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서는 사유

사족(蛇足)이 꼭 그림에만 존재할까?

by 김기황


미니멀리즘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표현해내지 않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리라 짐작한다. 복잡함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화려함이 인간을 감동시키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며 단순함의 간결함도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확신에서 미니멀리즘이 싹 뜨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조에서 파생된 미니멀라이프는 환경 악화의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자세나 태도를 일컫는다. 미니멀리즘의 핵심이 단순함의 간결성이라면 미니멀라이프의 핵심은 넓은 의미의 금욕적인 소비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휘돌리지 않고 자신만의 금욕적인 소비를 실천하는 내공을 쌓아간다면 환경 악화에도 금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미니멀라이프의 근간이 되는 미니멀리즘의 핵심 주제인 단순성과 간결성으로 동물계의 형상을 살펴볼 때 가장 적합한 동물은 뱀일 것이다. 뱀의 모습은 너무도 간결하여 군더더기가 없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뱀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선하나를 적당한 굵기로 긋고 주요 부위만 표시하면 된다. 그래봤자 약간의 짧은 선인 혀와 두 개의 점인 눈이 전부다. 또한 세상의 모든 긴장과 시간을 한줄기의 선과 한 지점에 응축시키고 한순간 폭발시키는 사냥할 때의 모습도 단순하고 간결하다. 뱀의 아름다움은 간결한 형태와 단순한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징그럽다는 표현으로 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징그러운 뱀은 우리의 의식에 오랫동안 자리해 왔다. 발이 없는 뱀에게 그림에서 발을 그려 준 그때부터 뱀은 우리의 의식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사족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항간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고사성어이다. 이 말은 위급한 정치적 상황을 해결하려는 약국의 처방이다. 처방전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정치적 처방임에도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들이 때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사족은 현실에 존재하는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오지랖이 넓다, 1절만 하라, 긁어 부스럼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 의식에 존재하는 무형의 사족이다. 사족이라는 말의 뜻과 맥락을 같이하는 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한자 성어나 그림에 존재하며 모두가 시각적 인식을 할 수 있는 사족을 살펴보자.

화사첨족의 준말인 사족은 <사기>와 더불어 고사성어의 보고인 <전국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사성어의 보고인 <사기>와 <전국책>은 혼란한 세상사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남긴 유산이다. 유산으로 남아있는 처방전을 살펴보자. 초나라에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제사가 끝나고 남은 술을 하인들에게 주었다. 하인들이 그 술을 마시려고 모였는데 술의 양이 썩 많지 않았다. 이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어차피 부족한 술이니 나눠 마시지 말고 한 사람에게 몰아주자고 했다. 뱀을 그리기 시작하여 가장 먼저 그린 사람에게 술을 주자는 의견이었다. 인간 세상에 늘 고개를 내미는 ‘한방’이라는 유혹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심히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그림을 내놓으며 말했다. 내가 가장 먼저 그렸으니 술은 내 것이다. 그리고 술병을 잡고서 뱀에게 발을 선물로 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그림 솜씨에만 취해서 술병을 들고 머뭇거리던 중 다음 사람이 그림을 완성하고 말았다. 먼저 뱀 그림을 완성한 사람이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려고 한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술병을 가로채며 말했다. 술은 내 것이다. 당신이 그린 뱀에는 다리가 있으니 어찌 뱀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가 가장 먼저 뱀을 그린 것이다. 아뿔싸.

