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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소복을 입고 나타난 올케

예지몽 이야기 하나

by 엄마쌤강민주

그 밤은 유독 조용했다.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어둠 속, 나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꿈이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마치 또 하나의 현실처럼 생생하고 선명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 올케가 있었다. 그녀는 흰 소복을 입고 있었다. 산 사람의 것이 아닌, 죽은 자의 옷.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눈빛에는 무언가 단단한 결심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차분히 말했다.

“이혼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몸속으로 얼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꿈이지만 단순한 환상이라 하기엔 너무도 또렷했고,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곧장 참회문과 반야심경을 읽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심장은 마치 계단을 뛰어오른 듯 거칠게 뛰었다. 당시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리고 잠들기 전마다 참회문을 읽으며 다짐했다. ‘10선을 지키자. 산 목숨 죽이지 않고, 죽은 목숨을 살리자. 고기를 입에 대지 말자’ 그리고 낮에는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나는 효림에서 펴낸 ‘생활 속의 반야심경’을 독송했는데 그 책은 269페이지로 되어있었다. 나는 하루에 1번씩 그 책을 독송했다.


그즈음의 나는 종종 미래를 암시하는 꿈을 꾸었다. 어릴 적부터 꿈은 내게 또 다른 세상이었다. 현실보다 더 묘하고, 때로는 현실보다 더 흥미롭고 진실됐다. 나는 그 꿈들을 언젠가는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신비롭고 흥미로운 판타지 소설이 될 터였다.


하지만, 내가 진짜 판타지 속 주인공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공포와 신비가 얽힌 이야기에. 내 꿈에서 일어난 일들은 곧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듣는 것에 침묵했다. 다른 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잘못하다가는 미쳤다며 정신병원에 끌려갈 거라는 공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꾸는 꿈을 그저 ‘개꿈’이라 치부하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신의 손길이, 그 무엇보다 강한 어떤 존재의 기운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기묘한 건, 내가 꿈을 꾼 이틀이나 삼일 뒤면 구미 이모가 기도 중 같은 내용을 본다는 점이었다. 당시 구미 이모는 이혼하고 구미가 아닌 전주에서 재혼해서 살고 있었다. 이모도 새 이모부도 열심히 교회에 다니셨다. 그럼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그 이모를 구미 이모라고 불렀다. 내가 꿈을 꾸고 혼자 불안에 떨고 있으면 이모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모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당장 이모에게 대전으로 오라고 말했고 두 분은 함께 무속인을 찾아갔다.


이모가 기도 중 본 광경이 무속인의 입에서 하나하나 정확히 되짚어졌다. 단순한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정밀하고 생생한 일치였다. 그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이모가 기도 중 본 장면들, 그것들이 무속인의 말과 거듭 겹쳤다. 기이한 일의 반복은 우리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믿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꿈에 올케가 소복을 입고 나타났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섬뜩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혼까지 하겠다니. 나는 그 밤의 꿈이 주는 불안을 반야심경을 외우며 다독였다.


며칠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올케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보다 더 많은 말을 전한 것은, 직접 마주했을 때 그녀의 눈빛이었다. 차마 시누이 앞에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지만, 눈동자는 분명 말했다.

“구미 이모, 정말 제정신 아니에요. 그 사람이 미쳤다는 말, 그저 헛소문이 아니었어요.”


