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인생에도 누수가 발생하니까

에필로그

by 나야

밥 대신 알약 하나 먹으면 되는 거 없나?


일요일 오후, 폭염에 발이 묶인 우리 부부는 알약 타령을 하고 있었다. 실은 몇 년째 하는 소린데 신약개발 소식은 들리지 않고, 늦더위만 더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우리 오늘 점심, 시켜 먹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폰을 들고 메뉴 찾기에 돌입했다. 중학생 딸아이는 떡볶이를, 우리 부부는 쌀국수를 주문했다.


몇 해 전 암진단을 받고부터 남편은 배달음식을 멀리해 왔다. 집밥보다는 아무래도 밀가루나 자극적인 양념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날씨가 변수였다. 불 앞에서 요리를 하기도, 그렇다고 뭔가를 사 먹으러 나가기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쌀국수니까 괜찮을 거라는 타협안도 꽤나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딩동.


잠시 후 벨이 울리고, 건네받은 비닐봉지를 빛의 속도로 풀어헤쳤다. 각자 음식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순간 또다시 들려온 초인종 소리.


딩동.


아저씨가 뭘 빼먹었나? 내가 나가볼게.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나간 사이, 나는 쌀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아삭한 숙주와 부드러운 면발, 이국적인 향이 어우러져 먹고 있는데도 허기가 지는 맛이랄까.


볼이 빵빵한 채로 눈은 계속 현관 쪽에 가있었다. 안 오지? 쌀국수 면발이 실시간으로 불고 있다고 느낄 때쯤 그가 돌아왔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야? 뭐 놓고 갔대?


아래층인데... 화장실 천장에 물이 샌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근래 들은 말 중에 가장 울적한 소식이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장면들이 그려졌다. 예를 들면 화장실 바닥을 꽝꽝 깨고 타일을 뜯어서 방수공사를 새로 하는 동안 뿌연 돌가루가 집안 구석구석 내려앉는 장면 같은 것.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당연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고 샤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폭염에. 상상만 해도 고릿한 땀냄새가 훅 풍겨왔다. 업체는 어딜 부르지? 돈이 또 얼마나 깨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골치가 지끈 아파왔다.


한데 옆에서 딸아이가 눈치를 살피며 떡볶이에 올려진 치즈를 휘휘 젓고 있었다. 마음이 치즈가락처럼 녹아내렸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괜스레 더 큰소리로 말했다.


아, 배고파, 이 집 음식 잘하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거짓말,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지금 우리는 쌀국수를 맛있게 먹어야 해. 안 그러면 면발이 퉁퉁 불잖아?


그래, 맞다, 일단 먹고 보자.


그제야 남편도 젓가락을 들고 쌀국수를 후루룩 들이켰다. 앞으로 갈길이 멀겠지만 그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에 놓인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것이 최선이었다. 면이 퍼지면 맛없으니까.




월요일, 인테리어 업체 대표를 만났다. 우리 집 바닥에서 샌 물방울이 아래층 화장실 천장에 조롱조롱 달린 것을 확인하고 견적서에 사인을 했다.


화요일 아침 8시 30분. 화장실 앞에 각종 장비가 비치되었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마침 나는 재택근무 하는 날이었지만 일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타일을 깨는 드릴소리가 지표면 깊숙이 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아님 누가 내 머릿속에 딱따구리를 집어넣었거나.


또다시 벨이 울렸다.


딩동.


대문 앞에 낯선 어르신이 서 계셨다.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우리 아들이 야근하고 와서 자야 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아래층의 아랫집 주민이었다. 우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화장실 누수가 발생했다고 사정을 말씀드리자, 이내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럼 공사를 안 할 수도 없겠네. 근데 미리 말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어제 엘리베이터랑 출입구에 안내문을 붙였다고 했더니 못 봤다며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지셨다. 하아. 저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만약 우리 집이 아니었다면 나도 찾아가서 항의하고 싶을 만큼 거친 소음이 건물을 뒤덮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오전 중으로 타일 깨는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드릴소리가 멈추자 살 것 같았다. 작업을 마친 인부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전했다.





본격적인 방수작업은 수요일에 진행되었다. 파란 방수페인트를 칠한 화장실이 얼핏 수영장 같았다. 그런데 경미한 실수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왔다. 바닥을 헤집는 과정에서 벽면 타일이 살짝 깨졌다고. 그걸 다시 손보는데 하루가 지나갔다.


이후 변기를 앉히고 시멘트를 바른 바닥에 타일을 새로 깔았다. 원래는 토요일에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이틀이 더 걸리게 되었다. 역시 모든 계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가.



일요일 아침 8시 30분, 딩동.


뒷머리에 까치집을 달고 문을 열었다. 타일과 타일 사이를 메우는 줄눈작업이 남아 있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화장실 누수 공사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장비들을 정리하던 줄눈업체 사장님이 내일 저녁부터 화장실을 써도 좋다고 했다. 그자리에서 하마터면 뛰어오를 뻔했다.




지난 일주일간 샤워는 5분 거리에 위치한 친정 찬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개운하게 씻고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사이 등에서 찐득하게 땀이 배어났다. 마음 같아선 다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폭염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기에.


그나마 하루하루 제 모습을 갖춰가는 화장실을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집안에서도 일없이 화장실 문을 몇 번이나 열어봤는지 모른다. 바닥을 걷어내자 흙투성이였던 화장실에 이제는 반들반들 새 타일이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물도 새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사 안내문부터 당장 뜯어내야지. 대신 이렇게 외치고 싶다. 오늘 저녁엔 우리도 집에서 씻을 수 있다고요!


푹푹 찌던 무더위도 조금은 누그러진 모양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온다.




살다 보면 우리 인생에도 뜻밖의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야말로 예측불허. 건강하던 남편이 암 진단을 받던 날, 우리 가족의 일상에도 실금이 가고 바닥이 갈라질 위기가 찾아왔다. 그 순간 무너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시시각각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마치 방수공사를 새로 하듯 마음에 시멘트를 바르고, 단단하게 굳어지기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수시로 계획이 틀어졌고, 더딘 회복과정을 지켜보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상황이 개선되고 나아졌다는 것.


덕분에 우린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되었고 단조로운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뜨겁고 긴 여름을 함께 이겨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사람들처럼.





그동안 아껴주신 구독자님들, 브런치 작가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은 한 사람을 위한 연서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암환자가 된 남편에게 작은 위안과 용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제 마음이 정리되고 생각지도 못한 응원에 크나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관심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며 연재를 마칩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오겠습니다.




keyword
이전 27화소리의 성(城)을 쌓아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