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 자세하게 묘사하기
*글쓰기 수업 과제물입니다. 퇴고와 두서가 없음을 밝힙니다*
가수 A씨의 SNS 계정 해킹 사건이 뉴스 사회면을 장식했다. 유출된 사진은 단 한 장뿐이었다. 혹시나 심각한 사태를 우려했던 소속사 대표와 광고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그들은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단순한 사진 한 장에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었다. 해외 매체들도 연일 사진을 퍼다 날랐다. 월드스타인 그녀의 입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독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팬클럽 역시 빠져나간 회원 수나 유튜브 조회수를 금방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곧 잊혀질 사건이었다. 일주일 뒤 팬클럽 사이트에 의문의 글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글쓴이는 가수 A씨의 골수팬을 자처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그녀의 공식 일정 외에도 사적인 스케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다시피 했다. 덕후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성골이었다. 그는 유출된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며 자신의 견해를 조목조목 밝혔다.
우선 바닥에 깔린 테이블보에 주목했다. 성글게 짜인 직조물엔 갈색과 흰색, 우드톤의 실이 한 올 한 올 교차되어 있었다. 뻣뻣한 재질은 수분을 머금을 새도 없이 물기가 그대로 통과될 것처럼 보였다. 끈적임을 방지한 용도로 제격이었다. 색감도 시원한 자연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여름용 식탁보로 안성맞춤이겠지만 방바닥이나 침대에 깔기에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위에 놓인 하얀 사기그릇은 우리가 흔히 보는 국그릇이었다. 뜨끈한 설렁탕이나 해장국이 담겨 나올법한. 그러나 문제의 사진 속 그릇에는 차디찬 아이스크림이 가득 차있었다. 종류별로 마구 뒤섞인 아이스크림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누군가는 저 안에서 빵빠레를 찾았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특정 제품의 아이스크림 콘 손잡이 밑동이 깍두기처럼 썰려 있었다. 대충 잘라놓은 것 같지만 한입 크기에 맞춘 것이었다. 큰 아이스크림 하나를 네다섯 번 댕강댕강 잘라놓은 듯했다. 손잡이 위에 얹혀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여러 조각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색깔이 달랐다. 아이보리 색과 좀 더 진한 바나나 색으로 구분되었다. 다른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섞인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얇은 초콜릿 막을 입힌 것도 있었다. 서너 가지 아이스크림을 마구 섞어놓은 듯했다.
눈에 띄는 것은 검은색 과자의 존재감이었다. 흰 설원 위의 검은 발자국마냥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두 겹의 초코 과자 사이에 하얀 크림이 묻은 과자였다. 역시 네다섯 조각으로 잘려있었다. 달달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느끼함을 찐득한 초코 과자로 눌러주는 효과랄까.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사람들은 소리 없이 군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국밥 같기도 폭탄 같기도 한 아이스크림의 진정한 포인트는 빨간 열매였다. 사기그릇을 네 등분으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 지점에 빨간 산딸기가 박혀 있었다. 아래층에도 산딸기 서너 개가 깔려있었다. 상큼한 산딸기를 아이스크림에 얹어먹는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녀의 선택이었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미식가임을 자부한 과거 인터뷰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올라왔다.
아이스크림과 초코과자와 산딸기가 마구 뒤섞인 것으로 보아 시판 제품은 아니었고, 여러 제품을 섞어놓은 듯했다. 이런 걸 나눠먹으려면 어느 정도 친분이 돈독했을 거라는 분석이 따라왔다. 한데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으로 뒤덮인 그릇에 숟가락 두 개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숟가락은 그릇의 왼쪽과 오른쪽에 걸쳐져 있었다. 이 지점에서 팬들의 의심이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톱스타 A씨가 누군가와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직접 만들었고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공간에서 단둘이 나눠먹으려 했다. 비밀의 장소가 구체적으로 식탁인지 침실인지에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물론 상대가 같은 그룹의 멤버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몇 해 전 숙소생활을 청산했다는 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문이 이어졌다.
어느새 계절은 찬바람 부는 겨울로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난데없이 유출된 톱스타의 사진 한 장에 열애설이 뜨겁게 증폭되고 있다. 과연 톱스타 A씨는 누구와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