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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 Jun 09. 2022

아빠의 고향, 단양과 충주 여행-1

충청북도 단양에 계신 할아버지를 보고 나서 비로소 시작되는 여행


"할아버지 기일이니까 다 같이 할아버지 보러 가자"


매달 부부 여행을 계획하는 아빠의 가족 여행 제안으로 이번 6월에는 아빠의 고향인 단양, 그리고 충주의 여행 계획이 시작되었다. 극강의 P의 조합인 우리 가족의 여행 계획은 사실 많이 별 게 없었다. 


[여행 계획]

1일 차 - 단양 여행 및 숙소 체크인

2일 차 - 충주 여행 및 귀가


시간은 전혀 정해지지 않은 계획이 끝나고 곧바로 맛집 찾기에 돌입했다. 사실 여행의 반은 음식이고 반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실상 계획의 반 이상은 맛집 검색이었다. 1일 차 점심을 위한 식당은 단양 고수동굴 입구에 있는 '서울식당'이었다. 단양에 위치하고 단양의 특산물인 마늘이 주재료로 들어간 떡갈비와 수육 정식이 주요 메뉴인데 왜 서울식당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집 평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평점 평가로 (네이버 기준 5점 만점에 4.83)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숙소는 의외로 간단하게 결정됐다. 우리 가족 여행에서의 숙소란 '잠을 위한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숙소를 정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가성비'였다. 물론 조건이 하나는 아니었다. 그 외의 조건은 부모님과 우리 자매의 자는 공간이 분리될 것, 침대가 존재할 것, 밤에 조용할 것 등의 조건을 갖추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결국 찾게 되었고, 숙소는 충주에 위치한 호수가 보이는 '충주호반 힐링 펜션'이었다. 4인 가족 기준 1박에 10만 원 대의 저렴하지만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숙소였다.


사실상 숙소와 첫날 점심 식당을 정하는 것으로 나름의 여행 계획이 끝나버렸다. 충주에 시장이 크다더라, 구경할 게 많다더라, 할아버지 산소는 더울 테니까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정도의 얘기로 계획은 마무리되었다.


여행 당일, 아침 7시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아빠의 말은 지켜질 리 없다고 이미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7시 반 예상보다 이른 출발이었다. 이른 출발인데도 불구하고 차는 막혔다. 아마 오랜만에 온 월요일 공휴일로 인해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간에 휴게소 한 번 들리지 않고 달렸지만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은 단양군 단성면 두항리이다. 이곳에는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고 할아버지의 형제분들이 살고 계신다. 도착하자마자 더 더워질까 부랴부랴 성묘를 지냈다. 성묘를 지내는 동안 시골 개 누렁이와 겨울이가 열과 성을 다해 짖어댔다. 낯설다 이거지.

겨울이
그냥 동생이 찍은 건데 엄마 아빠가 귀여움

성묘를 지내고 두항(에 계셔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울산(에 계셨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가볍게 음복 겸 차를 마신 뒤 차에 올랐다. 드디어 가족 여행 1일 차가 시작됐다.


이전 계획에 미리 찾아놨던 서울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용한 동네 단양에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 많았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주차된 차들로 인해 좁아진 도로는 한층 더 아비규환이었다. 단양 철쭉제였다. 단양에서 진행하는 철쭉 축제인데 물론 참여해 본 적은 없고 지나가면서 아빠의 얘기로만 대충 얼마나 큰 규모의 축제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쿨하게 패스했다. 우리는 오늘 단양 축제 보러 온 게 아니거든.


식당 근처에 도착하니 사람이 붐볐다. 식당에도 사람이 많았다. 고수동굴 효과인가. 마늘 떡갈비 정식 2인과 마늘 수육 정식 2인을 시켰다. 주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밑반찬으로 상이 꽉 차서 메인 메뉴가 나올 때는 한 접시에 반찬을 합쳐 가짓수를 줄여야 할 정도였다. 

서울식당 - 떡갈비 정식, 마늘 수육 정식

요새 다이어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터지게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파파야 슬러시를 먹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할머니가 운영 중이신 잡화점에 들렀다. 슬러시 맛은 딸기, 오렌지, 파파야가 있었다. 동생은 파파야를 달라고 한 뒤 현금을 찾았다. 당연히 천 원, 이천 원 정도 될 줄 알았는데 별안간 놀이공원에서나 나올 법한 장난감 같은 통이 나오더니 오천 원이라고 하셨다. 아직 담기 전이라 손사래를 치며 일반 컵에 달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삼천 원이라고 하셨다. 삼천 원 현금을 찾는 동안 파파야를 담던 컵은 갑자기 딸기와 오렌지를 왔다 갔다 거렸다. 파파야만 담아 달라는 동생의 소심한 말에도 할머니는 파파야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로 결국 딸기와 오렌지가 90퍼센트 담긴 슬러기를 동생에게 건넸다. 파파야만 먹고 나머지는 언니를 주라고 하시던데. 엄마랑 나는 너무 웃겼고, 동생은 녹은 아이스크림 맛이 난다는 말을 하면서 결국 슬러시를 맛있게 잘 먹었다. 

