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며느리가 집에 왔다. 터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들을 만나러 먼 길을 왔다. 오랫동안 영상으로 통화만 하다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온 며느리다. 결혼식은 올가을 터키에서 하기로 했다. 터키에서 선생님 일을 하는데 방학 때 시간을 내서 한국으로 온 것이다. 자그마한 키에 연한 갈색빛이 약간 섞인 금발머리 아가씨다. 그 아이 이름은 움란.
움란과 나는 서로 상대방 나라의 말을 모르니 짧은 영어로 대화를 했다.
"어머니. 반가워요."
활짝 웃으며 건네오는 서툰 한국말 인사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약간 걸걸한 것이 이색적이다. 웃음이 많은 아이다. 별말이 아닌데도 리액션이 크고 호탕하게 소리 내어 웃는다.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웃는다. 그녀의 짧은 한국어는 아들이 호칭과 인사말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렇게 첫 만남이 시작되고 50일 정도 함께 지냈다. 때가 여름 방학 때 인지라 한국은 장마가 시작되고 뜻하지 않게 움란은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하게 됐다. 평일엔 출근한 아들을 기다리다가 주말이 되면 서울에 가서 관광지를 둘러보곤 했다. 그중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어머니 저 여기 다녀왔어요."
서툰 한국어로 아들의 입을 빌려 나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한복이 너무 이쁘다고 신이 났다. 자신이 공주 같다며 또 크게 웃는다. 나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아. 그래 예쁘다. funny?"
하며 주어 동사 그런 거 필요 없이 중요 단어로만 물었는데도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도 영어가 서툴기 때문이다.
그 사진 속에 전각이 보였다.
"음 여기는 근정전이구나. This is 근정전. This is a business room."
영어가 짧은 나는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그러자 며느리는
"음. OK."
그녀도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경회루 사진을 보며
"This is a party room"
"음. I see."
그리고 몇몇 장소도 영어로 말을 해 줬다. "Queen's bedroom"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아들이 놀라며
"어? 어머니 이렇게 간단하게 말한다고요?"
"왜?"
"나는 이거 설명할 때 엄청 길게 말해줬는데 어머니는 그냥 한 번에 끝나네요."
"난 영어를 잘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떡하니."
그러나 막상 움란은 내가 한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어머니는 중국어를 할 줄 알아?"
하며 아들에게 영어로 묻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아들은 중국어가 아니라 한자다. 어머니는 한자를 잘 안다고 말했다. 움란은 나에게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여준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녀는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한다.
내 보기에 그녀는 초등학생처럼 순수해 보였다.
유난히 웃음이 많다. 외국인 며느리인지라 약간은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잘 통한다.
그녀가 답답해할 것 같아서 평일 낮엔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카페도 갔다. 아들이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엔 우린 나의 모닝을 타고 역까지 나가 기다렸다. 움란은 너무 좋다고 한다. 둘이 이야기하다가 좀 더 자세히 말을 하고 싶을 때는 핸드폰에 있는 통역 앱을 켜고 대화를 했다. 터키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을 한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사랑이 크다. 교실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자신의 가족사진도 보여준다. 그럴 때면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작은 얼굴에 미소가 절반이다.
재미있는 또 한 가지는 식사를 할 때마다 김을 많이 먹는 것이다. 처음 보는 김을 보며 이건 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이끼?"
라며 놀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이걸 김이라고 부른다고 말하고 한번 먹어 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한번 먹어 보더니 자장면을 먹어도 김에 싸서 먹고, 밥을 먹을 때도 김에 싸서 먹고, 라면도 김에 싸서 먹고, 김치도 김에 싸서 먹는다. 그러니 마트나 쿠팡에서 김을 박스로 사 대느라 돈 좀 썼다.
"어머니. 맛있어요."
서툰 말로 정말 맛있다고 매번 얘기한다. 입술에 김을 마구 묻히면서 잘도 먹는다. 그리고 단무지도 신기해하면서도 많이 먹는다. 돌아갈 때에는 캐리어에 김을 한 상자 넣어 갔다.
터키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인데도 움란은 삼겹살을 엄청 맛있게 먹는다.
처음 먹는 거라고 하면서 잘 도 먹는다. 다행히 먹는 거로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에 어머니가 꼭 와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씀을 한다. 내가 안 가면 안 되지...
가는 날 움란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울음을 참았다. 그녀의 정수리에서 더운 기운이 올라온다. 이별의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출국하는 날 우리는 인천 공항으로 갔고 수속을 마친 뒤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비행기 타려면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느긋하게 음료를 먹던 그녀는 갑자기 늦었다며 허둥지둥한다. 우리 셋은 달렸다. 비행기를 놓치기 직전이다. 그녀를 게이트에 보내놓고 무사히 탑승했는지 알 때까지 아들은 계속 연락을 기다렸다. 초조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 조금만 늦었으면 타지 못했다고 한다.
휴...
많이 웃는 모습은 좋은데 말이지 너무 느긋한 성격은 좀 걱정스럽다.
요즘은 가끔 영상 통화를 할 때 나도 한 마디씩 보탠다. 보고 싶다고, 밥 많이 먹고 건강하라고. 가을에 갈테니 조금 있다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