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학 겉핥기
우리가 아이들에게 복잡한 삶의 의미를 이해시킬 수는 없겠지만 소학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선 선비들의 가치관과 조선 유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은 ‘삶’이란 단어에 머무르게 된다.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이학(理學)과 기학(氣學)에서 논쟁의 핵심은 인간의 영원한 물음인 ‘삶에 뜻이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삶에 뜻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이것이 조선 선비들이 많은 갈래로 갈라진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 유학의 이 논쟁이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은 시대 상황을 배제하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삶은 현재의 시공간에 대한 나의 인식이므로 시대 상황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일본 군국주의는 조선 유학의 삶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로를 막아 버렸다. 수탈과 압제와 압박은 현재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누르고 막아야 성공의 가능성이 커진다. 눌리고 억압된 사람들이 시공간과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틈을 찾는 순간부터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그토록 모질게 더할 나위도 없이 악랄하고 악독한 마수를 휘둘렀음에도 대한민국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던진 행위는 삶에 대한 자각이 가지는 힘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하겠다.
또한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조선 유학이 삶에 대해서 얼마나 집착했는 지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조선 유학에 녹아있는 삶에 대한 집착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한 복고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유학 속에 들어 있는 유신(維新)을 불러내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도 유신(維新)으로 치른 혹독한 경험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다시 유신을 불러낸다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삶과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유신을 불러내는 것은 조선 선비들의 삶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조선 선비들의 삶이 추구했던 그것을 스스로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조선 유학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 들을 오늘날의 사유로 번역하는 작업일 것이다.
많은 갈래로 갈라져 오랫동안 논쟁을 이어온 질문과 대답의 기록에서 후손들은 많은 실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이런 실망과 좌절은 외세에 당한 치욕과 맞물려 입에 담는 것조차도 꺼리게 되었다. 조선 선비들의 그러한 행태를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난을 해선 안된다.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시대로 거슬러 가거나 그들을 우리 시대로 불러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반론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난은 반론을 듣고 비판으로 이어지고 비판은 반론을 듣고 논쟁으로 이어지고 논쟁은 반론을 듣고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일방적인 비난과 비판을 하면서 반론을 듣지 않겠다는 것은 독재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독재가 얼마나 사람들을 얼마나 참혹하게 하였는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이다. 이러한 독재적 태도는 뒤에 오는 세대가 먼저 온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는 시선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넓고 높은 시선을 가지려는 노력이 없으면 무기력하게 된다. 우리가 무기력하지 않은 것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아주 미미하더라도 시야가 넓어지고 시선이 높아지기에 무기력하지 않다.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고 자신을 세우지도 못해서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들이 시세에 약삭빠르게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자신 하나의 원칙조차도 확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하는 손가락질에 상처받지 않을 자신으로 스스로 서는 것이 삶의 너머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다.
조선 유학은 주리(主理)든 주기(主氣)든 ‘삶에는 그 너머의 의미가 있고, 이 의미는 영원한 가치이자 척도’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많은 조선 유학자가 이기론(理氣論)을 세부적으로 해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삶을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을 것이다. 이는 조선 유학자들은 사분오열된다고 하는 식견을 가지는 것을 부끄럽게 만든다. 조선 유학자들이 대부분인 조선 선비들의 자부심(기상, 오상고절)을 나타내는 서술은 인간의 삶을 넘어선 곳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헛되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인간이 처한 곳에서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는 모습도 관심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때로는 현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더라도. 그리고 어떤 조선 유학자들은 삶의 너머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 현실의 생리적 욕구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누가 옳은가를 누가 판별할 수 있는가? 경계를 짓지 못한다는 경계를 품는 것이 삶의 방편일 수 있다.
불교에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양함을 인식하고 그 방법들에 매달리듯이 조선 유학도 그들이 던진 물음, 즉 삶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들이 조선 유학의 긴 역사적 변화와 변동 속에 깃들어 있다. 조선 유학은 이러한 유학의 변화와 고정의 한 부분이 조선에 깊숙이 녹아든 것뿐이다. 그들이 던진 물음은 ‘삶’이다.
인류가 발전시킨 형이상학의 물음을 취합하면 ‘인간 본질과 인간의 길’이라는 곳에 도달한다. 인간의 길을 제시하는 형이상학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길을 제시하는 형이상학은 없다. 인류가 제시한 인간의 길이 나의 길이 될 수는 없지만 나의 길은 어쩌면 인간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길과 나의 길이 모이는 것이 삶이다. 삶은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길(인간 본질의 실현) 나의 본질과 나의 길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그래서 조선 유학과 그 거장들의 논쟁을 정리하면 오늘 우리는 위안을 얻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조선 유학을 인문학으로 읽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 선비들에 대한 낭만적 상상을 한다. 나답게 더 나은 나로 살았던 낭만적 삶을 살았던 사람들로.
아프리카의 어떤 경구에 ‘우리가 온 곳을 모른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가 있다. 조선 유학은 이 경구처럼 온 곳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는 우리가 온 곳을 집요하게 추적하고자 한다. 이 지점이 조선 유학이 불교를 비판하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조선 유학이 현재적 학문으로 구분되는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온 곳에 대한 질문보다는 현재의 삶을 가꾸고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