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 한 톨
275,630. 어두컴컴한 은행 365 코너에서 정리한 통장에 찍힌 잔액이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며칠 전이라면 일주일도 못 버틸 금액이었다. 승용차를 몰고 고향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그 옛날 자전거와 걸어 다녔던 학생들이 붐볐던 비포장도로는 아스팔트로 변해있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매년 대여섯 차례 다녔던 길이나 오늘은 마음도 무겁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부모님에게는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 분명히 왜 혼자 왔냐고 할 것이다. 대답을 생각하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도착했다. 옛날에는 자전거를 타고도 한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5분이면 도착한다. 오래 전의 기억으로 입맛이 씁쓸했다.
잠시 후 예상대로 어쩐 일이냐? 혼자 왔냐? 어미하고 애들은 잘 있냐? 등 속사포 질문이 이어졌다.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질문을 얼버무리고 시장기를 달랬다. 밥숟갈을 뜨면서도 그는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딱히 이야기할 내용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는 몰랐던 부모님의 결정으로 그동안 객지로 내몰렸던 삶에 대해 투정하듯이 털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객지 생활에서 묵혀두었던 감정을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부모님이 이해하실 리 없었다. 그는 자신도 잘한 게 없다는 자괴감으로 침묵을 택했다. 그는 식탁을 정리하고 물 한잔을 마시면서 혼잣말처럼 애매하게 그간의 사정을 얼버무렸다.
“좀 쉬러 왔어요.”
잠이 쉽게 오진 않을 것 같았다. 부모님의 뜨악한 시선을 피해서 비어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4시간이면 족한 길을 7시간이나 어물쩍거렸다.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해진 몸이 차가운 이불에 쓰러졌다. 갑자기 눈물이 어른거렸다. 난생처음으로 시도한 사업 실패와 마음 편히 제 몸 하나 의탁할 곳도 없어 부모 슬하로 찾아든 모습이 애처롭고 창피했다. 어금니를 깨물어 이유도 없이 복받치는 설움을 눌렀다. 그러면서도 아침이면 또 시달리게 될 상황이 몹시 못마땅했다. 어찌해야 하나? 그의 머릿속에는 알맹이 없는 질문과 뾰족한 수 없는 대답이 도돌이표로 그려졌다. 아득한 기억 속의 그 봄날에 도돌이표가 멈추었다.
중학교 3학년 오월의 푸르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산등성이 짙어지는 신록은 기온이 올라가는 계절이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먼 길을 통학하던 그는 땀으로 끈적거리는 그 계절이 반갑지는 않았다. 작은 체구의 그는 자전거와 자신을 옮기기 위해선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등교하면서 흘린 땀으로 수업 시작 전 끈적이는 몸의 느낌은 불쾌할 때가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등굣길에 오른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부피가 크지 않은 물건을 실을 수 있게 설치된 안장 뒤편에 초등학교 여동창의 책가방을 묶고 그의 책가방은 핸들에 걸었다. 다른 여동창들의 부러워서 놀리듯 건네는 소리를 뒤로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여동창의 고맙다는 인사가 유난히 예쁘게 들렸다. 다리에 힘을 더 주어 먼저 간 무리에 합류하기 위해 힘을 쓴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몸에 열이 오른다. 양철 교복 단추를 풀고 챙 달린 두꺼운 모자는 책가방에 쑤셔 넣었다. 자전거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주 오는 바람이 옷 속을 헤집고 귓가를 스쳤다. 상쾌했다. 미처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안개가 낮게 깔려 하얀 구름처럼 보였다. 움푹 파인 비포장도로는 자전거를 타면서 짬짬이 맛보는 하얀 구름과 상쾌한 바람맞이를 방해했다. 선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지나면 길이 좋아 무사히 학교까지 갈 수 있었다. 저 멀리 선바위가 구름을 잡아 놓고 있는 듯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선바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바위 아래에 낯설지 않은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몇 년 전 서울로 거처를 옮긴 첫째 숙모였다. 숙모는 자초지종은 없고 집으로 가서 짐을 챙기라는 말로 그를 돌려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그가 물었다.
“어디 가는데?”
“서울.”
숙모는 여전히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내가?”
“전학 가야 해.”
그의 물음에 숙모는 짧은 대답으로 다시 그의 길을 재촉했다. 그는 길을 되짚어 집으로 향했다. 조금 뒤 안장 뒤에 묶은 책가방 주인과 다시 만났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게 한다는 미안함에 말없이 책가방을 넘겨주었다. 여동창이 물었다.
“왜?”
“전학 간다.”
그의 목소리에는 지금의 미안함과 미래의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발그레 상기된 상큼한 그녀 얼굴이 그의 눈에 박혔다. 매일 만나지 못하게 된 아쉬움은 그녀의 실망한 눈망울에도 아른거렸다.
“편지할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인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는 중이었다. 동생들은 이미 학교로 갔다. 저만치 골목을 나가던 아버지를 불렀다. 선바위쯤에서 서울 숙모를 만났다. 지금 올라오고 있다.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놀란 아버지는 지게를 내려놓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르던 그에게 공부하던 책을 모조리 챙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한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그의 옷을 챙기라 말한 뒤 열린 방문에 대고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오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벌써 집 뒤의 계곡을 따라 밭으로 갔다고 했다. 책을 챙기다 멈추고 뛰어나갔다. 할아버지는 멀리 가지는 못했다. 그가 부르는 소리에 짊어진 지게를 돌렸다.
