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과정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by 서규

마지막 글이 유도분만 날짜를 정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즐거웠는데.


유도분만 전날, 앞으로의 일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뭉티기에 생차돌박이를 시켜 먹으면서 최후의 만찬이라며 설레고 긴장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물론 밤낮이 바뀔 대로 바뀐 나는 겨우 한두 시간을 겨우 잤고 여섯 시 반에 눈을 떴다.


유도분만 당일, 눈이 와서 언 바닥을 조심조심 걸으면서 차에 올랐다. 우리 포동이 태어나는 날에 맞춰서 눈이 왔네 생각하며 출산 준비를 위한 짐을 바리바리 싸든 채로 병원에 도착했다. 3층 수술실 앞, 대기자석에 잠시 앉아 기다리니 곧 내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 소리에 긴장감이 훅 들어왔다. 수도 없이 유도분만 브이로그를 봤기 때문에 눈 감고도 앞으로 진행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긴 하지만 진짜 직접 겪는 건 다른 느낌이었다.


분만 관련해서 각종 동의서를 작성하고 남편만 다시 대기한 뒤 나만 우선 분만실에 들어갔다. 순서대로 항생제 테스트, 관장, 촉진제 링거 주사를 맞은 뒤 누워서 태동 검사기를 두르면 대기 중이었던 남편이 들어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항생제 테스트 주사나 촉진제를 넣기 위한 수술용 링거 주사는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관장약은 세상 제일 고통스러운 1분이었다. 이걸 어떻게 5분을 버티지. 아무튼 남편이 들어온 뒤에는 '대기-내진-진통'의 반복이었다.


오전 8시 반, 시작하자마자 자궁문이 1센티가 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진행이 빨리 되는 건 줄 알았다. 기계에 자궁수축 수치가 올라가도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아픈 거 잘 못 느끼는 게 이렇게 잘 먹히나 싶었다. 정말 한 치 앞의 미래도 모른 채.


오전 11시 즈음, 2차 내진을 하면서 양수가 터졌다. 양수가 터지면서 자궁문이 3센티 정도 열렸다고 했다. 자궁문이 더디게 열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양수가 터지면서 갈색 변의 색이 같이 나온 게 문제였다. 아기가 자궁 안에서 태변을 본 것 같다고 했다. 태변을 봤다고 해서 바로 응급제왕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앞으로 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유도분만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1차 제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행이 더디지 않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후 2시 반, 3차 내진을 하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일어나는데 양수가 줄줄 흐르다 못해 봇물 터지듯 주체 없이 흘렀다. 간호사 선생님과 나도 당황할 정도로 멈추지 않고 흐르는 탓에 패드를 아래에 여러 장 더 덧대었다. 겨우겨우 틀어막아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자궁문은 5센티가 열렸다.


오후 3시 반, 사실 1시 즈음 미리 아플 걸 대비해 무통주사를 맞자고 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무통 빨(?)이었는지 전혀 진통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거의 과장 조금 보태서 하반신의 마비가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 무통의 효과가 끝날 무렵, 고통을 잘 참는 성격은 무슨, 이때부터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사실 진통보다 오후 4시 1차 제한시간이 다가오는 게 더 두려웠다. 절대 수술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봐주길 바랐고 다행히 오후 6시까지 봐보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센티까지 열렸으니 그다음은 수월하길 바라면서.


오후 6시 반, 진행은 더 되지 않았다. 자궁문은 5센티에서 더 열리지 않았다. 아기는 골반뼈를 벌리고 나오지도 못한 채 머리끝만 겨우 끼어있었다. 진통은 1분 간격으로 왔고 숨을 억지로 크게 내뱉어야 고통이 겨우 가시는 듯했다. 자궁수축 수치가 15만 넘겨도 머리를 쥐어뜯었다. 남편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와 간호사의 말과 수술은 무섭다는 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7시 가까이 나를 설득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번갈아 와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나도 나지만 아기의 머리가 끼어 있고 태변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술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수술하기 무섭다고 울었고 남편은 자기가 괜히 유도분만을 얘기했다고 미안하다고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 거 아닌 건데.


오후 7시 반, 응급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수술은 빨리 준비되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진통에 정신 차리지 못할 때, 남편은 오히려 정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보호자로서 수술 관련 서류를 작성하기 바빴다(고 했다.). 진통에 정신이 없었을 때, 휠체어에 태워져 수술실에 들어갔다. 원피스를 상체로 거진 들어 올려 나체와 가까운 상태로 수술대에 눕혀졌다. 하반신 마취 주사를 척추에 맞고 팔이 양쪽으로 묶이다시피 고정시켜졌다. 마취 주사가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하반신이 차갑게 쥐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수술을 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에 수면 가스로 인해 바로 재워졌다.


코를 골았나 싶을 정도로 깊게 잠이 들었다가 정신이 몽롱할 때쯤 포동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다시 깊게 잠이 들었고 정신이 차려질 때쯤에는 내 아래에서 서로 수고했다는 말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이 끝났나 보다. 여전히 다리는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수술은 잘 마쳤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됐다. 그 와중에 자궁에 있던 혹 두 개도 제거하셨다는 말에 오히려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 낳고 나서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게 이런 건가. 나중에 들었는데 수술실 들어가자마자 10분 안에 애가 나왔고 그 뒤에 혹을 제거하는 과정이 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잘못된 줄 알고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나였어도 그랬을 듯. 그리고 둘 다 공통적으로 자궁은 멀쩡한지 물었다. 우리 둘째도 가져야 해서요.


회복실에 도착하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곧장 포동이가 태어나자마자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앙앙 우는 사이로 손가락 발가락 보여주는 영상이었고 태어나자마자 또렷하게 눈을 뜨고 남편을 바라보는 영상이었다. 괜히 내 고집에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줘서 태변을 보게 한 건 아닐까. 의사 선생님 말 듣고 일찌감치 네 시에 수술을 했으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그냥 유도분만을 하지 말고 네가 원할 때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나. 태어나자마자 한 번 안아줬어야 했는데 수술이 무서운 탓에 수면마취를 해서 안아주지도 못했네.


자책이 끝없이 이어질 무렵에 간호사 선생님이 포동이를 예쁜 포대기에 싸매고 연두색 모자를 씌운 채로 데려오셨다. 방금 태어난 애라고 생각도 못할 정도로 똘망하게 쳐다보는 눈이 너무 예뻤다. 내 틀에 오빠를 부어 넣은 듯한 반반 섞인 신기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볼을 만져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손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세상 바람 한 번 맞아본 적 없는 부들부들한 느낌이 들었다. 얘가 내 배에서 나온 애구나. 어떻게 얘가 내 배에 있었지.


순식간에 포동이와의 면접이 끝나고 남편이 먼저 병실에 짐을 가져간 뒤 나는 침대 그대로 병실로 옮겨졌다. 여전히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간호사와 남편이 침대보 그대로 나를 병실 침대로 옮겼다. 여기서 일주일을 있어야 하는구나. 모든 게 끝나고 난 뒤에야 수술 후유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마취가 끝나면..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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