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선택, 그리고 가족의 대화

by 어깨빌려주기


1. 9월의 선언

2025년 9월 초, 큰딸이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서울에 연습실과 작업실을 구해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음악 작업을 해보고 싶다며,

매달 나가던 학원비를 작업실 대여비로 지원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름 가볍게 던지는 말인 것 같아 보이는데.

그 안에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무엇보다 부모를 고민의 자리에 초대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러 궁금증이 남았다.

연습실?

작업실?

자취를 말하는 건지?

아직 미성년자인데?

알바는 어디서,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저녁 가족 톡방에 대화를 요청했고, 딸은 흔쾌히 수락했다.

월요일 저녁, 남편과 나, 딸이 저녁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참 즐거웠다.

그동안 자신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던 얼굴에는 이제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미래를 향해 떠나는 배의 기적을 기다리는 여행자처럼, 딸의 표정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2. 연습실 실사

악기 중고 장터 ‘뮬(mule)’에는 다양한 연습실 대여 글이 올라온다.

가격대는 30만 원대부터 8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교대역 근처를 알아보다가, 가격과 조건을 고려해 건대입구 근처 연습실 몇 곳을 눈여겨봤다.


오랜만에 건대입구로 향한다.

건대입구역의 지상전철 아래 인도를 걷는데

올해 초 딸과 갔던 도쿄여행 중, 아키하바라에 들러 거리를 걷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기했던 건, 딸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직접 방문해 화장실, 방 상태, 탕비실까지 확인하니 ‘여기다’ 싶었다.

딸의 머릿속에만 있던 소망이 가족회의를 거쳐 실사로 이어지고,

곧 계약을 마음먹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일.
상상이 현실이 되는 속도에 딸은 무척 기뻐하며 여러 계획을 세웠다.


3. 뜻밖의 제안

그런데 다음 날, 딸이 가족 톡방에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학원 원장님이 싱글 음원을 내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악기당 1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세션은

내가 지인들을 통해 해결할게. 넌 작사·작곡만 해 와.
프로듀싱과 미디는 내가 맡을게.
네가 가진 싱글 음원에 대한 저작권은 너에게 있어. 한 번 내 보자.”

원장님의 고심 끝 제안이었다.


싱글음원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딸은 전했다.

돈도 돈이고, 거기에 드는 노력 또한 상당하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학생신분인 딸이 도전하기에는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겠지.

그리고 나중에 대학 갈 때도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것 같다며,

음원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았다.

이미 연습실로 가는 것을 반 독립이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결국 연습실 계약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당분간 연습실은 바이바이.


4. 선택의 갈림길

계약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연습실은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는데? 하지만 싱글 음원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잖아….’

나는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 최종 결정은 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주체는 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면...

연습실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보러 다니고 구할 수 있는 건데..

싱글음원...그거 맨날 오는 거 아니라면

그거 해야 되는 거 아냐?

하고 내 의견을 넌지시 전했고 최종 결정은 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주체는 딸이 되어야 한다.

계약 전날까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5. 딸의 결정

딸은 결국 연습실보다 음원 발매를 선택했다.

그리고서...무언가를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연습실 로망은 싱글음원 발매 후 오게 될 것 같다.

혹은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은 결단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줄 것이다.

결코 실망하거나 후회하지는 말자.



6. 과정의 의미


삶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파도는 끊임없이 굽이친다.

하지만 애정 어린 대화 속에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궁금한 것을 묻고,

가족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더없이 소중하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알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애정과 신뢰는 켜켜이 쌓여간다.


결과보다 과정.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