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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Dec 17. 2019

나는 과거와 미래가 뒤범벅이 되어 현재를 살고 있다.

어젯밤 집전화벨이 울렸다. 30년 동안 얼굴을 못 본  고등학교 친구의 반가운 전화였다. 근황 토크 중 요즘 '기본소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내 말에 친구는 대뜸 "30년을 앞서 살고 있구먼"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살고 있다는 덕담일 수도 있지만 '기본소득'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아직 멀지 않았느냐는 친구 나름의 진단이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현재 노동 중심의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하고 노동의 대가로 먹고살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노동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해 복지를 베푸는 세상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의 노력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 조건 개선 등 노동조합 운동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또 한 편에서는 '완전고용 보장'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기술혁명으로 인간의 자리에 AI와 로봇이 점점 대신하는 상황에서 과연 '임금 노동'이 기반이 되는 사회가 영속 가능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즉 일하고 싶어도 더 이상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일해서 먹고살라는 말이 과연 올바른가라는 의문 말이다. 


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에게 효과적으로 걷는 법, 뛰는 법이 무슨 소용인가? 그에게 필요한 것은 휠체어를 타고도 어디든 접근할 수 있는 이동권이다. 


친구의 말에 난 일정 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AI와 로봇의 출현이 시작된 시기이고 어찌 보면 인간과 경쟁, 공존하고 있는 시기이기에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두 발로 걷고, 뛰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와 로봇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그 세상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의 한 부분이 기본소득제의 정착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와의 정겨운 통화는 계속되었다. 통화 막판 친구는 내게 핸드폰 번호를  문자로 찍어달라 했다. 난 핸드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과거에는 아예 없었는데 이제 핸드폰이 있기는 하다. 요즘 모든 인증이 자신 명의 핸드폰으로 진행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인 인증용으로 핸드폰을 장만했다. 다만 갖고 다니지 않는다. 대신 개통 안된 공기계를 갖고 다니며 와이파이를 잡아 사용한다.


그러자 친구가 또 한마디 했다. "30년 전 세상을 살고 있구먼."


난 그렇게 미래와 과거를 함께 품고 현재를 살고 있다. 30년 전 고교 시절 그 친구에게 NP의 비전을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NP (New People)가 출현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난 믿었다. 지금쯤 난 NP가 되어 세상을 바꿨어야 했는데 어느덧 OP (Old People)가 된 것은 아닌지? 


핸드폰도 안 쓰고, 스트리밍 서비스도 안 즐기고, IPTV도 사물인터넷도 쓰지 못하는 OP (Old People)이지만


그래도 모든 인류가 기본소득을 누리기를 꿈꾸는  NP (New People)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과거와 미래가 뒤범벅이 되어 현재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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