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으로 읽는 논어를 시작하며
살아가다 보면 내가 정말 나로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불현듯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 물음은 단순한 진로의 고민은 아니다. 또한 직업의 선택이나 성공의 유무, 관계의 성취나 명예의 유무로 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이 나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의 리더인가? 나의 현재는 나답게 흐르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
『논어』는 공자의 말과 제자들의 응답을 기억에 의존해서 엮은 책이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유가 도덕과 윤리에 집적되면서 일상에서 멀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단지 윤리나 도덕의 교훈만이 담겨 있지는 않다. 시선을 달리해보면 그 속에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서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내면의 성찰과 성장의 과정, 즉 나다움의 길을 보여주는 한 편의 사유록(思惟錄)이 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 나다움이라는 시선에서 보면 공자는 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다. 그가 남긴 말들은 시대를 초월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우리는 성인(聖人)이라는 평가에 짓눌려 그의 인간적인 면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의 인간적인 면을 따라가기 위해 나는 ‘불혹’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보낸다.
공자의 일생을 따라가면, 삶의 각 단계에서 그가 마주했던 내적 물음이 다르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지우학(志於學)”
서른에 스스로 설 수 있었다는 “이립(而立)”
마흔에 미혹이 없었다는 “불혹(不惑)”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
예순에 모든 소리를 순히 들었다는 “이순(耳順)”
그리고,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각각의 짧은 구절 속에는 인간 성장의 여섯 단계가 응축되어 있다. 이를 지식으로 구분하던 나에게 불혹은 혹독했다. 그래서 이 말들이 단지 인생 연령의 구분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되기’ 위한 여섯 개의 문이었다. 공자는 나이를 말한 것이 아니라, 나로 서기 위한 내면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 시리즈 ‘나다움으로 읽는 논어’는 바로 이 여섯 개의 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 문(門)은 여러 가지 문(文, 問, 聞, 紋)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서의 ‘나다움’은 자기만의 고집이나 개인주의가 아니다. 나다움은 흐름 속에서 ‘나를 있게 하는 힘’을 깨닫는 일이다. 노동과 삶, 타인과 나, 이상과 현실이 어긋날 때조차, 그 균열을 견디며 스스로를 단련해 가는 의지의 움직임이 바로 나다움이다. 이 시리즈는 공자의 말을 거울로 삼되, 그 거울 속에 오늘의 인간을 비춰보려 한다.
나의 이 시리즈는 이순(耳順)에 다다르기 전에 겪은 가혹(苛酷)한 불혹이 매혹적이었다는 감상평이다. 그래서 시중에 많이 널려있는 단순한 해석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논어』의 문장은 고착되어 익숙하다. 『논어』 속의 단어들은 오랜 세월 주로 윤리적 잣대로 읽혀왔다. 그러나 이 익숙함이 우리에게 다른 시선의 접근을 방해하기도 한다. 고착된 익숙함에서 벗어나 보면, ‘인(仁)’은 착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음의 관계’이고, ‘예(禮)’는 규범이 아니라 ‘타인과 나 사이의 살아 있는 거리’이다. ‘군자(君子)’는 높은 지위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뜻한다. 이렇듯, 그 속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현대적 성찰을 흐르게 할 수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가치가 현대라고 줄어들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해석에서는 공자가 남긴 말들에서 시대의 질서를 위한 교훈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삶의 언어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 나는 『논어』의 편명(篇名)들을 단순히 기존의 순서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그 대신, 공자가 말년에 자신의 연령으로 삶의 단계를 술회한 기준으로 살펴보았다. 각 삶의 단계를 중심으로, 그에 대응하는 편들—〈학이〉, 〈위정〉, 〈팔일〉, 〈옹야〉, 〈헌문〉, 〈자로〉, 〈안연〉, 〈위령공〉, 〈요왈〉—을 거점으로 삼는다. 이 편들은 모두 인간의 성숙, 관계의 조화, 그리고 자기 확립의 과정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 여정에서 다루지 않은 편들—〈공야장〉, 〈태백〉, 〈미자〉 등—은 후속 독서의 길로 남겨 두었다. 그것들은 독자가 스스로의 삶을 걸어가며 다시 펼쳐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논어』는 완성된 교훈의 책이 아니다. 그것은 미완의 사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흔적이다. 공자는 늘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라 했다. 이 단순한 문장이야말로 진정한 나다움의 출발점이다. ‘나다움’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 용기 위에서만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논어』의 문장을 낡은 격언으로 되살리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살아 있는 사유의 언어로 복원하려 한다. 공자가 걸었던 길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 역시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었고, 권력의 외면 속에서 고독을 견뎠다. 그러나 그는 그 고독을 통해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기 안의 도(道)를 길렀다. 그것이 그가 말한 ‘도’의 진짜 의미다. 도는 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매일의 말과 행동 속에서 자라나는 마음의 질서다.
공자는 일흔의 나이에야 비로소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경지는 억지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일생 동안 학문으로 자신을 단련했고, 관계 속에서 마음을 다듬었으며, 실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 길의 끝에서 그는 비로소 ‘마음이 자연의 법도와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것이 바로 ‘나다움의 완성’이다. 이 시리즈는 그 완성의 순간으로 향하는 여섯 단계의 여정이다. 각 편은 단지 『논어』의 해설이 아니라, 공자의 사유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나다움의 길을 비추는 철학적 사유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각자의 인생 단계에서 ‘내가 지금 어느 문 앞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자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나는 이 시리즈를 읽는 독자들에게 단 한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논어』를 외우지 말고,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써보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완성하라는 초대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나답게 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