“지금 서울 가요.”
그의 뜬금포에 할아버지도 뜨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그가 아는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전학 가야 한데요.”
“가서 공부 열심히 하거라.”
“예.”
“얼른 가봐라. 열차 시간 늦을라.”
“예.”
할아버지도 영문을 모르시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번엔 짧은 인사를 마친 그가 돌아섰다.
다시 집으로 뛰었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다시 할아버지와 지내던 사랑채로 들어가 책상의 책들을 챙겼다. 책은 책가방에 빼곡히 채우고도 남았다. 어머니에게 보자기를 달라고 했다. 책가방 하나, 책보자기 하나, 옷가지 한 보따리. 그의 의아한 심정과는 달리 짐은 단출했다. 책가방은 핸들에 걸고 책보자기와 옷 보따리는 안장 뒤에 묶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 겪어보지 못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숙모의 도착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른들은 인사를 나누고 더 필요한 것을 묻고 챙겼다. 아버지는 그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엄마! 가.”
“그래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해.”
경황없는 짧은 인사가 모자간에 오갔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먼저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담임선생님은 다행히 수업이 없었다.
“왜 늦었어?”
담임선생임이 물었다.
“전학 가야 한데요.”
그의 아쉬운 듯 불안한 듯한 말에 담임선생님은 별말 없이 여기저기에 요청하여 서류를 챙겼다. 이윽고 숙모가 도착하여 서류를 꼼꼼히 살피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것으로 공식적으론 그와 이 학교의 인연은 끝났다. 서울로 가는 열차 시간이 빠듯하다는 숙모의 재촉에 선생님은 ‘공부 열심히’를 강조하였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때쯤 종소리가 들렸다. 낭랑하게 울리는 그 종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그의 이름이 들렸다. 몇 명의 친구가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쉬운 듯 부러운 듯 팔을 휘둘렀다. 그도 책가방과 책 보따리를 내려놓고 팔을 흔들었다. 그의 몸짓에는 미안함과 불안함, 그리고 또 보자는 희망이 담겼다. 친구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다음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흔들던 손들이 사라졌다. 돌아섰다. 저들도 몇 달 뒤면 이 산골을 벗어날 것이다. 그는 단지 조금 일찍 혼자서 그리고 경황없이 벗어난다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아직도 어찌 된 영문인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멀리 굽은 대로에 산촌엔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 언 듯 비쳤다. 뒤로는 갈색 먼지를 일으키며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날은 타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그가 서 있는 버스정류장에 빠르게 도착했다. 숙모가 먼저 오르고 그가 올랐다. 숙모는 운전기사에게 노선을 확인하고 차비를 내고 돌아섰다. 그는 자신의 짐을 버스에서 내리는 문과 가까운 의자에 내려놓았다. 숙모가 안고 있던 보따리를 넘겨받아서 창문 쪽 의자에 앉았다. 숙모가 의자에 앉아서 보따리를 다시 달라고 했다. 버스 엔진 소리가 유난히 무겁고 크게 들렸다.
버스는 갈색 흙먼지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덮어쓰고 하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버스 유리창 밖으로 무심한 눈길을 주었다. 오늘 일어난 지금까지의 일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내가 서울로? 서울이 어떤 곳이길래? 친구들은? 여동창의 보조개에 담긴 하얀 웃음이 무척 그리울 텐데. 옆자리 숙모는 밤차를 타고 온 피곤으로 눈을 붙였다. 정류장이 아닌 도로 옆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자 다시 버스가 멈추어 섰다. 어김없이 뒤따르던 갈색 흙먼지가 버스를 뒤덮었다. 유리창 밖으로 고정한 그의 시야에 흙먼지 속에서 일렁이며 떠다니는 민들레 홀씨 한 톨이 들어왔다.
‘저게 나구나.’
그는 탄식의 한마디를 가만히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감겨진 두 눈에 어둠이 밀려왔다. 그 어둠 속에서 하얀 민들레 홀씨는 덮어쓴 먼지의 무게를 힘겨워하고 있었다.
텅텅, 타 다다다다 탕, 탕, 탕탕탕. 경운기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꿈속에서 본 기억을 사라지게 했다. 그의 어머니가 아침을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경운기 짐칸에 올라앉았다. 어머니의 안전을 확인한 아버지가 경운기를 조심스레 출발시켰다. 골목을 나서자 경운기만의 건강한 리듬의 엔진소리를 내며 속도를 높였다. 그는 경운기가 동네 어귀를 지나 사라질 때까지 시야에 잡아두었다. 그 잔상에 다섯 남매를 모두 객지로 보낸 두 분의 쓸쓸함이 배어 있는 듯했다.
차려놓은 식탁은 소박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던 식탁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입맛이 사라졌다. 아마도 상황에 따른 기분 탓일 것이다. 아침밥을 먹은 것처럼 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챙겼다. 야외용 가스레인지를 챙기고 창고에서 낚시가방을 찾아 승용차 뒷자리에 싣고 집을 나섰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는 곳을 떠 올렸다. 농토와 인접해서 동네 앞을 흐르는 강에는 보는 눈들이 많았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면 오래전 경황없이 떠났던 집 뒤의 두 번째 저수지가 적당했다. 그가 서울로 유학을 떠나고 얼마 뒤, 집 바로 뒤에 저수지가 또 들어섰다.
