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보, 당신도 자전거를 배우면 어떨까. 그럼 공지천도 섬진강변도 함께 달릴 수 있을 텐데.” 귓등으로 들었다. ‘자전거를 배울 시간이 있으면 잠을 좀 더 자겠네.’ 내 생각이었다.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늘 잠이 부족했고 워커홀릭인가 싶을 만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일에 묻혀 살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자전거라는 놀잇감에 관심이 갔고, 놀이 문화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서로 대화가 통해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있다. 그중 나이 서열로 가장 위인 사람이 머리가 거의 백발인 몽
샘이다. 선생은 수학 교사 출신으로 뼈대가 커서 체격이 우람하다, 그러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타고난 여자인 데다 알고 보면 진국 살림꾼이다. 어느 날 그녀가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며 말했다. “마트 계산대에서 처음 본 꼬마아이가 날 보더니 ‘할아버지는 나이가 몇 살이에요?’ 이러더라.” 우리는 숨이 넘어갈 듯이 웃으며 뒤집어졌다. 그리곤 모임을 만들었다. 깜장고무신파. 두목은 만장일치로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되었다.
대폿집에 둘러앉은 여자들이 세상을 향해 도전장을 흔들었다. 증표로 깜장고무신을 나눠가졌다. 두목의 주선으로 미술 전공자가 신발에 그림까지 그려 넣었으니 고무신계의 '에르메스'였다. 대폿집 아주머니는 “그 신발 나도 한 켤레 구할 수 있어요?”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조직의 이름도, 두목도 생겼으니 세상과 맞서는 일만 남았다. 아줌마들의 ‘칼있으마(?)’는 하늘을 찔렀고 그 기세로 자전거 유람을 계획했다. 생각만으로도 근사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이 모임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자전거를 배워야 했다. 진즉 남편 말 듣지 않은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지 않던가.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매일 밤마다 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했다. 남편은 훌륭한 코치였고, 꽤 괜찮은 자전거 정비사였으며, 구급대원이었다. 깊은 밤이니 다니는 사람이 없어 넘어져도 부끄럽지 않았다. 하늘을 날거나, 손톱이 꺾여 부러지고, 온몸의 멍은 지워질 날이 없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전거 도로로 진출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앞에선 남편이 길을 만들고, 뒤에선 아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해 주었다. 삐뚤빼뚤 찌그덕 거리며 달렸다. 아이가 뒤를 지켜준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거렸고 자신감이 생겼다. 3인 3색! MTB, 미니벨로, 픽시가 깊은 밤 자전거도로를 달렸다. 남편은 유유자적, 나는 헥~헥, 아들은 묘기를 부리면서.
사람답게 성숙할 수 있음은 좋은 동무들과의 소통이 큰 역할을 한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할 수 있음이 좋다. '되말클럽'을 만들고 시시덕거릴 때처럼 말이다,
‘되말클럽’은 ‘깜장고무신파’보다 오래된 내 핏줄 같은 사람들과의 모임이다. 사는 게 허허로워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 걸어준 사람들과 즉석에서 만든 모임이다. 되고 말고, 되거나 말거나, 되든지 말든지... 지금도 이 클럽은 즉흥적으로 결성되니 회원 수가 들쭉날쭉하다. 규칙이 따로 있을 수도 없다. 그저 우리가 되고 말고 정하면 그만이다.
되말클럽이 강원도 홍천의 산둔마을로 트레킹을 갔을 때도 우리의 놀이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구멍가게조차 없는 오지 트레킹이었기에 모든 것이 열악한 속에서 멤버 한 명이 갖고 있던 흑맥주 한 캔으로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양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헤어질 땐 모두 한 마음으로 되말클럽의 새 일정을 잡았다. 다음 여행의 주제는 ‘꽃구경 가자고요.’였고, 우리의 규칙은 ‘절대복종 저항불가’가 되었다. 누구에게 복종하고 저항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복잡하계’가 만들어졌다. 이 역시 사람 냄새나는 사람들 모임에서 즉흥적으로 결성되었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통풍이래요. 이젠 음식도 술도 마음대로 먹고 마시질 못하게 됐어요.”라고 하자 다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 했다. “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다음 만남에선 복잡하게 술도 좀 마시고 그럽시다” 놀기에 특화된 사람들이 이 제안을 놓칠 리가 없다. 즉석에서 ‘복잡하계’가 만들어졌다. ‘계’는 목돈 마련이 어렵던 예전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으며 친목도 다지던 우리의 전래 모임이 아니던가. 그것을 차용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그동안 눈가리개를 씌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치열했던 현역에서 은퇴한 이제 비로소 눈을 사방으로 돌린다. 배우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이고, 보고 싶은 얼굴들도 여럿 생각난다. 그동안 못했던 많은 것을 해 보고 싶다. 다행히 인문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사람다움을 지닌 이웃들이 가까이에 있다. 유안진 선생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현실 판이 내 세계가 된 것이다. 꾀죄죄한 얼굴로 찾아가도 기껍게 맞아주고, 공허한 마음도 스스럼없이 보일 수 있는 동무들이 있는 지금, 느리게 살아도 탓하는 이 없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