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사색

by 길은연

이른 새벽 - '4시도 안됐어?'

한 번 깬 잠은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 워치를 확인해 본다. 그리고 머리맡에 두었던 폰을 들어 수면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수면 시간은 4시간 35분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

다행히 깊은 잠을 많이 잤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꿈을 꿨다. 비행장 꿈.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오고 다시 외국으로 가는? 그것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꿈이니까 그렇겠지... 현실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을 그런 꿈 말이다. 꿈을 꾸던 시간 내 심박수는 고공행진을 했다고 그래프가 보여준다. 다른 날 같으면 계속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오늘은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지난밤 사 온 고구마 케이크와 커피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즘엔 글을 쓰지 못했다. 내가 저승 갈 때 USB에 담아 갈 내 소중한 추억들... 경험과 감정들을 정확히 쓰고 싶었는데 그때의 느낌만 남아있다. 아주 작은 사건들의 편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정말 소설을 쓸 지경이다. 아니 아니 그러면 안 돼. 내 소중한 기억을 왜곡하기 싫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어릴적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주변 환경이다. 막연히 이게 내 얼굴이야. 하고 인정하는 건 고등학교 때 교정에서 찍은 사진으로 본 얼굴이다.

그 사진을 보면 아, 이거 나야... 이런 생각을 했지만 다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내가 아닌 낯선 얼굴이 들어있다. 심지어 핸드폰에 들어있는 10년 전에 찍은 사진은 전혀 나라고 인정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어? 이게 나라고?'

열 살 때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엄마 아버지의 젊은 얼굴은 기억난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도 기억난다. 내 동생들의 얼굴과 친구 얼굴도 기억나... 그 역시 어느 한 시점이겠지만 말이다. 그 모습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기억이겠지.

그런데 내 모습은 상상이 안돼. 사람은 매일 조금씩 변한다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현재가 그렇다.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너는 누구냐. 넌 내가 아니야.' 슬픈 감정이 올라온다. 열 살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은데 얼굴은 다르다. 이 기분 나쁜 이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거울을 보기 싫다. 예전의 내 모습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화장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다. 나이 들면 이렇게 변할 거였어?


난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끔 남들이 예쁘다고 하지만 그건 그저 립 서비스 일뿐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단 한 곳 내 눈. 내 눈은 예뻤다. 쌍꺼풀이 진 눈은 내가 봐도 마음에 들었다. 아니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단 한 곳이지만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지금은 눈동자만 남아있다. 눈동자만이 나라고 알려준다. 다른 곳은 모두 변했다. 쌍꺼풀은 쳐져 있고, 얇아진 피부는 주름이 생겼고 햇빛을 피했지만 얼굴은 약간 검게 탔고 부드럽던 손등엔 거친 실금들이 어지럽다. 유난히 손가락이 곧고 길어서 결혼반지를 맞출 때 감탄을 자아냈는데... 이젠 마디가 굵어져 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흰머리칼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염색을 하면 된다. 염색을 하는 이유는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서다.

나이 든다는 건 다 그런 거지만 요즘은 우울증까지 오려고 한다. 몸과 마음 세월의 괴리가 너무 크다.


릴스에 유명 배우들의 리즈시절이라며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면 그들의 아름다운 시절과 현재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그들이 리즈시절일 때 같은 시대를 산 나도 리즈시절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노래하는 입술,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불안한 심장, 윤기가 흐르는 머릿결... 나도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미소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하던 시간. 건강한 머릿결 덕에 여간해서는 컬이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움과 호기심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시간들... 이런 설렘은 지금 젊은이들도 다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렇다. 마음은 과거나 현재나 같다. 우리가 사는 배경만 달라질 뿐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다 마신 커피잔은 가져다 놓고 선물로 받은 러시아제 홍차를 머그컵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어 가져왔다. 미래를 상상하든 과거를 상상하든 상상은 즐겁다. 나만의 세상에서 펼쳐지는 놀이동산이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각각의 기억에는 다른 감정으로 편집되어 남아있는, 저승 갈 때 가져갈 나만의 추억...

사실이라고 믿는 일들이 오해로 편집되었거나, 남들이 일부러 만들어 준 오해가 사실로 기억된다고 해도 각자의 가슴에 남아있는 추억들은 영광의 훈장으로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내 아이들을 보면 갓 태어난 순간부터 어린 시절까지 모두 다 한순간에 느끼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전철을 타고 갈 때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들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저 아저씨는 젊었을 때 어땠을 것 같다. 이 아주머니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다. 저 할아버지의 리즈시절은?... 그 들에게도 모두 빛나는 미소를 가진 시절이 있었다. 짧은 순간 그들의 젊은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또한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훗날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의 저 모습은 이렇게 변하겠구나...

양자 물리학과 관련해 본다면야 이론적으로 시간의 없음을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한 사람의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상상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늙음이 아니다. 미소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늙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에게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볼 때는 늙은 모습이 아닌 어린 미소로 만 기억된다. 세상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결승점에 도착한 이의 미소가 순수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사람들 모두가 그 결승점에 도착하는 건 아닌가 보다. 노인들에게서 순수한 미소를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미소다. 대부분이 조용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여린 미소가 좋다. 난 무조건 예쁘게 웃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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