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이루어진다. 제대로 원을 세우고 기도하라
나는 조용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신이 정말 있는 걸까? 꿈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현실에서 고민하는 것은 단순한 나의 망상이 아닐까?’
그러나 몸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감각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나의 몸은 점점 더 무겁고, 피로에 쌓여갔다. 종종 이유도 없이 떨림을 느꼈고 손끝과 발끝에는 얼음이라도 박힌 듯 시렸다. 그리고 원인 모르게 시작된 지독한 허리통증은 나에게 숨이 멎는듯한 고통을 주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은 왜 나에게 훌륭한 아들을 주겠다며 유혹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혼미한 정신 속에 ‘나무마하반야바라밀’을 간절히 외쳤다. 그러다 내가 지나온 행적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직 남자 친구이던 시절, 남자 친구가 처음 자기 집에 가자고 했을 때, 나는 그냥 한번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그 집을 방문했다. 그때 남자 친구의 가족들로부터 아주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들의 미소와 말투에, 나는 점점 마음이 풀렸다.
저녁을 먹으러 모두 함께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 어머니랑 오빠랑 같이 오셨군요.”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은 남자 친구의 어머니를 보고 “따님과 아드님이 어머니랑 똑 닮아 좋으시겠어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건 분명한 오해였다. 그런데 그때, 내 얼굴을 살펴보던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네, 내 딸 예쁘죠? "라고 말했고 나는 옆에 있던 남자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식당을 나서며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되새겼다. 시어머니와 닮은 내 모습,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연대감,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서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따뜻한 햇살이 거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신혼 아파트, 어딘가에서 들리는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도 여기선 아늑하게만 느껴졌다. 벽을 따라 놓인 커다란 소파,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새로운 가구들. 모든 것이 새롭고, 그저 꿈만 같았다.
예비 남편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그 마음보다 더 큰 감정은 바로 시댁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이 집을 공동명의로 선물한 것,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신뢰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나는 깊이 느끼고 있었다. 이 집을 사주신 것은 나에게 이 결혼 생활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안겨주었고, 동시에 시댁에 대한 충성심이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며 나는 아파트의 창문 너머로 펼쳐진 도시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삶의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고, 그 감사함이 마치 종교적인 맹세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왔다.
“시댁에, 남편에게, 그리고 우리 가정에 충성을 다하겠다.” 나는 그 약속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집은 단지 우리가 살아갈 공간을 넘어, 시댁의 사랑과 기대가 담긴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그들의 믿음에 부응하고, 가족을 위한 길을 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결혼 초, 시댁에 갔을 때였다. 어느 날, 집 앞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그녀는 친근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분의 표정에서 조금은 호기심과 약간의 놀라움이 묻어났다.
“새댁은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부잣집에 시집왔을까? 정말 결혼 잘했어. 이 집 엄청 부자야.”
처음엔 너무 갑작스러워 순간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고, 그 아주머니의 말속에 담긴 의미가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 이제 부잣집 며느리로 꽃길만 걷는 거야?’ 아주머니의 말은 마치 내 결혼 생활이 찬란하리라는 예언처럼 들렸다. 그녀는 곧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결혼 전에 임신하면 무조건 아들이야.”
남편과 연애 시절, 시어머니는 농담처럼 종종 이런 말을 하셨다. 나는 시어머니가 간절히 아들 손주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았다. 시어머니의 기대는 묵직하고도 고요한 압박처럼 내 어깨에 얹혀 있었다.
마음속으로 시댁에 충성을 맹세했던 나는 결혼 후, 산소에 계신 조상들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제사 때마다, 그리고 절에 갈 때마다, 조상님들과 부처님 앞에서 고요히 손을 모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저에게 집안을 빛낼 훌륭한 아들을 주십시오.”
나의 기도는 오랜 시간 반복됐다. 때때로, 그 기도가 너무 강렬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모든 것이 이 아들로 인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집안의 명예를 이어갈 아들이라는 생각은 나를 잠시라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시댁과 남편에 대해 서운함과 분노가 쌓여 원망으로 굳어졌고, 나는 집안을 빛낼 아들을 원하기는커녕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이 찾아와 내게 제안했다.
“너에게 진정으로 훌륭한 아들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너의 목숨을 내놓거나, 나를 받들어야 한다.”
2019년 9월, 43살 때, 19살에 다리에 박았던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나는 그때가 나의 전생 업연이 끝난 시점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꽃다발을 들고 나의 퇴원을 축하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불현듯 내가 그동안 해왔던 기도가 모두 이루어졌다는 걸 알았다. 나는 늘 나에게 꽃을 100송이 선물하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남편만이 유일하게 연애 시절부터 결혼 생활 내내 나에게 꽃을 선물하고 있었다.
그걸 뒤늦게 알아차린 이유는 기도할 때와 기도가 이루어질 때, 그 사이에 시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시절 인연이라고 표현하는데 내가 기도로 하늘에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자라 열매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나는 늘 눈앞에 당면한 문제들로 힘들었고 그래서 늘 새로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옛날의 간절한 기도를 잊고....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걸 모른 채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데 세상이 내 기도대로 움직인다고... 그 후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가지고 함부로 기도하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기도할 뿐이다.
“부처님, 오늘 000을 만납니다. 오늘 만나는 000의 전생, 현생 그리고 내생의 모든 인연들과 그들의 전생, 현생 그리고 내생의 모든 인연들에게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남김없이 참회하옵니다. 서로 용서하여 업연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있는 자리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에게 복이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