두 개의 저수지로 변한 계곡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곳에서는 의도적으로 사람의 눈을 피하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자리한 수십 년 자란 버드나무 거목들이 하늘거리는 가지들로 그를 숨겨주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낚으려는 의도가 없이 낚시하기는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강태공이 떠오르자 헛웃음이 피식거렸다. 몇 대를 펼칠까를 생각하다가 한 대만 무성의하게 펼쳤다. 미끼를 달고 찌를 맞춘 후 아무렇게 널 부러 있는 편편한 돌을 엉덩이로 붙잡았다.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시간은 물 위를 따라 퍼져 갔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찌도 미동하지 않았다. 미끼가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찌가 움직이지 않았으니 그대로 놔두었다. 물 위에 떨어지는 버드나무 잎으로 시선은 가지만 그뿐이었다. 갑자기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 울렸다.
“어디냐?”
어머니의 전화였다.
“밖이요.”
“점심은?”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이 막혔다. 집에서 챙겨 왔다고 하면 동네 근처임을 눈치챌 것이다. 사 먹는다고 하기에는 어젯밤에 정리한 통장에 찍힌 숫자가 눈에 밟혔다. 다급하게 알아서 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기를 접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는 오늘 아침을 거의 먹지 않았다. 곧바로 라면을 끓이고 챙겨 온 반찬을 펼쳐서 시장기를 줄였다. 몇 번의 젓가락질을 하는 동안 찌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금 그의 마음의 콩밭은 라면을 끓인 냄비였다. 식어버린 아침밥을 점심 끼니인 따뜻한 라면 국에 말아서 마저 먹었다. 그동안 요동을 치던 찌는 잔잔한 물결 위에 편안히 누워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야외 밥상을 정리하고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작은 무게가 느껴졌다. 꽤 굵은 버들치였다. 일급수에서만 살아간다는 생물지표종이다. 갑자기 이 미물도 뭔가의 역할을 하는데 나는 뭔가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였다. 버들치를 빼내는 손길에 조심스러움이 묻어있다고 느꼈다. 민물새우의 미끼를 먹으려는 성가심과 몇 번의 버들치 입질, 몇 마리 붕어의 얼굴을 보는 동안의 시간이 흘러갔다.
늦은 오후가 되자 물 위는 완전한 고요의 상태에 도달했다. 저수지 옆 산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물속에 거꾸로 걸어 놓았다. 머릿속의 힘없는 생각을 무심히 흘러가도록 놔둔 채 그 풍경이 거뭇한 물속에 묻힐 때까지 무성의한 낚시꾼 노릇을 했다. 계곡이 깊어서인지 울창한 숲 때문인지 거뭇한 물에 무게가 실린듯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나? 자신 때문에 어색할 분위기의 집으로 가야 하나? 저녁을 굶더라도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야 하나?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전화가 울리고 있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기에 대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거뭇거뭇한 저수지의 어둠 속으로 무심한 눈길을 보냈다. 그 어둠 속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민들레 홀씨 한 알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의 심중이 정리되지 않은 탓이겠지만 부모에게는 명확한 처신을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부모님의 실망을 대하는 상황도 마뜩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더욱 싫었다. 이는 그가 집을 나설 때 등 뒤에서 아내가 못을 박은 사항이기도 했다. 그는 고향 인근의 동창생들을 수소문해 보기로 했다. 앞으로의 처신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에는 동네에 남아 있던 친구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녔던 동창생들을 알음알음으로 찾아다녔다. 삼십 년을 만나지 못했으나 유학을 떠날 때 교실 창문에서 손을 흔들던 그 모습들은 남아 있었다. 그간의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시선에 묻어있는 안타까움이나 우월감은 감수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이력이 이곳에서 별소용이 없음을 몇 번이나 그의 머리에 새겼었다. 그의 경력에 관한 대화는 동창생들의 동정심으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그의 방송국 근무의 경력과 경험을 무시할 것은 아니어도 이곳에서는 알아주지 않았다. 이것은 예상했던 결론으로 며칠간의 행적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마침내 한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그 동창은 지역의 주 농산물인 고추를 가공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고추를 가공한다고 하지만 말린 고추를 소포장하거나 가루를 내서 타지에 납품하는 비교적 단순한 공정의 사업장이라 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러한 작업에 동원되는 인력은 아니라고 했다. 고추 계약재배를 하는 농가들이 수확한 고추를 납품할 때 지원할 인력이라고 했다. 사무실에만 근무했던 그에게 지게차를 운전할 수 있냐고 물었다. 운전교육과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수확기에 일을 해줄 수 있냐고 했다. 지게차 운전은 주간 야간으로 나눈다고 했다. 당장은 수입이 생기지 않으나 부모님의 안타까운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단박에 수락했다.
공장 가동일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사무실에서 지게차 이론 교육을 하고 실습을 할 것이라 했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이론 교육을 마치고 실습을 위해 공장의 공터로 이동했다. 저장창고의 처마 밑까지 쌓여 있는 노란 박스가 마치 거대한 레고블록처럼 보였다. 생전 처음 지게차를 운전해 보려는 긴장이 온몸을 흩고 지나갔다. 강사가 안전에 대한 주의를 강조하면서 지게차에 오르라고 했다. 시동을 걸고 전진 후진 회전을 몇 차례 하더니 실습이 끝났다고 했다. 싱겁다. 빠르고 간단해서 좋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격증 취득은 둘째고 이것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작업 중에 손해를 끼친다면 회사가 가만히 있을까?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되려나 했는데 괜스레 불안했다.
