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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렌치 Nov 16. 2023

휠체어를 타고 등교한 학교

프랑스 학교 이야기

다니엘이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한 지 어느덧 삼 주가 흘렀다.

깁스를 하게 된 이유는 아래 글에 남겨 놓았다.


https://brunch.co.kr/@70ca4e71c11944a/13


이렇게 조그만 아이가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학교생활을 어떻게 할까 걱정이 많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가 났던 때가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당장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개학 이후 앞으로 3주간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한 쪽 다리를 쓸 수 없어 혼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손도 씻지 못하고, 무엇보다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나 보조교사분이 다니엘만 돌봐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의사선생님은 우리에게 처방전을 주었는데 그 처방전에는 휠체어와 목발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목발을 짚고 걷는 연습을 하게 했는데, 오히려 이 목발 짚고 걷다가 넘어져서 팔까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결국에는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녀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가야 한다니, 다니엘의 불편함도 걱정이 되었지만 학교가 이런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다니엘을 받아줄지 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개학이 되기 전 우리는 다니엘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다니엘 담임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이가 이렇게 사고가 나서 한 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 휠체어를 타고 등교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학교에 종종 턱이 있고 혼자서 이동하거나 할 수가 없어 화장실을 가거나 급식실로 이동하는 데 도움이 필요할 수가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학교의 방침에 따르겠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답변을 보내주셨다.



안녕하세요 알렉시, 고은, 그리고 다니엘.

저런, 모험뿐이네요.. 삶의 경험들이죠.

중요한 건 다니엘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거예요.

다니엘이 원활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맞이할 준비를 해 놓을게요.

좋은 저녁 보내고 주말 잘 보내세요. 곧 만나요.





이 교장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우리의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갈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개학 후 등교일 아침, 다니엘은 이렇게 울먹거리며 내게 말했다.

"학교에서 어떻게 걸어가, 친구들이랑은 어떻게 놀아, 식당에 어떻게 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어떻게 해.."


나로서는 걱정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밖에 없었다.

크리스토프 교장선생님과 카린 담임선생님이 다니엘을 학교에 맞이할 수 있도록 다 준비를 해 놓았다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휠체어 위에 앉아 엉엉 울었다.

이렇게 엉엉 우는 아이를 학교에 떼어놓고 가자니 나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다니엘을 찾으러 학교에 가서 카린 선생님 반 교실 문 앞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문이 열리자 환한 얼굴로 미소를 띤 다니엘 얼굴이 보였다.


그때 내 숨을 멎게 한 장면이,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다니엘 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씩 휠체어에 앉은 다니엘을 꼭 안아주기도 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볼에 뽀뽀를 해주며 자기를 데리러 온 부모님을 따라 교실 문밖을 나갔다.


이 모습을 보자 갑자기 무언가 뜨거운 게 내 목구멍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 창피하게 다니엘 담임선생님이랑 다른 학부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니 !

울지 않으려고 열심히 참았지만 내 코는 시큰둥해져 시뻘게지고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다니엘만큼이나 나도 걱정이 많았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나보다.

그런데 이렇게 다니엘이 반 아이들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녹아내렸던 것이다.

카린 선생님은 다니엘이 혼자가 아니었으며,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휠체어를 밀어주고, 자리를 내어주며, 다니엘을 도와주려고 했다고 하셨다.


"Il n’était pas tout seul, ses copains étaient là pour lui"

"다니엘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다니엘 곁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학교에서 나는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만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다니엘에게는 가장 큰 존재였을 이 아이들이 다니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휠체어에 타고 등교한 아들.

이렇게 잠깐 동안만이라도 사회의 약자가 되어보고 프랑스 사회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턱, 계단, 인도 등.. 모든 것들이 새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이 눈에 보였고, 장애인 주차 자리가 더 눈에 띄었다.    


바로 첫 공동체인 학교에서부터 휠체어에 탄 아들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는 정말 약자와 장애인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책없이 눈물 흘리던 내게 카린 선생님이 이 말을 해주셨다.



 

                        "Il n’est pas le premier et il ne sera pas le dernier. Ne vous inquiétez pas!"


아이가(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오는게) 처음인 것도 아니고 마지막일 것도 없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휠체어를 타고 등교한 아이는 다니엘이 처음이 아니며 다음번에 그런 아이가 또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의미의 말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담담하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프랑스 학교의 모습에서 나 또한 삶을 대하는 방법을 하나 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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