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 아내에게 톡이 왔다.
[부추는 큰 냉장고 아랫칸 왼쪽 통에 있어.
많이 넣어 먹어.
부추 넣자마자 불 끄고.]
출근 전 아내는 오늘 저녁 먹을 시간이 없는 나를 위해 김밥을 싸고, 그리고 점심은 추어탕으로 준비해 놓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나가느라 미처 당부하지 못한 말을 카톡으로 남긴 것이다.
오전 신규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스레인지에 추어탕을 데우기 위해 불을 켰다.
그리고 다시 카톡을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랫칸... 3칸 중 제일 아랫칸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부추'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야채 박스를 의미하는 것 같아서 서랍을 열어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작은 냉장고를 착각한 것 아닌가 싶어서 작은 냉장고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부추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눈앞에 있는데도 못 찾는 경우가 허다해서 또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큰 냉장고로 돌아와 위칸부터 차근차근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면서 부추를 찾기 시작했다.
역시 부추는 없었다.
아내에게 톡을 보내볼까 싶다가도 얼마나 건성건성 봤으면 그것도 못 찾아 하고 핀잔이 돌아올 것이 두려워서 선뜻 톡을 보낼 수도 없었다.
이미 추어탕은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작은 냉장고를 찾아보고, 야채 박스를 뒤져보고..
그러다가 혹시나 싶어서 큰 냉장고 제일 위 냉동칸을 열어 보았다. 냉동칸은 위아래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아랫칸 통에 부추를 잘 썰어서 보관해놓은 통이 있었다.
아마도 시간이 있을 때 부추를 다듬어 잘게 썰어놓은 듯했다. 내 머릿속 부추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어찌 되었든 부추를 넣어서 추어탕으로 점심을 잘 먹었다.
그리고 괘씸한 마음이 들어 아내의 톡에 답글 형식으로 글을 보냈다.
"이 글은 정말 어려워 ㅜㅜ"
아직 아내는 아무 답이 없다...
아내는 늘 나를 답답해한다. 내가 마이동풍으로 늘 슬렁슬렁 들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반의 진실이다.
그러나 아내는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늘 이야기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잘 모르는 듯하다. 이 역시 절반의 진실일 것이다.
내게 익숙한 일, 나의 방식을 나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 그것은 참 쉽지 않다. 내게 너무 쉬운 일이 남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참 안된다.
내 질서 속에 끊임없이 남을 편입시키려는 태도, 강요하다는 태도, 그래서 지배자가 되려 하고, 강자가 되려 한다.
의사소통은 결국 일방의 관계가 아닌 상호존중에 기반해야 한다. 서로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인식도, 언어도, 경험치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기적 같은 일임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는 나 자신이, 늘 처음인 아이들과 수백 수천 번을 이미 되풀이한 나와 같을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매일 새로운 해가 떠오르듯이 나 역시 처음처럼 아이들과 만나야 한다.
우린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