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렌치 Nov 15. 2023

처음으로 프랑스 응급실에 가다

프랑스 일상 이야기


방학 중 평온했던 한 금요일 저녁, 우리는 아이를 등에 둘러업고 처음으로 응급실에 달려간 일이 생겼다.


당일 오전에 아이가 트램펄린을 타다가 어떻게 잘못 넘어졌는지, 아픈지도 모르고 재밌게 놀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점점 발이 퉁퉁 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낮잠을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그 붓기는 더 심해지고 아이는 통증으로 인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발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고열이 나거나 많이 아파도 잘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던 아이가 이렇게 아프다고 하니 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렇게 오후 4시 반이 되었다.


그때 가장 답답했던 것은 이렇게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할 담당 의사 (프랑스는 일반 병원 진료도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하며 응급인 경우에는 예약 없이도 방문할 수 있지만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금요일 오후 4시에 퇴근으로 아무리 전화한들 소용이 없었다.

혹시 몰라 아직도 진료를 하고 있는 다른 일반 진료 병원에도 전화를 돌렸지만, 해당 의사가 담당 의사가 아니면 새로운 환자를 받아줄 수 없다는 답답한 대답만 들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긴급 의료 번호에 전화를 걸어 다니엘의 상태를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고 나니 우리를 받아줄 일반 진료 병원에 대기 통화를 걸어준다며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이때 들리는 노랫소리와 메시지는 정말 악몽 그 자체다 !


이런 답답하고 속 터지고 느린 의료체계는 정말 한국인이라면 견딜 수 없는 고문이다.

그렇게 아이를 진찰해 줄 의사를 찾다가 벌써 2시간이 흘러 오후 6시가 되었다.


결국 해당 전화 대기 통화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고 (다들 금요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출근했나 보다), 우리가 1시간이나 대기하던 걸 안 상담원은 우리에게 응급실에 다니엘을 데리고 가라고 했다.


결국 이럴 거면 왜 1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거야..!

부글부글 타는 속을 겨우 잠재우며 아들을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우리는 혹시 몰라 아이가 응급실에서 대기하며 읽을 책, 자동차 장난감, 따뜻한 담요, 간단한 간식거리 등을 챙겨갔다.

나도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응급실에 가는 것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구급차에 실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통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다니엘은 이러한 응급실 분위기에 겁이 질려 무서워했다. ‘무서워..’라고 말하며 겁에 질린 아이를 꼭 껴안고 괜찮을 거야 하는 말 밖에 해주지 못했다.


불만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그래도 아들이 이것밖에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은 참 야속하다. 다른 이의 불행에 비해 나의 처지를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간식을 주고, 자동차 장난감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다니엘 차례가 왔다.

다니엘을 진찰한 의사선생님은 아이 발의 엑스레이도 찍고 여러 검사를 해보았는데, 딱히 부러진 뼈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다니엘이 아직 만 4살인데다가 발에는 작고 미세한 뼈가 많이 있어 그 뼈가 부러졌을 경우 엑스레이 사진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성장에 문제가 없도록 한 달간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깁스라니 !  

긴장했던 남편과 나는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달 동안 왼쪽 다리에 깁스를 차고 다녀야 할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런 우리 맘을 알까 모를까, 아이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가 하니 응급실에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자기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몇 살인지 물어보며 귀엽다고 해주고, 학교는 어디 다니고, 선생님은 누구이고,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고.. 등등 이런 질문을 해주시며 관심을 가져주시니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들로 인해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자상하게 아이를 대해주신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처음 겪는 상황과 낯선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잘 있어준 다니엘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만 네 살 다니엘은 왼쪽 다리에 깁스를 차고 한 달간 생활할 예정이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니엘과 함께 28일간의 자동차 경주 (마치 24 hours of Le Mans 자동차 경주와 같은) 코스를 만들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자동차 스티커를 하나씩 붙일 수 있도록 만들어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앞으로 28일간의 경주를 깁스와 함께 잘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마음이 앞서간 다니엘은 벌써 자동차 경주 코스의 절반에나 스티커를 붙였다





작가의 이전글 만 4세에게 '스스로'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