이후 상황에 대한 것은 전해지지 않으니 어쩌면 뱀의 간결함의 또 다른 은유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전 동양에서 만들어낸 사족이 미니멀리즘의 사상적 기반과 미니멀라이프의 줄거리와 맥락이 닿아있다고 본다. 사족이라는 한자 성어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왜 뱀을 그리자고 했을까?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간결성이나 단순성과 같은 사고는 없었다. 이 시점에서 뱀이 선택된 것은 완성의 속도가 기준으로 선택된 것이다. 정치적 처방전을 쓴 약국의 사람은 전쟁 결정을 가장 빠르게 번복시켜야 했기에 그리기 쉬운 뱀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한 여러 사람 앞에 놓인 술 한 병은 의미와 가치를 논하기 전에 빨리 마시는 것이 으뜸이다. 그러니 빨리 결과를 알 수 있는 뱀을 선정했다고 생각한다. 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생명체의 형상을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판단한다면 뱀은 그 간결함과 단순함에 있을 것이다. 뱀의 발은 그 간결함과 단순함을 파괴해 버렸기에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름다움이 추함이 되는 이 과정에 사족을 창작한 약국 사람의 진정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전쟁이 없다면 평화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절실함과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그림의 뱀의 발을 실제적 사족이라고 한다면, 뱀의 발을 그려 넣으려고 했던 그 사람의 마음은 무형적 사족이다. 이 무형적 사족을 잘 다뤄야 함을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경험하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한다. 우리는 마음이나 감정을 화사첨족(畵蛇添足)의 한자 성어에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다. 뱀에게 발이 필요하지 않거나 굳이 다리를 그려 넣지 않아도 뱀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필요하지 않거나 그렇게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일을 놓고 우리는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한자 성어가 창작될 무렵의 시대에서 육체적 일에 종사하는 일꾼들에게 힘든 일을 끝내고 마시는 술은 한 모금의 감로주와도 같을 것이다. 이 시점에 복잡한 그림을 그려서 우열을 정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므로 사족이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 그릴 수 있는 뱀이 선정되었을 것이다. 뱀은 특정 시점의 나의 마음이다. 그것은 가장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마음을 살피고 행동하는 내가 되어야 함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뱀을 먼저 그린 사람은 왜? 뱀에게 발을 그려 넣었을까? 우리가 이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단정하고선 한자 성어를 이해했다고 하면 될까? 뱀의 발을 그린 사람을 어리석다고 단정하는 것은 한자 성어를 정보나 지식의 차원에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우리의 마음 씀씀이를 보여준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을 우리는 흔히 저지르면서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쓰는 일의 대부분이 과거의 지난 일을 돌이키는 불필요한 생각을 하거나, 미래의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면서 보낸다는 심리학적 연구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과거에 대한 자책, 후회, 반성 등이 떠오르거나, 미래에 대한 공상, 망상 등이 마음속에 자리하려고 한다면 한자 성어 사족을 떠올려보자. 사족은 그림에서 존재하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면서 내가 간결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보듬고 쓰다듬어 조용히 지워도 아프지 않을 연필 자국과 같은 존재이다.

사족은 흔히들 불필요한 것을 덧붙여서 일을 망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비단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라 나를 제외한 타인의 마음도 살피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끝냈으면 여유를 가질 일이나 불필요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덧붙인다면 그 일과 연관하여 더 창조적인 것을 생각하는 창조적 실행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생에서 인간의 삶에서 필요와 불필요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경계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들은 사족이다. 또한 자신의 의도가 윤리적 가치지향적 순수한 선의라고 본인도 타인도 충분히 공감하고 인정하더라도 그 순간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그 또한 사족이다.

가끔 식탁에서 밥투정하는 다섯 살 귀여운 꼬마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세계평화와 인류의 평등을 귀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꼬마 아이가 또 밥투정을 시작했다. 부모들은 얼마 전 아이와 같이 방송을 보는데 지구촌 어느 곳에서 굶주려 힘없이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났다. 부모는 아이에게 그 아이들은 굶고 있는데 너는 밥투정이나 하면 되겠냐는 설교를 했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아이는 아무 말도 없고 밥도 먹지 않았다. 부모가 한 이야기는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이다. 아이는 세계평화에는 관심이 없고 인류 평등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으며, 지금은 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이유를 안다면 귀여운 꼬마가 아니다. 세상의 이치, 가치, 윤리, 도덕은 지금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아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가치와 신념에 몰두하는 듯이 보이는 부모의 태도 때문에 밥을 더 먹고 싶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모의 전 지구적인 박애 정신은 아이에게는 사족에 불과할 뿐이다. 아이는 부모들이 좀 더 이해해 주고 사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면 느리지만 조금씩 부모들의 가치와 신념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른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정립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올바르고 좋은 사회구성원이 될 것이다. 부모의 핀잔이 섞인 사족의 말에 귀여운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밥을 먹으면 그 아이들이 굶지 않나요. 아이의 대답에도 이미 사족이 끼어들어 가고 말았다. 식사는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분위기에서 매일 치르는 집안 행사이다. 아이는 매일 식사 때마다 부모의 말이 떠오를 것이며 쓰지 않아도 될 감정을 불필요하게 허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족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귀여운 아이의 대답에 대하여 귀여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 이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냐는 반문도 사족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사족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우리가 사족의 의미를 나의 마음을 살피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배려로 확장해 보면 우리가 쏟아내는 사족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뱀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간결함과 행동의 단순함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나의 마음의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정신적 생존과 육체적 생존에 필요한 적정한 소유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 현재의 인류가 만든 소중한 지혜이다. 세계평화, 인류 평등, 환경보호에 신념을 가진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줄 부모의 행동은 자신의 밥그릇과 국대접을 깨끗이 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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