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갈장군이어도 좋아!/여우고개] 책 출판 그 뒷이야기
나무 한 그루 심어 본 적 없으면서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들 만큼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두려웠다. 실제로 200페이지 책 한 권을 만들려면 3m 크기의 나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책 한 권에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는 셈이다.
25년 전 좋은 책을 어린이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어린이도서관 운동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활동을 하면서 독서교육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러 차례 받았지만 한사코 손사래 쳤다.
독서교육에 관한 책은 서가 한 칸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넘쳐났고, 굳이 산 하나의 나무를 다 베어서 책으로 엮을 만큼 신박한 독서교육 방법론을 갖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출판 시스템에 대한 무지몽매가 높은 벽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높은 벽을 허무는 일은 뜻밖의 일로 다가왔다.
2020년 올해 들어 봇물 터지듯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기본소득’은 무명유실이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로봇과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할 시대에 인간은 어찌 살아야 하는지? 소득불평등과 기후위기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의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기본소득은 분명 의미 있는 제도였지만 아는 이도 관심 가져주는 이도 거의 없었다.
기본소득 대전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어떻게든 기본소득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보도자료를 열심히 써서 각 언론사에 보내도 기사 한 줄 써주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고, 정말 기사가 나올까라는 걱정 반 기대 반 속에 작성한 기사가 여러 차례 퇴짜를 맞고 좌절하기도 하고, 오마이뉴스를 비난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기사 쓰는 법을 배워갔다. 기사 채택되는 순간 자체가 큰 기쁨이기도 했고, 어느 순간 잉걸에 만족하지 못하고 버금, 으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져갔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며 기사로 채택이 되지 못했을 때 상처가 너무 커서 힘들어하던 중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최소한 이곳은 채택/비채택으로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위로가 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기본소득을 알리기 위한 글쓰기가 이어지던 중 브런치를 통해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본소득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제안이었다. 반가웠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본소득에 관한 좋은 책이 이미 많이 있고, 내가 기본소득 연구자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에서는 그런 기본소득 연구서 말고 청소년용 기본소득 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 역시 난 거절했다. 이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개마고원]을 펴낸 오준호 작가님이 [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 풀빛] 책을 출판할 계획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절하는 말미에 어린이를 위한 기본소득 책은 없으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면 써 볼 수도 있겠네요.라는 이야기가 무심결에 튀어나왔다. 아마도 ‘나무가 아깝다.’라고 말하면서도 내 마음 한편에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이 목구멍을 뚫고 나온 것 아닌가 싶었다. 출판사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책도 좋다며 우선 원고를 작성해서 작업을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다. 결국 처음 제안을 해준 출판사와는 죄송스럽게도 인연을 맺지 못했고 다른 출판사와 손을 잡았다.
초고를 쓰고, 가족을 괴롭혀서 억지 피드백을 받아보고, 함께 독서교육을 하는 아이들 반응을 살피고 흥분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좋다고 하면서도 이것저것 수정을 요구했다. 원고만 쓰면 뚝딱 책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곧 책이 나올 것처럼 여기저기 사방팔방 떠들고 나왔다.
“이제 선생님이 아니라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라는 농담이 기분 좋게 들렸다.
하지만 책은 해를 넘겨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책이다 보니 그림 작가가 붙어야 했고, 출판 시기를 저울질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출판사 자체 사정으로 다른 책 출판 작업을 하느라 우선순위에 밀리는 눈치였다. 출판사에 재촉을 하기도 민망했고 그냥 속만 끓였다. 나 역시 코로나 19 국면에서 ‘재난 기본소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다, 성명서 발표다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인 이때에 책이 나왔으면 대박일 텐데 왜 안 나오냐고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원고를 넘긴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때쯤 [대갈장군이어도 좋아/여우고개]는 숲 하나를 없애고 세상에 태어났다.
출판사에서는 처음부터 말했다.
“요즘 출판시장이 정말 힘들어요. 책이 정말 안 팔려요. 작가분들이 열심히 뛰셔야 해요.”
그 말이 참 부담되었다. 숲에게도 미안한데, 이제 출판사에도 빚을 진 기분이다. 결국 아는 지인들에게 카톡을 돌렸다. “제 책의 첫 독자가 되어 주세요.” 그래 봤자 내가 팔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 결국은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이 책이 그냥 숲 하나를 의미 없이 날려버릴 것인지? 아니면 어린이들에게 나무 한그루 보다 큰 재미와 의미를 선사할 수 있을지?
[대갈장군이어도 좋아]는 교육대학교를 졸업했으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학교 교단에 서지 못한 나의 학급살이에 대한 꿈을 담은 책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우리 반’이라는 슬로건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어린이들 스스로가 토론을 통해서 자신들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교사는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초등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체득할 때 우리나라의 형식적, 제도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문화적 민주주의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진도 나가기에서 벗어나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아이들 스스로 탐구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모습을 [대갈장군이어도 좋아]를 통해서 그렸다. 그래서 책에는 반 아이들이 학교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도서관 자료 구성 원리에 대해 배우고 직접 도서관 자료를 찾아 문제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처음 책을 쓰게 된 어린이를 위한 기본소득 이야기를 아이들이 토론 주제로 ‘어린이에게도 기본소득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를 택해서 대립토론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토론 방법도 배우고, 기본소득도 알게 되는 두 마리 토끼 잡기를 시도했다.
이 책은 대전지역 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현장체험 장소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이야기인지라 대전 지하철 이야기도 나오고 대전의 명물 성심당, 계룡문고, 테미오래, 스카이로드 등 대전 명소가 소개되어있다.
실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취재해서 기사로 썼던 '대통령에게 손 편지 쓴 초등학생들'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동화를 풀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목이 ‘대갈장군이어도 좋아’일까? 대갈장군은 누구일까? 제목을 친근하게 짓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요즘 아이들이 ‘대갈장군’이 뭔지를 잘 모른다는 결정적 문제가 있어 후회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림을 그려주신 고은찬 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책 속 대갈장군이 완전히 나를 닮았다고 아이들이 난리다.
책만 나오면 여기저기서 다른 작가들처럼 출판기념회도 열리고, 작가 초청 강연회도 하고 그럴 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코로나 19 때문이야라고 코로나 19 탓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비록 60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이지만 선인세를 받고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책 중에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책이 된다는 것은 또 수 백 분의 일에 불과한 가능성일 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작가, 출판사의 홍보 노력이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책 자체의 진정성이 어린 독자의 마음을 녹일 때 그 책의 생명력도 함께 유지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결국은 다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로 돌아왔다. 남들이 써주지 않으니 내 입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기본소득을 다루고 이야기한다.
[대갈장군이어도 좋아/여우고개]도 언젠가 내 손으로 기사를 쓰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이 우러나와 글이 되고, 말이 되는 순간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