이 일을 소개한 동창이 실습 현장을 다니러 왔었다. 강사와 몇 마디 나누더니 그에게 담배를 권했다.
“어떠냐? 할만하지.”
단정적인 물음이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쉽기는 한데 일을 하기에는 조금 불안하다고 웃었다. 동창은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 교육이 끝나면 남아서 연습하라는 조언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다른 사람들은 인사를 마치고 모두 돌아갔다. 혼자 남은 그는 실습한 순서를 되새기며 한참 동안 운전 연습을 더 했다. 사무실에 들러 동창에게 다음날 연습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회사도 능숙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흔쾌히 수락하면서 동창이 웃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 지역 번화가인 읍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저녁놀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카페에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더니 밖은 많이 어두워졌다. 그러는 동안 온갖 생각으로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유리창 밖 거리에서 시선을 거두어 카운터로 보내면서 커피 쟁반을 들고일어났다.
속성으로 배운 지게차 운전이지만 올해 여름은 지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시름을 놓았다. 그는 야간 근무를 자처했다. 일당보다는 부모님과 마주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야간에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잤다. 가끔 부모님은 신상에 관해 물어보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늘 시원찮았다. 당분간은 생각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꾸만 부딪히는 부모님의 눈초리가 부담되었다. 일하는 틈틈이 같이 일하는 인근 사람들에게 거처할 만한 집을 수소문해 보았다. 적당한 집이 있다고 하면 야근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들러보았다. 부모님 댁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동네에서 적당한 집을 구했다. 오래 비어있었던 집이지만 청소하고 벽지를 다시 바르면 지낼 만해 보였다. 문중의 재실로 사용했던 집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재실을 이용하는 제사가 없기에 비워두었다고 했다.
이튿날부터 야근을 마치고 그 집에 들러 청소하고 벽지를 다시 바르고 수도와 보일러를 고쳤다. 다행히도 집이 잘 관리되어서 수리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고추가공 공장에서 야근으로 받은 돈으로 감당이 되었다. 고추 공장 일이 끝나기 전에 거처를 옮겼다. 부모님에게는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찾아오실 리는 없지만 밝히고 싶지도 않았다. 두 달 동안의 고추 공장의 일이 끝났다. 다가오는 겨울은 쪼달리겠지만 무사히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옮긴 집의 주방과 안방은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해결했다. 안방 옆의 방 한 칸은 구들 난방이 가능했다. 생활비를 아껴 볼 요량으로 집 주변 가까운 밭둑의 잡목을 땔감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여전히 낯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댁의 밭둑에 난 잡목을 베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흔쾌히 승낙했다. 거처하는 집과 가까운 밭둑의 잡목으로 겨울 땔감을 비축했다. 그러면서 동네 여섯 가구의 아주머니들과 조금 가까워졌다. 그녀들은 밭둑의 잡목으로 그늘이 져서 농사가 덜 되기에 잡목 제거는 오히려 자기들이 고맙다고 했다.
겨울로 가는 계절이라 매일 기온이 내려갔다. 현금 지출을 아끼기 위해 기름보일러를 최소한으로 가동하니 집안이 썰렁했다. 그래서 오히려 정신이 맑다는 위로는 자괴감만 깊게 할 뿐이었다. 썰렁한 집안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청승맞고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라 더 심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여기서 나의 다른 삶을 가꾸어 갈 수 있을까? 현재에 대한 불안과 미래의 희망은 시시때때로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낙향하고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혼란스러웠다. 서글펐다. 구들방에 땔감을 더 밀어 넣었다. 불이 잘 타는지를 확인하고 아궁이를 막았다. 아궁이 밖을 깨끗하게 쓸고 방으로 들어갔다. 따뜻했다. 이불을 펼쳐 놓은 아랫목은 뜨겁기까지 했다. 윗목에 놓아두고 풀지 않았던 종이상자 속에서 <채근담>이라는 책을 찾아서 아랫목 이불속으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이불 위에 베개를 놓고 그 위에서 책을 펼쳤다.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지금 그의 상황을 정리하는 생각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글은 마음처럼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대신 젊은 시절 한자에 토를 달면서 공부했던, 이제는 색 바랜 그의 손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왜 이 글자들의 토를 달았는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때의 희미한 기억들로 지금의 정신이 더 가물가물하게 되는 것 같아서 책을 덮었다. 다만 젊은 시절 고민의 흔적인 색이 바랜 손 글씨들이 아주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낙향한 그해를 무사히 넘기고 다음 해부터 그 집에 딸린 농토를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재실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내려오는 토지였다. 세 마지기라도 인력만으로는 언감생심이었다. 이웃 마을 사람에게 밭갈이와 농사용 비닐피복을 부탁했다. 이웃 마을 사람이 일을 하는 동안 농기계 다루는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 밭에 콩을 심고 제초제를 뿌렸으니 한동안은 한가했다. 우선은 중고라도 농기계가 필요했다. 봄철에 여러 이웃집 농사일을 거들어주고받은 품삯을 모아 쓸만하다는 중고 관리기와 경운기를 샀다. 경운기는 밭을 갈고 관리기는 이랑을 만들고 농사용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한다. 틈틈이 근처 마을의 농사일을 거들어 품삯을 받고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당을 받아서 농사에 필요한 비용과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여름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한여름 풀들의 기세가 꺾이는 절기인 백로가 지났다. 그가 좋아하는 맑은 기운이 달빛에 서려지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는 빨간 글씨가 이어진 달력으로 추석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재실에 살게 되면서 한 달 전부터 벌초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추석이 가까워짐을 알게 되었다. 이 문중에서는 공동 조상의 벌초는 일찍 서두른다고 했다. 직계 조상은 통상 2주 전부터라고 했다. 그해의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말이면 산촌 언덕배기에 자동차들이 보이고 산소에 풀을 내리는 예초기 엔진소리가 요란했다. 다가오는 토요일에 벌초 다니자는 형의 통보가 있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촌들도 모두 온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5대 독자여서 집안에 친척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벌초하는 산소는 많았다. 이 지방의 벌초 풍습은 3대였다. 그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3대이니 여섯 분이다. 그런데 벌초하는 산소는 그 배가 넘었다. 그의 사촌들은 두 분의 삼촌 산소만 하면 되었다.