문제의 슬러시


차를 타고 다음으로 간 곳은 '온달 관광지'였다. 이미 수많은 사극 촬영지로 사용되었던 관광지였는지 입구부터 촬영을 했던 드라마 및 영화의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었다. 

제대로 배경을 찍은 사진이 없어서 단양군청에서 가져온 사진

원래도 걷는 걸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꽤나 넓은 관광지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당시 고구려 옷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포토존, 당시 촬영에 쓰였던 촬영 소품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 밀랍인형으로 당시 사람들을 재현해 놓은 공간까지 다양했다.


관광지를 거의 다 둘러봤을 때쯤 아빠가 온달동굴을 들어가자고 했다. 물론 어둡고 바닥 미끄럽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와 동생은 가기 싫다 했고 나와 아빠만 동굴에 들어갔다. 자연동굴이라 그런지 굉장히 어둡고 낮고 좁았다. 물론 안전장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옆으로 빠질 염려는 없었지만 작은 조명 빛은 휴대폰 하나 떨어뜨리면 절대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길이 많이 미끄럽지도 천장이 너무 낮지도 않았지만 좀 더 구석구석 들어가면서부터 약간의 고행길이 시작됐다.

안전모 필수 안 그러면 일단 머리가 깨질 곳이 많음

일반적인 길은 평지였다. 그리고 간간히 '노약자 임산부 출입금지'가 적혀있는 팻말이 있는 계단 길이 있었다. 일단 들어온 이상 그 길은 한 번은 가봐야 했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지나가라고 있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되는 길이 나왔다. 어린 애도 똑바로 서서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이 생긴 길을 앞선 사람들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숙여서 가고 있었다. 일단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고 또 한 번 그런 길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쭈그려 앉은 채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높이였다. 훈련받는 줄 알았다.


힘든 거에 비해서 동굴에 있던 시간은 짧았다. 동생과 엄마도 그동안 다 보지 못한 부분을 보고 온 것 같았다. 이렇게 온달 관광지를 다 구경하고 충주로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출구로 가는 줄 알았던 발걸음은 마지막으로 온달관으로 향했다. 온달관은 여느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온달 이야기에 대한 내용과 당시 시대를 반영한 이미지가 많았을 뿐 사실 특별한 건 없었다. 엄마와 동생은 화장실 때문에 먼저 나갔고 나와 아빠만 구석에 숨어있던 포토존을 발견해 사진만 열심히 찍다 나왔다.

아빠가 사진을 너무 잘 찍어줘서 기분이 좋음

차로 돌아와서 단양에서 충주로 가기 위해 출발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돼 마늘 모양으로 아이스크림을 해준다는 아포가토가 있는 카페를 가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예쁜 사진을 많이 건져 크게 아쉽진 않았다.


충주까지 한 시간 가량이 걸렸다. 숙소를 들어가기 전에 숙소에서 먹을 고기와 술 등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거기서 고기도 사고 소시지도 사고 술도 사고 여기서 새로 나온 청하 스파클링을 샀다. 이걸 말하는 이유는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또 사 먹기 위해 기록용. 마트에서 장을 간단히 보고 숙소로 향했다. 충주 시내와 숙소까지의 거리는 삼십 분 정도였다. 숙소는 산 속이었고 호수가 바로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숙소 근처로 향했다. 숙소로 도작하기 전에 숙소에서 차로 1분 거리인 '남벌 횟집'에 들러 송어 1kg을 포장해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입구에 예약자인 엄마 이름이 보였다. 우리가 묵을 방은 10호였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라 차와도 가깝고 분리수거장 등 모든 게 가까웠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어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서둘러 저녁 준비를 했다.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숯 그릴을 쓰는 것도 좋았겠지만 집에서 전기 그릴을 챙겨 왔기 때문에 야외 테이블에 전기 그릴을 세팅하고 고기를 구웠다.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엄마표 반찬에 방금 포장해온 송어회무침까지 야외 테이블이 금세 빈곳 없이 채워졌다.

호수가 바로 보이는 곳에서는 뭘 먹어도 ...

배경도 좋고 술도 맛있고 안주도 완벽했기 때문에 이미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벌레의 습격으로 챙겨 간 전기 파리채로 불꽃놀이 몇 번 하고 그것도 안 돼서 테이블 자체를 들고 조명을 피해 이사 다니고 식사 중간에도 심심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 1차를 달리고 하늘도 어둑어둑해져 호수가 보이지 않을 때쯤 테이블을 정리한 뒤 숙소로 들어와 2차를 했다. 결국 소시지는 먹지 못했지만 맛있는 걸 먹고 난 뒤 부른 배로 화장만 대충 지우고 잠을 잤다. 새벽에 동생이 벽에 붙은 날벌레들을 보고 기겁하면서 나한테 반대로 자자고 했지만 내 눈에 안 보이니 괜찮다고 그대로 자버린 건 함정. 그리고 그걸 까먹어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나와 동생이 서로 반대로 자고 있어서 의문이었다는 것도 함정. 아무튼 좋은 안주 덕분에 숙취 하나 없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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