와 총명함이 사라진 머리는 흐릿하게 안개에 싸여 있었다. 단어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것조차 벅차게 느껴졌고,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야 했다. 반야심경에 담긴 뜻을 깨우치지 못하면, 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그 시절, 내 공부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피눈물 날 정도로 간절한 열망이었다.
하루는 남편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왔다. 그는 그 시간까지 불경을 읽고 있는 나를 보더니, 붉어진 얼굴로 화를 내며 나를 몰아붙였다.
“종일 애랑 집구석에서 놀면서 불경이나 읽고, 잘하는 짓이다.”
그는 말하면서 더 화가 나는지, 내 손에 들린 불경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책은 공중에서 잠시 흔들리다가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남편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다른 여자들은 밖에서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아? 나가서 일해. 젊은 여자가 안 어울리게 집구석에서 불경만 읽지 말고, 차라리 교회에 다니던가.”
나는 당혹감에 말문이 막혔다. 아들을 낳기 전, 남편은 주말마다 전국의 유명한 사찰로 나를 안내했다. 친정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도 남편은 그들을 유명한 사찰로 안내하곤 했다. 신혼 초에 “여기서는 꼭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줘.”라며 구인사에 데려간 것도 남편이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물어봤다.
“자기야, 내가 신병에 걸렸으면 어떻게 할래?”
내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의 답이 두렵기도 했고, 동시에 나의 내면에서 점점 더 깊어져 가는 불안함과 혼란을 그가 이해해 주길 바랐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장 이혼이지, 귀신 들린 여자랑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그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내 마음속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차갑고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나쁜 놈’ 그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차오를 뻔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로 인해 차가운 절망과 외로움을 느끼며, 나의 마음은 깊은 어둠에 빠졌다. 그 후 나는 꿈에서 남편이 나를 죽일 거라는 신의 말을 들었다.
간절하게 반야심경을 독송하던 어느 날, 나는 꿈속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나에게 항암제라며 작은 약병을 건넸다. 항암제를 마시는 순간 진저리 나게 쓴맛이 온몸에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점점 맑은 정신으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바로 보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2017년 윤 6월에 나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한 데에는, 무료로 받은 법공양이 나를 살린 것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 내 경험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내 부끄러운 과거가 알려지는 것쯤이야…. 나는 이런 내가 참 좋다.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