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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화 꿈에 나타나 이혼하겠다는 올케

하늘은 다 알고 있다

by 엄마쌤강민주

올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올케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구미 이모와 어머니를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쳤는데, 이모가 올케의 친정어머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그저 고성이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마치 당장이라도 한 손으로 휘어잡아 뺨을 후려칠 것 같은 기세였다고 했다. 어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이모를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올케는 처음엔 놀랐고, 다음은 당황했으며, 마지막엔 분노했다.

“왜… 왜 우리 어머니에게 그런 짓을 한 걸까요?”

그녀는 내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키 170cm의 이모. 체격도, 기운도 남다른 그녀는 늘 범상치 않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올케의 친정어머니는 150cm 남짓한 작은 체구에 연세도 훨씬 많았다. 그녀가 딸의 시댁 식구에게 그토록 매몰찬 언성을 들었다는 수치감과 공포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을 올케의 모습도 떠올랐다.


구미 이모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종종 무아지경에 빠져 기도하고, 신을 들먹이며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던 사람. 그 모습에 나조차 당혹스러웠고, 그런 이모에게 이끌려 다니는 어머니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이, 내 삶이 엉망이 된 것도 다 어머니와 이모 탓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직접 겪고, 직접 본 것들. 그것들은 단순한 미혹이나 망상이 아니었다. 그 세계는 분명 존재했고, 이모는 그 경계 어딘가에 서서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신들림은 광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한 자의 고통이었다.


올케와 그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구미 이모의 분노와 광기 속에는, 그들로선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어떤 기운 즉 세상 너머에서 밀려오는 설명 불가능한 무엇이 작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마도 어머니 역시 무언가를 느꼈던 건 아닐까? 이모와 함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하지만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상식과 이성의 언어로는 닿지 않는 영역이었다. 올케와 그의 어머니의 당황과 분노 앞에서 나는 조용히 머리를 싸맸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올케의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네 이모가 말하길, 사부인에게 사부인을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귀신이 달라붙었다더구나. 그 귀신이 사부인을 놓지 않으려 해서, 이모가 귀신에게 호통을 친 거야. ‘당장 떨어져라! 안 떨어지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말이지.”

어머니의 눈가에 떠오른 승리의 미소는 환했다. 구미 이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치 큰 업적을 이루어낸 전사처럼 당당했다.

“이모가 귀신을 쫓아냈으니, 앞으로 사부인은 괜찮을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며 흘러나왔다. 그 말에는 지금 올케와 사부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무심함이 배어 있었다. 그저 ‘귀신을 내쫓아서 자신의 손으로 사부인을 살렸다’는 자부심만 가득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모가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삿대질한 대상은 올케의 어머니가 아니라 올케의 어머니를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귀신이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승리자 같은 미소 앞에서, 나는 어떤 반문도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자신과 이모 덕분에 사부인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은 충분히 감사받아야 생각하는 어머니와 이모 때문에 나는 다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고 싶었다기보다, 믿는 쪽이 더 설명이 되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내가 꾼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서 올케는 하얀 소복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또렷한 목소리로, 슬픔도 원망도 없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혼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연한 불안감만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 이모의 말과 어머니의 설명, 그리고 내가 꾼 꿈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만약 이모의 말이 맞다면, 올케의 어머니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이 올케의 어머니를 데려가려 했고, 이모는 그걸 떼어내려는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올케가 소복을 입고 꿈에 나타났던 이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충격에 휩싸인 끝에 남편과도 결혼 생활을 끝내려 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꿈은 단순한 예지몽이 아닌, 경고였고, 내가 개입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나는 다시 올케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내 눈을 피해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꾹꾹 눌러가며 내가 꾼 꿈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가 했던 말을 풀어놓았다.


“이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돈어른께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었어요. 이모는 그걸 막으려 했던 거고요.”

나는 말을 멈추고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올케의 눈이 나를 향해 돌아왔다. 흔들리는 동공 너머로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었다. 차가운 불신이었던가. 오래된 상처였던가.

“그리고… 제 꿈에서 올케가 하얀 소복을 입고 나타나 말했어요. ‘이혼하겠습니다.’라고요. 만약 이모가 귀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면 사돈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거고 올케는 이 모든 것을 구미 이모 때문이라 생각할 거예요. 그럼 시댁에 상처받은 올케는 이혼하겠다고 하겠지요.”

말은 조용히 흘렀지만, 방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감정이 굵고 깊은 강처럼 고요히 밀려들고 있었다. 내가 평소 이들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이론이나 설명이 아니라 결국 오랜 시간에 쌓인 ‘신뢰’였다.


“올케, 내 동생이랑 이 사건으로 이혼하고 싶어?” 다행히 올케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내 말을 믿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이 있고 벌써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날의 기이한 소동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취를 감추었고, 모두는 평범한 일상을 산다. 올케의 어머니는 여전히 건강히 살아 계시고, 올케와 내 동생은 여전히 부부다.

나는 이것이 그날 내가 꺼낸 말들 덕분이라고 믿는다. 아니, 어쩌면 그날 밤 꾼 꿈 덕분일지도 모른다. 꿈은 현실보다 먼저 진실을 안다. 때로는 언어로 다 전할 수 없는 경고를, 더없이 선명한 이미지로 가슴에 새긴다.

살다 보면, 참 묘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뜻하지 않게 어떤 사건 속에 휘말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되는 일.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그 장면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며든다. ‘내가 그 사람을 구했을지도 몰라.’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어쩜 나는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순간일수록 나는 마음을 낮추려 애쓴다. 내 손길을 생색내지 않기 위해,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나 자신을 다잡는다.


그런 태도는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올케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보고서 형성된 것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자신들이 사부인을 구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사부인과 올케는 감사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은 오해하고 자신들이 그들로 인해 상처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이모를 용서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그 장면들을 지켜보며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항상 ‘도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조심스레 말하곤 한다.

“내가 상대를 살려주었더라도, 그 사람이 먼저 청하지 않았고, 내 마음과 행동을 상대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결국 폭력이 될 수 있어요. 하늘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위태로운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손길을 알아달라고, 보답을 바라게 된다면… 그 마음은 결국 원수를 만들 수도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나에게 사람을 살릴 기회를 준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말한다.

“그들을 살려서 내가 복을 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들은 나에게 복 지을 기회를 준 은인입니다. 그들 덕분에 하늘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그에 걸맞게 대우하려 합니다.”

“인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보답보다, 하늘이 주는 과는 훨씬 더 커요. 그러니 내가 좋은 일을 했으면 그 인과를 희망 삼아 기다리세요.”


그러니 내 도움을, 내 진심을 상대가 몰라준다고 해서 상처 입지 말자. ‘하늘은 다 알고 있다.’ 그것이 내 경험이고 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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