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갑고 고마와서 울었다. 깊어서 울었단다.’
마음속의 바람을 잠재우러 건너갔던 ‘제주도’. 그곳 게스트하우스의 화장실 벽에 붙은 서툰 글씨의 꽃 편지지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반갑고 고마워서 울었다. 기뻐서 울었단다.’ 일 것이다. 공부에 한이 맺힌 어르신이 늦깎이 공부로 한글을 깨우쳤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자식에게 헌신적인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였다. 제도 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지만 언제나 입에 달고 사셨던 말씀이 ‘사람은 도둑질 빼곤 뭐든지 다 배워야 한단다.’였다. 그래서일 게다. 내가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 하지만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일상에 변화가 온 것은 걷기를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마을길에서 가까운 산으로, 우리 고장에서 다른 지역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걷기의 영역이 계속 확장되었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생활이 활기찼다. 어떤 형태의 길을 걸어도 두렵지 않았다.
마음속 바람을 잠재우는 명약에는 ‘제주’ 중산간의 두모악 갤러리만 한 곳이 없다. 두모악은 제주 사람을 부르는 별칭이기도,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머리가 없는 산이란 뜻이기도 하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은 폐교된 삼달국민학교를 아지트 삼아 사진 작업을 했고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영혼의 울림으로 찍은 김영갑 선생의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바람이 잠잠해진다. 아니 잠잠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삶을 만나기 때문이다. 바람을 찍기 위해 제주의 산과 들과 바다로 떠돌던 선생은 건강이 나빠져 스러졌지만, 그때 찍은 바람은 여전히 두모악에 남아있다. 두모악 마당 감나무 앞에 서서 선생이 들려주는 바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고통 속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선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을 찍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찍히지 않으려는 바람의 신경전이 우리의 가슴에 전달되면 갖고 있던 마음속 바람은 김영갑의 바람에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발걸음을 처음 내딛는 곳은 어디든 관계없이 관심의 대상이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듯이 봄바람을 쐬러 산골인지 시골인지 구분이 아리송한 ‘춘천’의 ‘북산면’으로 들어갔다. 배후령 터널을 빠져나가니 벚꽃이 흐드러진 물안마을이 나왔다. 물안마을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니 건봉령 승호대가 나왔고, 승호대를 거치니 오지 중의 오지 산막골이 고개를 내밀었다. 봄이 오면 어디인들 꽃 대궐이 아닐까마는 벚꽃만큼은 물안마을이 전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곳일 게다. 꽃 터널이 된 벚꽃 길에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봄바람을 타고 온 꽃향기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절정에 이른 벚꽃의 만개로 황홀경에 빠졌다.
건봉령 승호대에 서면 윤슬 반짝이는 소양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낮에 찾아가면 넋이 나가도 모를 만큼 멍 때리기가 잘 되는 절경이, 밤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별자리 성지로 변모한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어 있는 오지의 산마루이다. 이곳에 서면 녹슬어 낡은 입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건봉령 승호대 / 산 첩첩 물 겹겹 아름답다 산하여’. 승호대는 소나무 화가 우안 최영식 선생이 짓고 쓰고 세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곳에 가면 내가 왜 이리 주절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안 선생의 북산면 작업실을 찾아가기 위해 굽이굽이 들어가던 산막골은 대중교통 접근조차 안 되는 오지이다. 마음이 복잡해 머리가 지끈거리면 이곳으로 들어가 걸어보라. 세상만사가 한낱 일장춘몽 같아질 것이다. 그러니 때때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떠날 일이다. 이유도 조건도 달지 말고 백치미를 폴폴 날리면서 말이다.
설악산 흘림골을 걷기 위해 예약을 마치고 떠났던 차 안에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강원북부산지에 기상특보(대설주의보)가 발효되어 오색 흘림골 탐방 예약이 자동 취소됨을 알려 드립니다.’ 오색주차장이 코앞에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주차를 하고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에 들러 직접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산 밑에는 비가 내리지만 정상에는 폭설이 내리는 중이란다. 당연히 설악산의 모든 코스가 폐쇄됐고, 용소폭포 방향만 유일하게 개방됐다며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비 내리는 가을 설악을 걸었다. 기암괴석과 암반 위로 흐르는 물의 조화가 절묘했다. 감탄에 감탄을 포개면서도 흘림골에 대한 미련을 끊을 수 없었다. 흘림골 앓이 하는 나와 가을 앓이 중인 설악산이 주전골에서 만나 교감했다. 흘림골의 가을은 내 마음속에 아직 오지 않은 가을로 남게 되었다. 이렇듯 걷기를 하다 보면 때때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졌다. 언제까지 낯선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걷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까. 어떻게 걸으면 무릎에 무리가 덜 올까. 남편은 길 떠나는 나를 막지 않는다. 왜 걷기를 시작했는지 알기도 하거니와 말려도 들을 내가 아님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험한 길은 걷지 말라 하고, 산길도 혼자 걷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어쩌랴. 가고 싶은 곳이 많기도 하거니와 발바닥에 달린 보이지 않는 바퀴 때문에 길 떠남을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