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아. 잘 지냈지? 네가 있는 곳은 어디쯤 일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말 너는 하늘의 별이 됐을까?
네가 별나라로 여행을 가고 나서 지금까지 네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어. 아직 이 상처를 들여다보기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말할래. 너를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아.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알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방학을 막 시작한 7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지. 아침 식사 준비를 하던 바쁜 시간에 엄마 폰 번호로 낯선 남자의 놀라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렸어. 내용을 듣기도 전에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분은 네 소식을 전하며 빨리 와보라고 조심스러운 말을 남겼어. 119소방관님이었어. 난 "아"... 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지. 숨이 멎는 듯했어. 처음 겪는 일이잖아.
"미쳤어. 미쳤어. 얘가 미쳤나 봐. 어제 나랑 통화를 했는데 여보 얘가 미쳤나 봐."
그러자 네 형부도 놀라 잠시 어리둥절해 했어.
네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난 모른척했다는 죄책감에 눈물도 나지 않더라. 심장만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큰 북을 울리고 있었어. 병원에 도착하니 벌써 빈소가 마련되었는데 우리는 빈소도 마련하지 않기로 했어. 그리고 조용히 너를 보냈지. 아버지의 흐느끼며 떨리는 어깨와 등 너머 눈물이 보였어.
너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 우리 형제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해. 너의 차가운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히는 순간이 말이야.
'3일 전엔 함께 이마트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고 어제 낮엔 우리 통화했잖아. 그런데 ...'
난 속으로 외쳤어. '너 왜 그랬어. 이 바보야. 이게 뭐야.'
사실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그때 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었어. 그런데도 난 그냥 지나쳐 버렸지. 그게 내 마음에 남아 지금까지 힘들어.
네 물건 중 핸드폰을 내가 가져왔어. 너의 힘든 순간이 여기저기 붙어있더라. 십자가가 그려진 스티커가 몇 개나 붙어있었어. 간절하게 기도하며 살려달라고 매달렸을 네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미어졌어. 네 폰을 버리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 거기에 담긴 네 목소리보다 내 머릿속에 있는 너의 목소리가 더 생생할 정도야. 힘든 목소리... 네가 우리를 떠나가야만 했던 이유... 녹음된 목소리를 몰래 들으며 미안함에 얼마나 울었는지.. 10년이 넘도록 난 한 번도 네가 있는 납골당에 가지 않았어. 마음속에서 너는 거기에 있지 않다고 우겼어.
우리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자매들 사이에 있는 질투와 시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부러워했거든. 너는 나를 나는 너를 부러워했지. 너 모르지. 사실 난 네가 엄청 부러웠다. 너의 영특함이 말이야. 너의 그 똑똑한 머리는 따라가기 어려웠어. 똑 부러지는 자기주장도 부러웠고...
내게 단 한 번도 언니라고 부르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게 언니라고 불렀다면 더 슬펐을 것 같아.
나훈아의 잡초가 한창 유행하던 때 우리는 방에 앉아 둘이서 동네가 떠나가라 놀래를 불렀지. 찾아보니 그때가 내가 고등학교 너는 중학생 시절이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엄청 웃었을 것 같아. 정말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며 신나서 불렀으니까.
셋째인 너는 첫째인 나를 부러워했어. 친척들이 언니만 좋아한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야. 하지만 너도 알지 내가 관심을 받는 만큼 네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거...
나는 네가 부러웠어. 언제나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나보다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했던 네가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어. 엄마한테 야단을 맞거나 엄마를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할 때마다 매번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너를 보면 마음이 넓지 못한 난 속으로 너를 베짱이 같다고 생각했어. 정말 꿀밤을 주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
혜영아.
네가 떠난 후 노래방에 한 번도 가지 못한 거 알아? 너랑 나랑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많이 불렀잖아. 네가 떠난 후 난 더 이상 노래방에 가지 않았어. 거기서는 네가 생각날 것 같아서 말이야. 지금도 길을 가다가 노래방 간판을 보면서 너를 떠올려. 그런데 네가 무슨 노래를 좋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왜일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네 전화번호는 여전히 내 폰에 혜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자식의 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가끔 카톡을 보낸다는 글을 보면서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나도 도저히 너의 번호를 지울 수가 없더라. 네가 떠나고 네 번호는 어느 신혼부부의 신랑 번호가 됐나 봐. 그분이 올린 첫 번째 사진이 웨딩사진이었거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이 하나씩 업데이트될 때마다 마음속으로 축하를 해 주고 있어. 그분들이 예쁜 딸을 낳았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 딸이 정말 잘 자라주기 바랐어. 그리고 그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그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지금은 학교에 다니나 봐. 앞니가 두 개나 빠졌고 웃을 땐 귀여워. 정말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야. 너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면 저렇게 살았을 텐데 말이야. 그분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주는 게 나한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
이젠 네 번호도 지울 때가 된 것 같아. 왜냐면 이젠 너를 보내 줄 거니까. 너는 편안한데 내가 너를 보내지 못하는 거겠지. 제발 그렇기를 바래.
그래도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절에서 49재를 지내준 거야. 정성을 다해 너를 위해 기도했어. 아니 동생을 살피지 못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네가 내 꿈에도 나와서 평생 부르지 않던 언니라고 했잖아. "언니 고마워" 하는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 내게 보내준 너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해.
생각해 보니 우린 서로 사랑한 거였더라. 그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했던 것뿐이더라고.
네가 가고 나서 결심한 게 하나 있어. 나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겠다고 말이야. 그 사람들이 더 이상 너처럼 떠나가지 않게 하겠다고. 그건 내게 커다란 임무가 되었고 잘 수행하겠다고 약속했지.
아마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네가 가르쳐 준 것 같아.
네가 가고 한동안 엄마가 미웠어.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허락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생각했거든. 그래서 오랫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제 미워하는 거 안 하기로 했다. 엄마가 네 곁으로 가신다면 난 또 후회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이제 엄마한테도 위로를 해 드리고 싶어.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할 거야. 나도 많이 아파서 그랬다고 용서해 달라고...
오늘 새벽 2시 40분쯤 재난 안내로 핸드폰과 손목의 스마트워치가 요란하게 울렸어. 충청북도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거야. 겨우 잠들었는데 놀라서 깼거든. 다시 자려고 노력했는데도 놀란 가슴이 네가 갔을 때처럼 두근두근하고 진정이 되지 않아. 그래서 이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너를 생각해.
엄마와 화해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너를 떠나보낼 수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한동안 기도한 거 너한테 전달이 되었을까? 내가 이 세상 마치고 떠날 때 네가 와주길 바란다고 부처님께 기도를 했는데...
꼭 그랬으면 좋겠어.
이 슬픈 기억도 내가 간직해야 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어. 잊지 않을 거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