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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Jan 09. 2020

사장님들의 하소연 정당할까?

사장과 노동자가 ‘무지의 장막’에서 만난다면 어떤 합의가 나올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떠나는 사람도 있고,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배우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난 굳이 말하면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일상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패키지여행의 장점이다.


패키지여행에서는 이른바 계급장 떼고 그냥 여행객으로 잠시 만난다. 이해관계를 다투지 않기 때문에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지역, 직군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번 미얀마 여행에서는 사업체 사장님 몇 분을 뵈었다. 화학 업체를 운영한다는 60대 중후반의 사장님은 젊어서는 우리가 잘 아는 00표 페인트에서 중역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퇴사 후 사업체를 운영하며 나름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했다. 사업하면서 수 억을 떼이기도 해서 지금도 그들을 찾아내어 복수하고 싶다고 할 정도 깊이 파인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요즘 문재인 정부가 너무 세금을 많이 거둬서 기업 해 먹기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사장님은 한국에서 더 이상 제조업을 하기는 힘들다며 지금 생각은 회사 잘 팔아서 한몫 챙겨서 떠날 생각뿐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서슴지 않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한국 공장은 깡통 공장으로 만들어 놓고, 한몫 챙겨서 고의부도를 내고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 그냥 묵묵히 듣기만 했다.


지방에서 오피스텔 건축 등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한다는 60대 초반의 또 다른 사장님도 노무 관리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 사업하면서 가장 큰 애로 사항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건설현장 주변 주민들의 각종 민원 때문에 사업 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답했다. 과거에는 관청의 인허가만 신경을 쓰면 되었는데 이제는 다른 문제가 더 골치라고 했다. 그 사장님도 노동자 편만 드는 빨갱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욕했다. 노무 관련해서 자신이 고소당한 것이 수십 건이라고 골치 아프다고 했다. 


결국 그 사장님들의 말씀은 과거에는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어서 신바람 나게 일했는데 지금은 본인들이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챙겨갈 수 없으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명해져서 세금으로 너무 많이 떼 가는 것이 불만이란다. 노동자들을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는데 요즘은 갑질이다 뭐다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불편한 것이 싫단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해서 술자리에서도 농담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갑갑하다고 했다.


그게 뭐가 잘못인가? 결국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라는 조심스러운 나의 문제제기에 그러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거라 하셨다. 누가 이런 데서 사업하고 싶어 하겠냐며 결국 그러면 나라가 망할 거라 걱정하셨다. 방향이 맞다 하더라도 너무 서둘러 가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대놓고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나보다 연배도 많고, 여행을 온 자리였고, 그리고 사실 그 상황에 대해 내가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었다.


평소에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 혁명에 의해 당선되어 놓고도 노동자들의 바람을 외면한다고 욕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확실하게 개혁의 길로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기득권 세력에게 휘둘림 당한다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난 그 두 당사자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싶다. 사업가들은 자신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직원들은 애사심도 찾아보기 힘들고,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오늘날 이룬 성과는 모두 자신의 지혜와 열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자신이 쌓은 부를 노동자들이, 정부가 빼앗아 간다는 억울한 마음을 호소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사업가들은 놀고먹으면서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이룬 성과의 대부분을 착취한다고 비난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일부 악덕 사업가를 가지고 전체 사업가를 비난하고 있는 것일까? 일부 게으른 노동자의 문제를 마치 전체 노동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확대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업가라면 어떠할까? 과연 내 이익을 줄이고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 몫을 나눠줄 수 있을까? 그 사업가가 노동자라면 과연 기쁜 마음으로 현재 노동자의 몫에 대해 승복할까?


결국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현실의 이익을 앞에 두고 도덕심에 호소하여 해결책을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하니 자신이 노동자로 살지? 사업가로 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기준을 정한다면 그나마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사업가인지? 노동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 일방이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고 결국 서로가 불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최선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한 사실은 사업가일 때와 노동자일 때 입장이 각각 다를 수 있기에 서로의 입장에 대해 분명한 명세서를 내밀어 서로를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지의 장막’에서 만나 타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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