올케가 전한 이야기의 요지는 이러했다. 구미 이모와 어머니를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쳤는데 이모가 올케의 친정어머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그저 고성이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마치 당장이라도 한 손으로 휘어잡아 뺨을 후려칠 것 같은 기세였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키 170cm의 이모. 체격도, 기운도 남다른 그녀는 늘 범상치 않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올케의 친정어머니는 150cm 남짓한 작은 체구에 연세도 훨씬 많았다. 그녀가 그날 얼마나 두려웠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딸의 시댁 식구에게 그토록 매몰찬 언성을 들었다는 수치감과 공포. 그리고 그 옆에서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을 올케의 모습.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한때 이모를 올케처럼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모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종종 무아지경에 빠져 기도하고, 신을 들먹이며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던 사람. 그 모습에 나는 늘 당혹스러웠고, 그런 이모에게 이끌려 다니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우리 가족이, 내 삶이 엉망이 된 것도 다 그 탓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가 직접 겪고, 직접 본 것들. 그것들은 단순한 미혹이나 망상이 아니었다. 그 세계는 분명 존재했고, 이모는 그 경계 어딘가에 서서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신들림은 광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한 자의 고통이었다.


그날, 그 장면에서 진정 무서웠던 건 어쩌면 이모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봤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올케와 그녀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이모의 분노와 광기 속에는, 그들로선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어떤 기운 즉 세상 너머에서 밀려오는 설명 불가능한 무엇이 작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올케와 그의 어머니를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어머니도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이모를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말렸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 역시 무언가를 느꼈던 건 아닐까? 이모와 함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하지만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상식과 이성의 언어로는 닿지 않는 영역이었다. 올케와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당황하고 분노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머리를 싸맸다.


올케의 친정어머니는 1950년 이전,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이름도 기억 못 할 어린 나이에 6·25 전쟁을 맞았다. 총성과 굶주림,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세상에서 그녀는 힘없는 아이로 살아남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매일 술에 절어 있는 폭력적인 남편과 살았다. 그녀가 아이 둘을 제대로 키워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녀의 삶은 상처로 얼룩졌지만,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를 지탱한 건 다름 아닌, 신앙이었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단순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다. 생의 마지막 벼랑 끝에, 그를 살려준 이가 바로 하나님이라 믿었다. 그래서 가족 모임이 있어도,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그녀는 교회를 택했다. 그녀의 삶에서 하나님과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그것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깊고도 단단한 신앙이었다.

나는 언젠가 올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그렇게 신실한 신앙인이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올케는 말없이 눈을 깜빡이며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삶이 멈췄어요. 말도 하지 않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구석에 웅크려 앉아, 그냥… 가만히 계셨죠. 누가 밥을 떠서 입에 넣어주면 그제야 씹지도 않고 삼키는, 살아 있는 유령 같았어요.”


그런 어머니에게 교회의 전도 무리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밥을 지어 먹이고, 찬송가를 불러주며 집안을 정리했다. 그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던 어느 날, 어머니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삭이듯이. 마치 오랜 침묵의 벽을 두드리는 것처럼요. 그때 사람들은 그걸 기적이라 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 기적의 순간 이후, 그녀는 완전히 달라졌다. 신앙은 그녀를 다시 살아 있게 했고, 그 영향은 가족 전체로 번져갔다. 올케 역시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시댁의 종교는 전혀 달랐다. 내 어머니 즉 올케의 시어머니는 무속에 가까운 불교 신자였고, 부처님에 대한 기도와 무속인의 점괘 그리고 교회 다니는 이모들이 말하는 신탁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동생, 구미 이모는 더욱 극단적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집사란 타이틀이 있었지만 그녀는 때로는 신들린 듯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음속으로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올케의 친정어머니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거칠게 다가섰다. 구미 이모는 거의 뛰어들 듯 달려들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마치, 둘만의 어떤 깊은 결의가 있었던 것처럼.

올케는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은 당황했으며, 마지막엔 분노했다.

“왜… 왜 우리 어머니에게 그런 짓을 한 걸까요?”

그녀는 내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물었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해하려 해도, 설명하려 해도 그건 말로 다 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이모와 어머니의 행동이 망상이 아닌 것 같다고 믿게 되었지만, 그 믿음은 말이 되지 않았다. 특히, 신앙으로 기적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한 순간이었다. 기도와 기도가 부딪히고, 믿음과 믿음이 서로를 상처 냈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저 조용히, 아파 오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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