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반데기마을을 거쳐 갔는데 아주 특별한 마을이더라구. 다음엔 당신도 같이 갑시다.”
며칠간의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들어온 남편이 한 말이었다. 이제나저제나 떠나자는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남편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아는 척을 안 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섰다. 특별한 마을이라니 특별한 길 떠남을 계획했다. 동경하던 스텔스 차박을 떠나려는 것이다. 내 차인 코란도C에 맞는 차박용 텐트를 구입했다. 침낭, 에어매트 등 숙박 준비와 캠핑도구도 챙겼다.
내가 타던 차의 연식이 오래돼 교체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레저용 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코란도C’에 마음이 갔다. 차체 크기나 형태의 곡선이 마음에 들었다. 뒷좌석을 접었을 때 수평으로 펼쳐지는 면적도 체격이 작은 나와 잘 맞았다.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강릉 안반데기마을에서의 첫 차박은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일도 놀이로 만드는 내가 놀기 위해 떠났으니 얼마나 잘 즐겼겠는가. 놀이문화가 더 다양해졌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은퇴를 앞둔 시점이라 기분이 묘했다. 앞날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반반이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 길을 나섰다. 우리 집은 호수 길과 가까우니 굳이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호숫가를 정처 없이 걸었다. 불현듯 ‘차를 없애면 불편할까’에 생각이 머물렀다. 차박을 자주 떠나거나 평소 운전을 즐기지 않으니 과히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주변 사람 거개가 알고 있듯이 나는 평소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가. BMW Life에 쉽게 적응할 것 같았다. 국가에서는 나를 위해 경유차 폐차 지원금도 주겠다는데 뭘 더 망설이겠는가.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뜯어 불쏘시개까지 하는 격이었다. 더 오래된 남편 차를 없애고 내 것을 남편에게 주었다.
한 가구 두 차량에서 한 가구 한 차량이 되었다. 불편했다. 20년이 넘도록 자가운전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뚜벅이가 되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렸다.
“캐스퍼가 운전석도 접힌다는데 그 차를 사서 엄마가 가끔 차박을 다니면 어떨까?”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어머니, 우리 직원의 캐스퍼를 타봤는데 꽤 넓던데요. 차는 괜찮은 것 같아요.” 큰 사위의 말이었다. 딸들은 필수 옵션을 알려줬고, 아들아이는 엄마 요구사항이 들어간 견적을 뽑아왔다. 남편은 이미 오케이를 했으니 내가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캐스퍼 실물을 보았다. 엥? 눈이 커졌다. 성냥갑 같았다. 산천초목 보겠다고 무작정 떠나기엔 불안했다. 장거리도 비포장도로도 달릴 텐데 내 생각이 짧았다. 차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경차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BMW Life에 완전히 적응하고 이젠 즐기고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남편 차를 이용한다.
차를 없앤 후 버스보다 기차 여행을 주로 한다. 버스를 과히 좋아하지 않음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시골에 살던 우리 집은 내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은 트럭에 실어 보내고 우리 식구는 시외버스를 탔다. 어디쯤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많은 버스들 중 한 대가 막 출발하기에 뛰어가 차에 올랐다. 버스는 이미 큰길로 나가 달리고 있는데 우리 가족이 없었다. 눈물, 콧물이 온 얼굴에 범벅이 된 채 겁에 질려 울었다. 어린아이의 상황을 알게 된 운전기사는 길가의 작은 지서에 나를 내려놓고 미련 없이 떠나갔다. 지서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일뿐이었다. 온 얼굴이 땟국물 투성이가 될 즈음 아버지가 지서로 들어오셨다. 식구들도 나를 잃어버리고 난리가 났었단다.
나는 지금도 버스 타기를 내켜하지 않는다. 이때의 충격이 문신처럼 마음에 박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까닭이다.
V-train을 타고 중부내륙지방을 여행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도, 전국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인 양원역도 인상적이었지만, 태백에서의 놀라움에 댈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탄광마을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 냇물을 검게 칠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는 ‘에이! 설마~’ 했는데 정말인가 보았다. ‘철암역두선탄장’ 앞에서 개천을 바라보니 새카만 물이 콸콸 쏟아지며 개천 물과 합류하고 있었다. 수질 환경이 문제없을까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기차 여행은 설렘이다. 비둘기호의 낭만은 그리움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낯선 도시에서 기차가 멈추면 호기심이 생긴다.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싸리비로 쓸어낸 시골집 마당처럼 정화된 기분이 드는 것도, 민들레 홀씨되어 날리듯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이 호기심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차를 없애고 자유를 얻었다.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
* BMW; Bus, Metro, Walk.