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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배 Jun 30. 2021

빗길을 걷는다는 것은..


아내는 빗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산은 꼭 하나여야 한다. 우산 하나 속에서 둘이 꼭 달라붙어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걷기를 좋아한다.


지붕에 요란히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도 좋아한다.


마침 저녁을 먹고, 한 시간 가량 짬이 났다. 


"나갈 거야?"


"나야, 좋지."


아내가 반색을 한다. 큰 우산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 맨발로 집을 나섰다.


당연히 공원 쪽으로 한 바퀴 산책을 할 줄 알았는데..


"우리 농협 마트 갈래?"


아내의 뜻밖의 제안에 


"뭐 살 거 있어?"


"왜 농협 마트 간다니까 좋아서 그래? 자기 야식 사야지."


아, 어젯밤 치맥을 한 탓에 오늘은 염치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토요일 친구들과의 모임을 앞두고, 한 친구가 엄청난 다이어트 성공에 질투가 나서 나도 체중관리를 좀 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난 거절하지 않았다. 아내가 저렇게 나서는 일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하기 때문이다.


빗줄기가 강해졌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아내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연신 탄성을 자아내는 아내가 혹시 비를 맞을까 봐 자꾸 우산을 아내 쪽으로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내 오른 어깨는 다 젖었다.


튀는 물방울에 발도 어느새 물 범벅이었다.

그래도 즐거워하는 아내의 흥을 깰 수는 없다. 아내가 즐거워하는 몇 안 되는 일이니 그저 감사할 밖에..


농협 마트에서 아내는 의외로 추억의 소시지를 집었다. 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이 휘둥그레지니..


"이거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 싫어?"


"나야 좋지... 고등학교 때 소시지 반찬 싸오는 친구들 얼마나 부러웠는데.."


"어서 자기 골라?"


난 맥주 대신에 막걸리를 골랐다..


돌아오는 길 여전히 비는 거칠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비가 잦아들었다. 

젊은 청춘 남녀가 우산 속 꼭 끌어안고 앞을 걷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얼마나 좋을까?"


아내는 부러워했다.


"그때는 오히려 반백의 어르신들이 두 손 꼭 잡고 걷는 모습이 부러웠었는데..... 그 당시 우리를 보고 부러워했던 어른들도 계시겠지?"


아내는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이런 청개구리 같으니라고... 젊어서는 노년이 부럽고, 지금은 청춘이 부러우니... 그냥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은 거지..."


아내는 내 말을 듣더니


"그렇기 하네.."


그렇게 짧은 빗속 데이트는 끝이 났다..


나는 이제 수업을 해야 한다..


아마 아내는 소시지 부침을 맛있게 해 놓고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그렇게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다 지쳐 젊은 날을 추억하는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하루는 또 이렇게 흘러간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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