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나무의 힘을 딛고
거물급 신인이 등장했다. 연습생 생활을 무려 7년이나 견디고 마침내 빛을 본 실력파 가수. 조그만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량이 대기권을 뚫고 나갈 기세다. 그럼에도 음이탈 한번 내지 않다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였다. 가창력으로 여름을 평정한, 매미에 관한 이야기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건만 매미의 데시벨이 꺾이지 않고 있다. 혹시 폭염이랑 한판 붙어보자는 건가,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어느 순간부터 매미의 질긴 울음이 끈기와 근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끄럽다기보단 오히려 부러웠다. 그리고 묵묵한 장인(匠人)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어쩌면 그들은 뙤약볕 아래 날마다 소리의 성(城)을 쌓아 올리는 게 아닐까.
엊그제 아파트 단지에서 나무에 매달린 매미 허물을 발견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등 쪽이 찢어져 있었다. 탈피할 때 등으로 빠져나가는구나. 제 몸을 스스로 뚫고 나가려면 집념의 크기가 얼마나 커야 할까.
그러나 탈피의 순간, 살이 찢어지는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런지. 그 두려움조차도 이겨내고 힘껏 등을 밀어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운명을 스스로 정하고 싶다는 절박하고 간절한 염원이 작동했을 터. 그것이 목숨을 건 도전의 동력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진정한 성장의 첫마디였을 거라고.
생의 투명한 흔적을 관찰하다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매미의 허물 벗기에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무.
상상해 보자. 허물이 등에서 갈라졌다는 건, 매미가 발끝에 온 힘을 실어 바닥을 밀치는 한편으로 몸 전체를 바깥으로 밀어냈다는 얘기다. 이때 발바닥의 미는 힘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는 나무의 도움이 지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위기에도 쉽게 밀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버텨주는 힘 말이다. 덕분에 매미는 위험을 감수하고 마침내 짜릿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내게도 그런 나무 같은 존재들이 있다.
며칠 전 딸아이의 학교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과 마주쳤다. 저마다 가방에 손바닥만 한 인형을 한 두 개씩 매단 아이들은 쉴 새 없이 까르르까르르. 참새떼가 따로 없었는데, 곁을 스쳐가는 아주 잠시동안 공기가 뽀송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의 싱그러운 기운이 끈적한 습도를 싹 걷어간 듯한.
곧 딸아이가 나타났다. 개선장군처럼 뚜벅뚜벅 걸어와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전하는 녀석.
"아니, 한문 따라 쓰기를 다섯 번씩 하라는 게 말이 돼?"
제 딴에 심각해서 불룩거리는데 그 모습마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저 아이의 순한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는 다짐이 조용히 뿌리를 뻗어갔다.
내 안에 뿌리내린 또 한 그루의 나무는 아들이다. 우리 가족의 첫사랑.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부모 역할에 서툴고 어설펐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는 용기를 보여준 아들은 지금 꿈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푸른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날아오를 것을 믿는다. 아니, 그 언젠가를 기다릴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성장이 고맙고 대견할 따름. 난 그저 변함없는 사랑으로 응원하며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남편. 마을 어귀에 곧게 뻗은 미루나무처럼 넓은 그늘을 드리웠던 그가 암 선고를 받은 이후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붙들었다. 쉼 없이 달려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덕분에 관성처럼 여기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이처럼 가족이라는 숲에서 나는 바람을 마시고 자라는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다. 폭풍이 몰아칠 때 곁을 지켜준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잎을 틔우지 못하고 꼬구라졌을 것이다. 낡아빠진 한계를 딛고 새로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가족 안에서 나는 다시 시들지 않는 꿈을 키운다.
그리고 또 한 그루의 나무, 브런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 엄마이기 이전의 나 자신을 만나게 해 준 공간이다. 그간 정처 없이 길을 잃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준 것도, 시련의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목을 축여준 준 것도 글쓰기였다.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여백이 무성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굳건한 조력자. 그 너른 품 안에서 나는 또 한 줄의 희망을 길어 올린다.
어쩌면 인생은 소리로 높은 성(城)을 쌓아 올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허망하고 덧없는 여정.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본들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쓸쓸한 깃발처럼 나부끼다 힘에 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가야 한다. 또 한 겹 허물을 벗고 거듭나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아득한 허공에 나만의 성(城)을 쌓고 있다. 어디까지 닿을지 알 수 없으나 기어이 도달할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