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모

by 길은연

이모의 사전적 뜻은 엄마의 형제다. 하지만 나에게는 두 번째 엄마라고 하고 싶다.


내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었다. 여름날 해 질 녘 저 멀리 밭 사이를 지나 이모가 걸어오고 있다.

할머니께서 오늘은 큰 이모가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동구 밖으로 나가 이모를 기다렸다. 보고 싶은 엄마를 기다리듯이...

이모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달려가 치맛자락을 잡고 웃으며 인사를 드렸다.

"이모. 오셨어요?" 이모는 반갑게 웃으시며 왜 나왔냐고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모는 모르실 터이다. 마음속에 행복이 넘쳤다. 이모를 앞서서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드릴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담아 드리고 싶었다. 이모가 오늘 밤에 외가 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신다고 했다.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이모 옆에서 자고 싶었다.


첫째 인 나는 연년생인 동생부터 시작해서 나이 차가 많지 않은 동생이 넷이나 됐다.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엄마는 나를 어릴 때부터 자주 외가 댁으로 보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특히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외가 댁으로 보내졌다. 삼촌과 이모들은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외할아버지 사랑도 듬뿍 받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고 어떤 때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몰래 울기도 했다.

내게 이모는 세 분이시다. 그런데 이 분은 첫째 이모로 엄마의 언니 시다. 노래도 잘 하시고 많이 웃으시고 특히 이야기를 잘 하셨다. 이모님이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실 때는 항상 이야기를 듣느라 늦잠을 자곤 했다. 목소리도 좋았다. 말투도 좋았다. 코미디언보다 더 웃겼다. 나는 이모가 그냥 다 좋았다.

이모는 나를 부를 때 늘 우리 미영이라고 하셨다. 우리 미영이라는 말은 엄마한테도 들어보지 못한 다정한 말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다정하지 못하셨다. 엄마는 아이들에 치여 항상 피곤하고 예민해있었다. 그중 첫째 인 나는 그 스트레스를 모두 받아내는 역할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좋았다. 엄마니까...

그런데 이모는 늘 웃는 얼굴로 우리 미영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셨다. 우리 미영이는 못하는 게 없네. 우리 미영이는 착하네. 우리 미영이는... 항상 우리 미영이는이라고 시작하고 칭찬을 해 주셨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모를 통해 들을 때면 자존감이 올라갔다. 이모가 우리 집에 오시면 달려나가 인사를 드렸다.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차를 내오고 밥을 지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는 이모가 욕심이 많다고 불평을 하지만 내 마음에는 천사셨다. 언제나 내 편이셨다. 이모의 사랑은 사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엄마는 우리보다 미영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아무렴 자신의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았겠나. 하지만 이모는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이셨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가슴속으로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분


그런 이모께서 재작년 이맘때 노환으로 운명하셨다. 2년이 지났다. 코로나 시기에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서 병문안도 못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다. 사촌들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다. 지금도 이모를 생각하면 눈물이 고인다.

이모님 지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죠? 미영이가 항상 기도드려요. 그곳에서도 행복하시라고요.

다음 생이 있다면 이 고마움을 다 갚아드리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이모님을 생각하니 목이 매이고 아프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 엄마 같으신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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