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에 부쳐..
2025.4.21의 일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다.
2013년 베네딕토 교황님이 직접 교황직을 내려놓고 콘클라베를 거쳐 교황으로 즉위하신지 만 12년만이다.
교황님은 즉위하신 후부터 이전 교황남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셨다.
바티칸의 기존 교황 숙소가 아닌
수도자들이 머무는 아파트의 작은 방에 거처를 정하시고
값비싼 의복과 장신구 등은 거절하셨다.
2013년 봄, 나는 제주에서 막내를 낳고 모든 산모가 그렇듯 집에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막내를 봐주러 오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아주 신실한 천주교 신자셨다.
아이를 6명을 낳고 길러낸 분이었고
여섯 아이들 이름이 루시아, 미카엘 등...가톨릭의 성인들 이름을 그대로 따 올 정도였으니,
대단하신 분이라며 감탄을 했었다.
암 투병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으셨고 손에 물을 묻히 지 않은 고운 삶을 살아오셨는지
아주머니의 삶의 이력은 잘 모르겠지만
시금치 나물이나 미역국을 끓이는 것도 서툴어
산후도우미 같은, 체력이 좋아야 하고 힘을 써야 하는 일은 어려운 분이시라고 여기며
남편과 주변 사람들에게 미역국도 못 끓이신다고, 내가 끓여야 된다..고 하.....ㅠㅠ하고
툴툴댄 것도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실한 아주머니는 아기의 목욕을 시키며
"복 받은 아이야 잘 자라라",
"하느님이 주신 이 아이에게 측복을 내려 주소서" 등의 좋은 말들을 아이에게 해 주셨다.
로션을 바르며 기도를 해 주시고
언젠가는, 낮잠을 자고 거실에 나와 보니
새로 즉위하신 교황님과 바티칸이 끊임없이 나오는 PBC채널을 틀어놓고
수건을 개다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아기는 자고, 아주머니도 주무시고 나는 자고 일어났고.
텔레비전을 끄고 베개를 가져다 드리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했다.
그 다음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오후는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제주의 3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2013년 봄의 끝에 우리 세 아이는 모슬포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제주 서남부는 우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멀고 먼 타지여서,
대모와 대부는 은슬과 다연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고00선생님의 자녀들이 기꺼이 맡아 주었다.
미사와 세례가 끝나고 고00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온누리빵집의 고구마케익은 아직도 생각난다.
아이를 사랑으로 목욕시켜 주고 돌봐 주신 도우미 아주머니는 잘 지내실까 궁금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름을 따 우리 막내의 세례명은 프란치스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올리면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계시던 산후도우미 아주머니가 연상된다.
이사, 출산, 제주라는 특별한 공간이 주는 강렬한 감정과 경험들과도 엮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가에게 해 주신 복된 말씀들 덕분인지.
아기는 이제 사춘기 초입의 초등 고학년으로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신생아 시기에 기도를 받으며 목욕한 아기가 몇명이나 될까?
고통 앞에 중립이 없다고 하신 교황님,
아이들을 사랑하신 교황님,
소수자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외면하지 않은 교황님,
소박한 구두와 침대에 만족하고 감사하신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님..
고통없이 편안히
아버지 품에서 영원히 쉬시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