그의 1톤 화물차에 예초기 몇 대와 준비한 제물과 필요한 물품들을 실었다. 옆자리에는 형이 올랐다. 동생들은 승용차로 뒤따랐다. 매년 다녔던 산소로 가던 중 올해부터 그곳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뜨악했다. 왜라는 표정으로 물었으나 형도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가 다닐 곳만 지정해 주었다고 했다. 또 왜라는 얼굴로 물었으나 형도 자초지종은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자초지종을 몰랐던 중학교 3학년 오월의 그날이 스쳤다.
“이 집안은 자초지종을 빼먹는 게 내력인가?”
그의 혼잣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방향을 확인하며 형이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렇게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참을 달렸다. 증조부모, 조부모, 두 분 삼촌. 벌초는 빨리 싱겁게 끝났다. 그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벌초한다면 고조부모의 산소까지 벌초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되지? 그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벌초를 마치고 아버지 집에서 오랜만에 사촌 동생들과 둘러앉았다. 서로의 자세한 안부와 술잔이 오고 갔다. 같이 자리했던 아버지가 술은 과하지 않게 마시라고 했다. 특히 술병으로 돌아가신 둘째 삼촌의 아들에게 조심하라고 했다. 그 말에 모처럼의 친척 회식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핀잔을 줬다. 아버지의 언성이 조금 올라갔다.
동생 중 하나가 고스톱을 치자고 했다. 서로서로 그동안의 안부는 웬만큼 확인했고 술로 기분들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산골 동네에서 들뜬 기분을 유지할만한 오락거리는 없었다. 읍내로 가면 노래방이나 당구장이 있긴 하지만 운전을 할 수는 없었다. 만만한 것이 고스톱이었다. 잠깐의 어수선함이 지나가고 선수들이 입장했다. 규칙과 판돈을 정했다. 틈틈이 확인했던 안부 중에서 세세하고 알고 싶은 것들을 다시 묻기도 하였다. 시시때때로 술병을 잡은 사람이 바뀌면서 술 권하는 고스톱판이 되어갔다. 한판이 끝나면 승자는 기쁨에 들뜨고 패자들은 아쉬움과 야속함을 토로했다. 지나간 판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아쉬움은 다음 판에 대한 기대에 묻혔다. 판수가 늘어나고 술이 더해졌다. 모두 취기가 올라가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성인 남성 8명이라 왁자지껄했다. 슬하의 다섯 남매를 모두 객지로 보내고 적적하게 두 분이 거주하던 공간에 굉장한 활력이 흘렸다. 고스톱 규칙을 알지 못하는 그의 어머니는 뒷자리에 앉아 때때로 묻고 때로는 천기를 누설하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집안의 활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천기누설로 결정적인 승기를 놓친 막내아들이 큰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서로가 큰소리로 웃고 있을 때 아버지 방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큰 소리가 났다.
“집어치워!”
일순 모든 분위기를 잠재우는 아버지의 일갈이었다.
“왜? 애들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어머니의 역성이었다. 그 말에 아버지의 목청이 더 높아졌다.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똑같다.”
이에 큰 것인 형이 한마디 보탰다.
“오랜만에 사촌들끼리 한 참 재미있는데 왜요?”
아버지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왜 그러시냐는 뉘앙스였다. 어쨌든 흥은 깨졌고 판은 깨졌다. 서로의 본전을 돌려주고 아버지의 시선을 피한 동생들은 담배를 챙겨서 밖으로 피신했다. 취기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동생들에게 어김없는 아버지의 핀잔이 뒤통수를 따갑게 했다.
결국 큰 것과 엉거주춤하던 그가 아버지의 역성을 가라앉히는 볼모가 되었다.
“너는 눌러앉을 참이냐?”
그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그럴 작정입니다.”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이 거들었다.
“그러면 애들하고 재수 씨는?”
“안정되게 자리 잡힐 때까지 당분간 떨어져 살아야지 뭐.”
“잘하는 짓이다”
말을 가로챈 아버지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형이 따지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뭐가?”
아버지의 짧은 대답에는 형과 그에 대한 불만족이 섞여 있었다.
“오랜만에 동생들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역정을 내시냐고요?”
형의 말에도 불만이 가득했다.
“오늘 벌초한 것이 이상하지 않냐?”
