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배 Jan 08. 2020

“어이~ 이 선생은 돈은 얼마나 벌어 놨나?”

부자가 아니면 어때? 그냥저냥 살아도 괜찮아!

“어이~ 이 선생은 돈은 얼마나 벌어 놨나?”

미얀마 여행지에서 일행인 60대 중후반 사업가가 내게 던진 뜻밖의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한국 사회에서 대놓고 남의 재산 상황을 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뭐 특별히 재산이 많은 것은 아니고, 다행히 아내나 저나 검소해서 안 쓰는 것이 돈 모아 놓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우회적으로, 그러나 솔직히 말씀을 드렸다.


“하긴 사업하는 사람 아니고 직장 생활해서 큰돈 만지기는 쉽지 않지.”


큰돈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오를 수 없는 나무라고 생각하고 쳐다도 안 봤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떠나 고결한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돈을 좀 불려볼 욕심에 투자인지? 투기인지? 모를 일에 나섰다가 혼쭐이 나서 냉가슴을 앓기도 했다. 결국 내 몸뚱이 굴려서 번 돈으로 알뜰살뜰하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말이다.


결혼 전 우리 부부는 1억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때 은행 이율이 12% 정도였고, 사채는 2부, 3부 이자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1억만 있으면 은행에서 매달 100만 원씩이 따박따박 나오니 놀고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엄청난 큰 금액 1억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특별히 자녀들 사교육비에 돈 안 쓰고, 아내가 명품백을 요구하지도 않고, 나 역시 골프장 한 번 가보지 않은 덕분에 1억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1억이라는 것이 서울 강남 아파트 화장실 변기 놓을 공간도 못 살 돈이 되어 버렸다. 1억을 은행에 맡겨봐야 한 달에 10만 원 이자를 받을까 말까 하니 예전의 1억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10억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때 10억 벌기 열풍이 분 적이 있다. 10억이면 이른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백만장자라는 것이 요즘 서울 강남은커녕 광역시의 잘 나가는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그 박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은 최소 60억은 있어야 부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니 평생 살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애당초 오르지 못할 나무였고, 그 나무를 안 쳐다보고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현명한 일이 되어버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록 한쪽에서는 고공행진으로 집값이 폭등을 하지만 그 뉴스를 남일로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아껴서 살면 그럭저럭 살만한 것이 요즘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방 중소도시에 가면 아직도 몇 천짜리 전세에 살 수 있는 집이 있다. 알뜰폰을 쓰면 통신요금 걱정 없이 그 옛날 부자들의 상징 핸드폰을 몇 천 원 요금에 쓸 수 있다. 비록 헬스장에서 폼나게 개인 트레이너 지도 하에 운동할 수는 없지만, 동네 곳곳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맘만 먹으면 큰돈 안 들이고도 운동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번 고깃국 끓여서 먹을까 말까 했던 그 고기를 마트에서 일이만 원 주고 사다가 구워 먹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결국 폼나게 멋지게 살려면 한없이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그냥저냥 소박하게 살려면 또 내실 있게 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아닌가 싶다.

그러니 만날 헬조선 어쩌고 저쩌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래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나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분명 불평등은 심화되고, 여러 어려운 문제가 많아서 살기가 팍팍한 것도 사실이고, 개혁과 개선되어야 할 점도 많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쯤이면 그 옛날에 비하면 정치적으로는 많이 민주화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며, 사회적으로는 복지가 늘어난 것도 사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같이 온 여행객들 중 일부처럼 2~30만 원 주고 여자 끼고 흥청망청 술판을 벌이지는 못했지만, 그냥 호텔 바에서 3,000원짜리 미얀마 맥주 한 병에 공짜 땅콩 먹으며, 호텔 직원과 서툰 영어로 몇 마디 나누며 한 때를 보낸 것이 더 즐거웠으니 그런 점에서 난 참 다행이다 싶다. 


아이들에게 부자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돈 벌 궁리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쩌면 검소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난 후자이다. 물론 후자가 옳다는 것도, 강요할 생각도 전혀 없다. 각자 자기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소수밖에 못 오를 나무이다. 오른 사람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불만스럽게 살기보다 그 나무 대신 내게 주어진 푸른 들판에 드러누워 흥얼흥얼 거리며 한 평생을 난 살아갈 거다.

작가의 이전글 세뱃돈 천만 원을 천명에게 주겠다는 일본의 억만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