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이후, 혼자서라도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도 볼 일 없는 개인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다. 그간 군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어찌나 시간이 흐르지 않던지. ‘이제야 2년이야? 아직도 3년 남았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수를 마친 22년 겨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얼굴을 한 명씩 찬찬히 보았다. 중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가까이서 그들을 보며 느낀 감정은 뉴스로 접하며 느끼는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추운 날 그곳을 지키는 관계자분께 “고생하십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국정조사촉구 서명운동에 사인을 하고 관련된 소식을 잊지 말고 챙겨보자며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내가 그날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그 겨울이 다해갈 무렵, 나는 배낭여행을 떠났다. 94일 간 서른 개의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을 만났다. 열 개가 넘는 언어를 주고받았다. 같은 언어권에 있어도 지역에 따라 그 사람들의 역사와 정서는 서로 달랐다. 여행 초반에는 다른 도시로 다시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여전히 낯설지만 기껏 적응한 이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언어와 정서 그리고 문화가 모두 달라도 같은 사람으로서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친절한 행동과 여유로운 미소는 환영받았던 반면, 비겁한 태도와 시큰둥한 표정은 싸늘한 반응으로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어디서 왔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재산은 얼마인지 언어를 잘 구사하는지 아닌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건 내 행동이었다. 순간마다 피부로 느낀 그 감촉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고 모든 삶이 내가 내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딱,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선거 날이다. '누구나'의 보통 선거의 원칙과 '1인 1표'의 평등 선거의 원칙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감촉을 다시 일깨운다.
나는 우리가 정치를 잘 모르고 생각이 달라도 같은 사람으로서 통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영정 없는 분향소를 설치한 끔찍한 정부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나는 본인의 무지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한 대통령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나는 대통령과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무도한 정부를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나는 법무부장관을 거치고도 정부에 대한 본인의 책임은 없다는 무책임한 집권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 그들을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아닌 그들의 행동이다. 그들은 그들의 이권에 관련된 일에는 사사롭고 비겁한 행동을 일삼았고 가슴을 잃은 이들에게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왔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것은 주권자의 싸늘한 반응이리라 굳게 믿는다.
22년 겨울, 무기력한 마음으로 이태원역을 향했던 발걸음은 더이상 없다.
김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