예상한 말과 다른 말에 그와 형이 서로 쳐다보았다. 혹시 산소를 잘못 찾았는지 눈동자를 굴렸다. 틀림이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역정은 단순히 화투 놀이와 흥청망청에 대한 훈계가 아닌 듯했다. 담배를 피우고 먼저 들어온 동생들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역성을 가라앉히는 볼모로써의 역할을 계속해야 했다. 동생들이 떠나기 전에 어색한 분위기는 끝내야 했다. 그나마 친척이라고 찾아오는 가족이 이들뿐인데 나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추석은 매년 돌아온다. 올해의 기억이 내년에도 이어져서는 곤란했다.
“그럼 자초지종을 말씀하시면 되지 역정을 내세요?”
그가 형을 대신해서 거들었다.
“내가 천불이 나서 그런다.”
“뭐가요?”
형이 물었다.
“너희 조부는 노름으로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고 너희 둘째 삼촌은 술로 세상을 하직했는데 후손들이 그러고 있으니 천불이 난다.”
“그게 애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침묵을 지키던 어머니가 자식 편을 들었다. 오래 묵은 이야기가 있는 듯하여 그가 어머니에게 커피를 부탁하고 아버지 방으로 형의 소매를 끌었다. 어머니가 세잔의 커피를 들고 왔다. 몇 모금의 커피를 마시고 난 후. 그가 물었다.
“오늘 벌초하지 않은 산소는 이제 묵히나요?”
“묵히다니?”
아버지의 언성이 또 높아졌다. 형을 보면서 말했다.
“매년 벌초가 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해라.”
그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남이 한 것을 확인하라는 건 무슨 경우인가? “종손이 객지에 있는데 추석 전에 벌초할 수 있을까요?”
형이 말했다.
“그러면 내년 추석에라도 확인해라. 벌초하지 않았으면 종손 자리를 내놓으라고 해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너희 조부는 술로 집안을 망쳤다. 집성촌인 이 마을의 종가는 재산이 꽤 많았었다. 너희 조부 때에 종가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족보를 따지면 종손 자리가 너희 조부에게로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희 조부가 술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그 자리가 힘센 대소가로 넘어가 버렸다. 종친들이 너희 조부의 행실을 핑계로 바꿔치기했다. 아마도 너희 조모에게 농사지을 땅을 빌려주고 입막음한 것 같다. 그전부터 조부께서는 술을 즐기셨는데 그 이후부터는 더 많이 드셨다. 가난해서 술값이 없으니까 문중 사람들이 노름판에 기웃거리는 조부에게 술을 먹이고 취한 사람에게 빚보증을 서게 했다. 내가 농사해서 추수할 때면 사람들이 와서 돈을 달라고 했다. 물어보면 언제 어느 때 노름에서 빚보증을 선 것이라 했다. 확인할라치면 사람들이 입을 맞추고 너희 조부는 말이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 아니냐? 손 수 노름했다면 덜 억울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그의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면서 그 오랜 세월 전의 기억으로 울컥했다.
그의 형이 물었다.
“할머니는 왜 그러셨데요? 그런 내막은 알고 있었을 거잖아요?”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도 가난해서였겠지. 4대까지 독자로 내려온 집이니 도와줄 친척 하나 없었겠지. 우리 8남매와 너희 조부모까지 열 명이 먹고사는 것이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너희 조모가 꾐에 넘어갔겠지. 자세한 내막은 나도 잘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또 한 번 억울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할머니 하고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그것만은 아닐 걸?”
조용히 남편과 자식들의 대화를 불편하게 듣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어머니 이야기의 요지는 이랬다.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형과 여동생까지 3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미 삼촌이 서울로 거처를 옮겼으니 서로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전에 할머니가 고모들을 데리고 상경을 해버렸다. 고부갈등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자신들의 서울 상경 자금을 내어준 것이라 했다.
그는 잠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겨울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안채에서 호롱불에 의지하여 초저녁에는 새끼를 꼬고 깊은 밤에는 한서(漢書)를 읽으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그가 알기로는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 아버지만큼 한서를 읽을 수 있는 인근의 사람은 없었다. 한 젊은 가장의 배움에 대한 갈망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이 사그라지는 아픔이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형이 억울하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고집을 피웠으면 우리도 조금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덜 주눅 들고 덜 눈치 보고 덜 고달팠을 텐데.”
그가 생뚱맞게 끼어들었다.
“나는 드럼을 배우고 싶었었어.”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고집을 부렸는데 너희 아버지가 꺾이지 않았다.”
“왜요?”
그가 물었다.
“장남이 부모를 떠날 수는 없다고 하더라.”
아버지는 오랜 세월 한탄을 섞은 어머니의 면박을 말없이 받았다. 어린 자식 둘을 천리타향으로 보내고 살아온 어머니의 기억도 그가 느끼기에는 아렸다. 그리고 청춘이 묻혔다고 울분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그의 눈가에 들어왔다. 밖에서 취기를 수습하던 동생들이 모두 들어와서 비어있던 방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생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집 밖의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 해는 서산에 닿지 않았다. 작년 같으면 아직 산소에서 예초기를 돌리거나 갈퀴질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동네 앞을 지나는 농노로 걸음을 옮겼다. 벌초를 마치고 있었던 일을 정리해 보았다. 아버지는 종손 자리를 조부모의 경솔한 행동으로 잃은 것이 늘 가슴에 맺혀있었구나. 객지에 있을 때 가끔 서울에 오신 적이 있었다. 자식들 집에 머무르시지도 않으시고 당신의 볼일이 끝났다고 내려가신다는 전화만 했었다. 그것은 나중이라도 종손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구나. 아버지는 거의 해마다 서울의 종친회관에서 족보를 정리하는 일을 하셨다. 그 일에 왜 그리 열심이셨든 지를 오늘 알았다. 언젠가 그것이 가능할까? 현재의 종손이 벌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손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순순히 내놓을까? 이미 재산은 거의 처분해버리고 만 종가의 종손 자리가 의미가 있을까?
