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파라솔과 함께 그녀가 등장한다
나는 동네 부동산사무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병이 있다. 홀린 듯이 걸음을 멈추고 입구에 붙은 아파트 전세, 매매가 변동을 빠르게 스캔하고 나서야 자리를 뜨곤 한다. 그렇다고 집을 내놓거나 이사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속수무책으로 몸을 맡기는 이유는 최근 몇 달 사이 아파트 시세가 티끌만큼 오름세를 탔기 때문이다. 미세하지만 황홀한 숫자놀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단전에서부터 뜨뜻한 마그마가 흘러넘친다. 만화가라면 주인공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방방 솟구치는 장면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이 도시는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서 400km 이상 떨어져 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훨씬 더 넘은 구축에 속한다. 근데 이런 소도시 구닥다리 아파트값이 오르게 된 결정적인 시기는 지난해 공원이 들어선 시점과 일치한다.
아파트 바로 옆에는 오랜 세월 묵혀온 공터가 있었다. 축구장 서른 개쯤 짓고도 남을 만큼 광활한 부지에는 간혹 관광버스나 대형트럭 몇 대가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제멋대로 우거진 잡풀 사이로 금방이라도 뱀이 나올 것만 같았고 타잔이 아닌 이상 누구도 접근할 수 없어 보였다. 이 방치된 아마존에 어느 날 공사가 시작되더니, 나무 그늘 아래 벤치와 산책로를 갖춘 공원이 생겼다.
나자빠져 있던 공간이 어엿한 공원으로 변신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숨바꼭질을 마친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주민들은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아이들 손을 잡고, 혹은 반려견 목줄을 잡고 공원을 거닐었다. 휴일이면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거나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드러누워 TV나 보던 우리 부부도 자연스럽게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공원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처럼 동네에 활기가 돌았다.
공원이 소위 핫플로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되었다. 노점상이 모인 것이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서너 명이 공원 입구에 자리 잡고 앉아 채소나 과일 등을 팔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굵은 손마디가 살아온 이력을 증명했다. 평생 늦잠이라곤 자 본 적 없을 것 같은 할머니들은 아침 7시만 되면 어디선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나 바닥에 빨간 대야를 하나씩 늘어놓고 물건을 세팅했다. 김장철에는 배추나 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다 팔고 홀가분하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이후 동네가 더 북적거렸다. 아침이면 가격 흥정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와중에 자리다툼을 하는지 옥신각신 시비가 붙기도 했다. 모닥불도 등장했다. 엄동설한에 찬바람 막아줄 벽 하나 없이 장사하는 입장에서 손이라도 녹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을 피운 바닥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금방 자른 두부처럼 말끔하던 보도블럭이 갈수록 거뭇거뭇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슬슬 불만이 새어 나왔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아파트 값을 올려준 공원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며칠 뒤 노점상 단속반이 떴다. TV에서 본 것처럼 거칠게 몸싸움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할머니들이 주섬주섬 빨간 대야를 정리하며 짐을 챙겼을 뿐이었다. 단속반은 ‘노점상 단속지역’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우고 이내 사라졌다. 베란다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나는 이제 더 이상 시끄러울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할머니들은 당당하게 리어카를 끌고 재입장했다. 노점상 단속표지판 바로 옆에서 떡하니 전을 벌리고 장사를 이어갔다. 아무렇지 않게 모닥불을 피우고 신문지를 식탁 삼아 밥을 먹고 손님들과 가격을 흥정하면서.
그리고 또 며칠 뒤, 이번에는 불도저가 선수를 쳤다. 노점상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인부들이 흙을 붓고 촘촘하게 화단을 꾸몄다. 한발 늦게 도착한 할머니들은 망연자실 흙더미를 바라보다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화단 조성 공사는 일주일간 이어졌다. 노점상 공간이 전부 사라졌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수시로 베란다를 들락거렸다. 깔끔하게 조성된 화단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어질러진 우리 집 거실을 누가 대신 치워준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빨래를 널다가 저 멀리 세워진 파라솔을 발견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길목이었다. 아니, 해수욕장 파라솔을 누가 저기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공원 입구에서 장사하던 노점상 할머니가 위치를 바꿔 장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진즉 물러났을 거란 예상 따윈 가볍게 뛰어넘은 행보였다.
이 구역 '불멸의 전사'인 그녀는 매일 파라솔과 함께 나타나 감자며 양파 등의 채소들을 내다 팔았다. 덥거나 춥거나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파라솔을 펼쳤다. 할머니의 파라솔은 햇볕을 가리고 비바람을 피하면서 존재를 알리는 간판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어느새 나도 매일 아침 커튼을 열고 파라솔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장사가 제법 잘 되는지, 파라솔 개수가 대여섯 개로 늘어났다. 아무리 뽑아내도 다시 자라는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의 기운이 저 아래 모여있겠지. 공원에서 노점상이 사라진 걸 은근히 반겼던 좁은 소견머리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아났다. 현실을 직면하기보다 갖은 핑계로 도망치기 바빴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보이기도 했다. 어떤 조건에서도 꿋꿋이 파라솔을 펼치는 할머니들처럼 나도 포기하지 말아야지.
올해 나의 첫 도전은, 브런치 작가 신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