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들. 흐름 속에서 자기의 길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요즘 사람들은 바쁘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성취했는지로 하루를 증명한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움직임 속에서 나는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흐름의 열기는 여전하다. 그런데 결국은 맛을 느끼기보다 평가와 인증을 남기려는 움직임이 아닐까? 하지만 진짜 맛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의 감각이다. 삶도 그렇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그 길을 걸으며 어떻게 존재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변화의 본질은 흐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흐름보다 결과를, 과정보다 성취를 중시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사회는 늘 옳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 방향은 종종 타인의 기준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속도와 리듬을 잃는다. 이것이 바로 흐름을 보지 못한 사회의 강요다. 흐름을 잃은 인간은 결국 남이 정해 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내삶’을 잃어버린다.
동양 철학에서 흐름은 종종 도(道)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는 세상 만물이 저마다의 길로 살아가는 원리다. 노자는 흐름에 거스르지 말라 했고, 장자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노닐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 흐름을 ‘규범’으로 바꾸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가 흐르지 않는 세상을 부정하며, 스스로 도의 수호자가 되려 했다. 은자들은 속세를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결기는 존경받을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도가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절의 논리 위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도를 모르는 사람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가?
오늘의 리더는 지위나 명함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리더란 먼저 자기 안의 흐름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 내면의 리듬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낸다. 오늘의 은자는 고요 속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고, 오늘의 선비는 세상 속에서도 바름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진정한 리더는 이 둘의 균형 위에 선다. 은자의 고요로 자신을 지키고, 선비의 용기로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가 바로 내삶의 리더다.
과거의 선비는 도를 ‘외부의 기준’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의 리더에게 도는 내면의 리듬이다. 도는 멀리 있지 않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믿을 때, 어제와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 그때 이미 도는 그 사람 안에서 흐르고 있다. 리더는 흐름을 붙잡지 않는다. 흐름이 그를 데려가도록 두되,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는 세상이 흔들려도 중심을 세우고, 세상이 멈추면 먼저 한 걸음 나아간다.
삶은 세상이 정한 길이지만, 내삶은 내가 만드는 길이다. 내삶의 리더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흐름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방향의 진실성이다. 그는 도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 함께 흐르는 사람이다. 삶의 속도가 아니라 삶의 깊이를 본다. 그 깊이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무늬를 완성한다.
나는 이 글을 거창하게 쓰려하지는 않았다. 단지, 삶을 이끌어가는 누군가가 잠깐이라도 생각의 끈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리더는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먼저 이끄는 사람이다. 그의 리더십은 화려하지 않다. 조용히 자기의 삶을 가꾸는 품격에서 나온다.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만, 자기 삶을 이끄는 사람은 드물다. 잠시라도 그 길을 생각해 본다면, 당신의 삶은 이미 하나의 도가 되어 흐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