할머니의 말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20년을 고모네 집들을 전전했다. 아버지 하고는 만나면 싸웠다. 때로는 장남인 아버지에게 의지하려고 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할머니가 문중 사람들과 야합한 그때의 일 때문인지 아버지는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 앙금을 새겼다. 그렇게 병환으로 싸움하던 할머니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막내 고모의 전화로 다시 아버지에게로 왔다. 이제는 자리를 보전한 상태였다. 그 무렵 그의 어머니는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면서 술을 한잔 올려야겠다고 했었다.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그는 불안했다. 제사상의 제물 위치가 달라져도 그의 아버지는 역정을 냈었다. 그런데 제사 순서에 없는 일을 어머니가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 불안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제기용 술잔이 건너가자 긴장한 그가 잔이 넘치도록 술을 부었다. 어머니는 장남인 형을 지목하여 술잔을 올리라고 했다. 형이 술잔을 제사상에 내려놓자 어머니는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님. 오늘은 아버님 좋아하시던 음식들로 많이 올렸습니다. 많이 드시고 힘내셔서 얼른 어머님 모시고 가셔요.”
민망함에 그와 형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는 그러려니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가.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예년과 같이 제사를 마쳤다. 그리고 한 달쯤 후에 거짓말같이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 한 달간 아버지는 모든 병시중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의외였다고 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나 장례 후에도 아버지의 감정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그 한 달간 아버지는 할머니에 관한 앙금을 많이 삭혔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허랑방탕한 생활과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할머니의 야합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삶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종손에게는 대학 학비가 전액 지원되었다. 아버지와 또래의 다른 집 후손 중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께서 늘 그들을 입에 올린 의문도 풀렸다. 그리고 그의 결혼한 3형제가 가끔 다니러 와서 심심풀이로 하던 화투 놀이에도 질색하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아버지의 억울함과 희망과 회한을 담은 한마디였다. 치워라. 거기에는 어긋난 삶을 이제는 어쩌지 못하는 절망이 베여 있었다.
그리고 추석 이틀 전날이다. 그의 아버지의 생일날이다. 올해는 시간이 맞아서 5남매의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명절 밑에 있는 생일이라 찾아오는 친척들이 없었다. 고모들은 각자의 명절을 준비하느라 전화만 했다. 삼촌 두 분이 먼 길을 가신 후에는 자식들 외에는 없었다. 며칠 전 일이 있고 나서인지 그에게 아버지의 표정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열 명의 자식과 며느리, 열댓 명의 손자 손녀들로 온 집안이 왁자지껄했다. 아버지는 형제가 없는데 무슨 생일상이냐 하면서 며느리들의 정성에 스크래치를 주었다. 큰딸이 질색하면서 새언니들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할아버지 생일을 제 엄마에게 들은 어린 조카가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엄마 후~.”
제 엄마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그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큰딸이 며느리의 대답을 가로챘다.
“애들 아! 다 모여. 생일 케이크 먹자.”
생일상을 조금 정리하고 케이크를 찾아왔다. 그의 아버지가 또 미적거렸다. 또 그 조카가 구세주가 되었다. 조카의 조급함에 며느리와 딸들이 아버지에게 자리에 앉도록 재촉했다. 어린 조카의 앙증맞은 조막손이 할아버지에게 고깔을 서투르게 씌워주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묵묵히 어린 손녀의 손길을 받았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손녀에게 말했다.
“후~해야지.”
손녀와 볼을 맞대고 후~~ 하면서 바람을 불었다. 그 한숨을 내쉬는 찰나에 그는 보았다. 모든 것을 단념한 듯한 안색과 후손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았다는 표정이 교차하고 있음을.
3인용 화물차에 아내와 아이들. 네 사람이 타고서 길을 나섰다. 불편한 뒷자리 탄 둘째에게 미안함이 절로 들었다. 빨리 간다는 일념으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모두가 먼 길을 왔던 피로에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쉬어 갈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이들에게는 집의 안락함이 더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채 세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챙겨주신 채소와 추석 제사의 음식들을 옮기고 몇 달 만에 와보는 집안의 편안함에 운전의 긴장이 풀렸다. 아내는 그가 떠나버린 빈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주야간을 넘나들며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미안한 그가 물었다.
“애들은 학교에서 별문제는 없데?”
“무슨 문제?”
아내의 걱정 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냥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 데 따른 방황이나 주눅이 들거나 하는 것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 오히려 내가 야근하면 저들끼리 놀 수 있는 곳이 생겨 좋아하기도 하지.”
아내의 건조한 대답이었다. 씁쓸했다. 애들이 힘겨워하면 그 핑계로 시골 생활의 정산을 생각해 볼까도 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힘들지 않아?”
대답을 들으려고 한 물음은 아니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그는 변명인지 사실인지의 경계가 불명확한 이야기로 아내를 토닥였다. 내가 생각했던 농사환경이 아니다. 이미 작업할 때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린다. 기계가 많이 투입되었다. 빈손으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등이 요점이었다.
