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소통
나와의 소통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직 나와의 소통은 안 된 것일까? 언제쯤 나와 소통함을 감지할 수 있을까? 나와의 소통을 어떻게 무엇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다. 소통(疏通)이라는 단어에 쓰이는 한자는 ‘막힌 것이 트이다’ ‘듬성듬성하다’ 등으로 새긴다. 어느 것이든 흐름이 원활하지는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통(通) 자가 따라온 것이다. 소통은 애초에 쉽지 않다는 뉘앙스가 깔린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과의 소통이 쉽다고 자만하고 있다는 것이 옛 현인들의 경험담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현대의 인문학이 제기한 큰 담론만은 아니었다. 서양에서는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다가 어쩌다가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있었고, 동양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와의 소통의 최고 수준인 ‘독존(獨尊)’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나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으나 ‘이것이다’라고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논리상으로 보면 내놓아 선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정말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에게도 정말 귀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귀하다’는 말은 흔히 보석이나 재물의 값어치와 비교를 통한 가치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불교의 전통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찾고자 했던 옛 선승들은 깨달음의 순간이나 상태를 말로써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변명인지 에둘러 표현한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는 없다. 옛 선승들이 깨달음을 읊은 오도송(悟道頌)을 읽어 본다고 이것이 상쾌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두꺼운 한자 사전을 뒤져가면서 한문 원전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아도 답이 없기는 한자 사전의 두껍기와 마찬가지다. 번역되었거나 한문 원문을 살펴서 얻은 것은 눈앞에 펼쳐진 자욱한 안갯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안개의 형체가 끊임없이 바뀌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작업을 위해 산 정상으로 올라가던 중에 우연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발아래에서 조용히 구름이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 구름을 따라 내 시선은 따라다녔고 내 시선이 가는 곳에 내가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서 이곳저곳에 있던 나는 산을 오르는 나에게 오늘도 수고하라는 미소를 보내고 허공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나라는 존재를 얼핏이라도 인식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또 다른 곳에서 나는 나를 만나려고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옛 선승들이 그 순간을 오도송으로 남기면서도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긴 이유를 어렴풋이 느꼈다고만 해두고 싶다.
상당히 두려운 일이지만, 깨달음의 순간. 나는 이것을 ‘나와의 소통’이라고 쓰고 ‘내 마음 살피기’라고 읽는다. 옛 선승들에게 말이나 글로써 할 수 없는 것임을 경고받았음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의 일상 신변잡기로 둘러댈 수 있다는 초라함이다. 과학적인 이해나 철학적인 논리의 전개는 아니니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황당무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의 소통에 전제가 되는 것은 생각이며 생각은 두뇌가 한다. 두뇌는 물리적 실체임으로 이 속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난다면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섬광이더라도 시간은 시간이다. 내가 그 시간에 빠져있음을 눈치챈 옛 선승들은 벽력같이 고함을 친다. 이미 화살은 서녘 하늘에 닿았다고. 소리를 들으면 나는 소리를 구분한다. 그것은 인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옛 선승들은 그 순간에 이미 미망에 사로잡혔다고 일갈한다. 내가 보는 매일의 일상에서도 눈이 움직이는 그 순간에 나는 구분한다. 보는 것을 보이는 데로 보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 시선 속에 이미 구분됨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냄새도 마찬가지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순간 아니 말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구분이 되어진다. 그러니 보지도 맛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느끼지 않는 그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옛 선승들은 이러한 순간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꿈 이야기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겁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떤 옛 선승들은 이것을 두고 도적질이라고 할 만큼 경계했다. 다른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나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것이 도적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은 늘 도전을 통한 무용담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들은 너무도 다양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같은 것은 아니다. 이 다양함은 시원함을 준다. 이 청량감은 나를 자유롭게 해 준다. 옛 선승들이 그렇게 경계했음에도 도전하는 인간들이 남겨놓은 기록들이 있다. 그 기록들에 의존하여 더 많은 사람이 나와의 소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선문답들을 내가 받아들인 기존의 인습, 관습 등을 최대한 내려놓으려 애쓰며 읽어나가자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러한 태도를 상당 기간 반복했다. 왜냐하면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지난번에 이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이해되었는데, 그때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때의 기록을 다시 들춰보는 반복적인 방법이 우둔한 내가 할 수 있는 나와의 소통을 위한 한 방편이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흘러가고 있다. 감각을 경계 짓지 않고 느낌을 받아들이면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음을 느꼈다. 한여름 지나가는 소낙비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 헤아릴 수 없는 멸치 떼를 풀어놓는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는 멸치 떼의 팔짝 이는 소리를 눈으로 밖에는 들을 수 없다. 자동차의 창문을 내리는 순간 멸치 떼는 사라지고 갑자기 만난 소낙비의 어설픔만 남는다. 소낙비의 어설픔을 눈앞의 사실로 경계를 짓는다면 영혼은 섭섭해할 것이다. 이때의 느낌을 나는 무형의 사진처럼 저장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소낙비 속의 그 순간에 옛 선승들은 히말라야의 산으로 동해를 메꾸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저질렀음을 설핏 느꼈다. 나와의 소통은 단순히 생각하는 일들이 아니었으며, 이것은 우주를 움직이는 능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어떤 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 한 개인에게는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지닌 에너지가 있다고 한 것 같다. 어떤 시점에 멈추기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폭발이라는 결과에 관심을 보인다. 머물러 있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서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한 개인에게 잠재된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나와 소통하면서 나를 살피면서 살아간다면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는 충만한 기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은 허황하고 황당하며 당황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을 남들이 뭐라던 그것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될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구분 짓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한다라고 표현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말이다. 어떤 옛 선승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일갈한다. 그러면 평지풍파라고 말한 그 선승의 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평지풍파도 구분이지 않은가? 옛 선승들이 이러한 도돌이를 평생 안고 살았다고 떠올리면 어지러웠을 것 같아서 연민의 감정이 살아난다. 또 평지풍파이다. 어쩌면 그래서 옛 선승들은 무념무상을 최고의 경지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을 꾸리는 사람에게는 자존감만 무너지게 하는 단어인 것 같다. 어쨌든 아무것도 구분하지 말라는 말조차도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가?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정답은 없다.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각자가 나와의 소통을 위해 열심히 사랑을 가지고 나를 살피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밀쳐두면서 또한 백 살 먹은 노인이 하기에도 어려운 일이라고도 밀쳐두고선, 세 살과 백 살을 오락가락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의 차이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마음을 움직여 나와의 소통에 나를 살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