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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규 Aug 01. 2022

힐링을 위한 템플스테이 체험 - 1

하지만 체험형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지난 6월 나는 동생과 템플스테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단식원을 생각했지만 단식원 얘기를 꺼낼 때마다 법규를 날리는 동생을 데리고 억지로 단식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 템플스테이를 꺼냈다. 그리고 얘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빠르게 예약을 하게 되었다.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후보가 여럿 나왔다. 관악산에 위치한 연주암, 용인에 있는 법륜사 등 우리의 이동수단은 아빠가 운전하는 자차였기 때문에 그렇게 멀지 않으면서도 차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한 여름에 에어컨이 소지되어 있지 않고 원하는 날짜에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는 등 딱 알맞은 장소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수원에 있는 봉녕사를 찾게 되었고 개인 방사가 따로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깨끗하다는 후기를 통해 이곳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예약을 하면서 내용을 더 꼼꼼하게 읽지 못했다는 걸 나중에야 후회하게 되었다. 


봉녕사에서 7월 30일, 31일 주말 1박 2일을 예약했다. 휴식형을 원했지만 당시 예약을 할 수 있던 템플스테이는 체험형 밖에 없었고 체험형으로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봉녕사 템플스테이 문의처에 직접 연락을 넣어 체험형을 원하지 않고 휴식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흔쾌히 그렇게 해도 된다고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문의 전화를 한 달이 지나 템플스테이가 시작될 이틀 전에 한 번 더 전화를 하게 된다. 내 기억력이란...


템플스테이 당일, 마지막으로 수원 지동시장에서 순대곱창을 먹고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볶아 먹고 근처 카페에서 블루베리 스콘까지 먹은 뒤 봉녕사로 향했다. 밖은 매우 푹푹 찌는 상태였기 때문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쉴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들어간 곳은 봉녕사 사찰이 아닌 세주 불교문화원이었다. 절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 최근 지어진 듯한 건물에 들어가면서 템플스테이는 2층으로 가라는 문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신발장도 텅텅 비어있어 아직 아무도 안 온 건가 싶은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천천히 실내로 들어섰다.


개량 한복을 입은 남자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템플스테이로 오셨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큰 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올 사람 수만큼의 좌복이 놓여 있었고 뒤 쪽에 빈 수납장에 짐을 대충 놓은 뒤 한 곳에 앉았다. 좌석의 수는 7개였다. 우리를 포함해서 7명이라는 건가? 분명 예약할 때만 해도 우리까지 해서 14명 정원이 꽉 차있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날씨가 더운 탓에 예약을 취소한 인원이 반이나 됐나 보다.


방안에 단 둘이 있으면서 문 밖에 사람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우리를 맞이해줄 때와 똑같이 템플스테이로 왔냐는 말과 함께 우리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고 좌석 위에 사람들이 점점 채워졌다. 그리고 빈 좌석이 하나였을 때 남자분이 들어오시면서 한 명은 오늘 못 오기로 했다면서 좌석을 치웠다. 결국 우리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인원이 이번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되었다.


남자분은 봉녕사의 템플스테이를 주관하고 계신 팀장님이었다. 어쩐지 전화로 문의했을 때 받았던 분과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각자 이름표를 나눠주시고 나서 우리는 서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먼저 팀장님의 길고 긴 자기소개가 끝이 나고 우측을 기준으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A녀 22세. 현재 대학교 졸업 후 무직. 친구와 힐링을 하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신청함

B녀 22세. 현재 대학생. A녀와 친구로 함께 힐링을 하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신청함.

C남 32세. 뷰티 관련 제품을 다루는 자영업자. 일과 현실의 힘듦을 달래고자 템플스테이를 신청함.

D녀 49세.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 고3과 중3의 두 딸을 양육하고 있으며 원래는 자녀들과 함께 오고 싶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혼자 템플스테이를 신청함.


그리고 동생과 나. 이렇게 총 여섯 명은 서로에 대해 간략하게 알 게 되었고 팀장님이 주신 박하차를 마시며 긴장됐던 몸과 마음을 녹였다. 그리고 간략하게 프로그램 일정을 말씀해주시던 팀장님은 이번에는 휴대폰을 반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엥, 그럼 굳이 연락할 필요가 없었나 싶다가도 그래도 휴식형으로 전환된다 했으니 모든 프로그램을 소화하지 않아도 되는 걸로 만족하자 싶었다. 그리고 그 휴식형으로의 전환은 팀장님 머릿속에 까맣게 잊혔다는 건 다음날 퇴소할 때 알게 되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개량한복으로 이루어진 바지와 조끼는 활동하기 아주 편한 옷이었다. 감색 바지와 연두색 조끼에 집에서 가져온 반팔을 입고 나니 한껏 절을 돌아다녀도 잘 어울릴 거 같은 패션이 완성되었다.


금방이라도 지나가는 새 모이 줄 거 같은 패션

옷을 갈아입은 뒤 본격적으로 절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절을 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교육에 대한 내용은 단 한 가지였다.

1. 스님을 보게 되면 반드시 일어나서 합장을 한 뒤 반절을 할 것.


그러고 나서 한 절 교육은 이번 템플스테이가 순탄치만은 않겠다는 걸 조금씩 알려주는 시작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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