“언제 갈 거야?”
“휴일 끝나면 가지 뭐.”
“바쁘지 않아?”
“농토가 적은 사람이라 바쁠 일은 없어.”
아내는 하품으로 대화의 종료를 요구했다.
“들어가서 한숨 자.”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문 닫는 소리를 듣고는 일어섰다. 집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며칠간의 피로를 다독였다.
아직 거처도 명확하게 정하지 못했다. 농사에 집중할 품목도 정하지 못했다. 산채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초기비용이 꽤 소요되었다. 기계도 장만해야 하였다. 트랙터, 경운기, 관리기, 농약 살포용 분무기 등등. 무엇보다도 품삯이 문제였다. 예전에는 품앗이로 지탱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며칠 내로 지급해야 하였다.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면 되겠지만 잔소리는 듣기 싫었다. 더구나 그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시골로 출발하는 아침, 아이들의 등교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새벽 출발을 미루었다. 예쁘고 단정한 차림의 애들을 꼭 안아보았다.
“아빠 또 언제 와?”
정 많은 둘째가 신을 신으면서 물었다.
“농사일 부지런히 마치고 올게.”
“응 알았어.”
애들이 현관문 밖으로 사라졌다. 출입구 계단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내에게 커피 한잔을 요청했다.
“나는 당신이 타주는 시원한 커피가 제일 좋아.”
식탁에 앉아 내키지 않는 걸음을 늦추어 보았다, 아내가 가지 말라고 잡는 것처럼.
거처하고 있는 집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부터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다. 금방 지나갈 듯했던 소나기가 장대비로 바뀌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대나무숲처럼 어둠이 내려왔다. 세찬 저 빗속이라면 입속에서 녹아내리는 설탕처럼 내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는 진흙 덩이를 녹여주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뚱맞은 머리의 생각에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급히 집으로 와서 차를 세웠다. 멸치 떼 마냥 팔짝거리는 소나기를 보면서 골목에 나섰다. 장대비가 내리누르는 상쾌함으로 빛은 잠시 멀어져 있고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머리에 쏟아지는 비는 생각을 멈추게 했다. 목과 어깨를 타고 가슴과 아랫배를 지나서 허벅지를 타고 흐르던 빗물은 종아리를 거처 마침내 발바닥을 적셨다. 빗물의 흐름을 그의 느낌이 좇고 있었다. 그 순간은 생각이 아니라 오롯이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음미하며 빗속을 조금 더 걸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몸 전체에 한기가 들기 시작했다. 온몸이 동시에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온몸을 움츠리고 가던 길을 돌아섰다. 두 걸음 만에 그의 아래턱이 가늘게 떨렸다. 또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기도 전에 이가 아래위로 딱딱거리며 부딪힌다. 그 소리만큼 걸음도 빨라졌다. 빨리한 걸음도 소용없이 공포는 이미 뒷덜미에 붙었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이제는 느낌이 아니라 생각을 믿어야 했다. 보일러를 켜야 살 수 있다. 지푸라기 같던 흔들리는 정신이라도 부여잡고 샤워실로 가야 한다. 한기를 가득 머금은 옷을 최대한 빨리 벗어야 한다. 그리고 우선은 차가운 물일지언정 온몸에 붙은 한기를 씻어내야 한다. 온몸은 차가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정신은 차가움을 유지하기 위해 싸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생존을 위협했던 한기를 따뜻한 물로 씻어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계면쩍은 헛웃음은 세상의 자극이 경고용으로 끝났음을 의미했다. 더 깊이 몰아 쉰 한숨은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었다. 미처 챙기지 못했던 수건을 찾았다.
개켜져 조신하게 놓여 있던 수건을 펼치지 않고 눈두덩에 가볍게 가져갔다. 마치 정신을 더 가다듬으려면 눈을 쉬게 해야 한다는 주문에 걸린 것처럼. 눈 부위에서부터 뚜렷한 느낌의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음속으로 ‘살았구나’ 하면서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 느낌은 새벽녘이면 밤새도록 이불 밖에 있었던 그의 종아리에 이불속에 있던 아내의 종아리가 닿았을 때 타고 흐르던 온기처럼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 따뜻한 느낌은 여전히 놀라있던 가슴을 한층 더 가라앉혀서 심신의 안정을 찾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 따뜻함으로 기분이 좋아진 그는 여운을 잡아보았다. 좀 더 강하게 눈두덩을 압박했다. 그러자! 눈두덩이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따뜻함이 을씨년스러운 공간을 데우는 뜨거운 난로가 되어 온몸을 데우고 을씨년스러운 마음까지도 데워주었다. 그 느낌은 불에 덴 것처럼 매우 강렬했다. 그 강렬한 느낌이 완전한 여유를 찾아 주었다. 충분한 보온을 위해서 옷을 갖춰 입고 의자에 앉아 한 잔의 커피를 홀짝였다. 지난 달력의 뒷면에는 어지러이 더해진 색색의 글자와 문장들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써 둔 글귀였다. 천천히 그곳으로 눈길을 보냈다. 문득 젊은 시절 한자에 토를 달았던 <채근담>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을 찾으러 가는 그의 표정에는 마치 부처의 미소가 담긴 듯하다. 우연히 걸어본 빗속에서 그동안의 혼란한 생각들이 씻기고 따뜻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하얀 민들레 홀씨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